지리산 둘레길 1코스

by 강물처럼

여기서부터 지리산 둘레길 제1구간 시작점입니다.

배낭을 멘 사람 모습이 커다란 나무 표지판에 그려져 있었다. 노란색이 산뜻하게 보였다. 나도 저렇게 다부지게 보일까. 오래전에 다친 허리로는 저 배낭을 견디지 못한다. 표지판을 보고서 부러워하다니, 오늘 걸어갈 길을 짚어보며 감상을 떨쳐냈다 한 번 다친 것은 어쩔 수 없다.

주천에서 운봉, 14.7km. 예상 시간 6시간. 난이도 : 중.

비가 내린 다음이라 산 공기가 차분하고 골짜기마다 안개가 피어난다. 구름이라고 불러도 좋은 저 연기가 피어나는 곳에 오늘 우리가 발 디디는 것이다. 흐릿한 것을 즐기게 되면 사람이 얼마쯤 넉넉해질까. 개와 늑대의 시간 말이다. 빛에서 어둠으로, 빛과 어둠이 서로 화합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겹쳐지는 상(像). 이분법에 함몰되어 모 아니면 도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아도 되는 혼돈을 아낀다. 배려는 하더라도 타협하지 말자. 길에 서면 마음껏 배포가 커진다. 헛된 배포라서 귀여운 데가 있다. 이런 맛에 길에 나서는 줄도 모른다. 두둑이 배에 힘을 주고 걷는 것이다. 누가 뭐 하냐고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안심한다. 염려한다. 더구나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상대에게 아무런 힘을 미치지 않으면서 나는 좋아지고 있다. 바람이 바람직하게 부는 것을 혼자서 즐기는 것이 때때로 아깝다는 것을 사람들만 모른다. 구름이 걷히고 있다. 3월, 새봄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양옆을 살핀다. 저 아이들이 15킬로를 걷겠다고? 고생이겠구나, 오늘!

하지만 '가겠다'라고 마음먹는 바람에 힘이 드는 것이다. 우리는 '가겠다'라는 말을 여기에 내려놓고 다녀오자. 그렇지 않아도 길이 먼데 하나라도 짐을 덜고 가자. '가겠다'라는 말을 빼면 무엇도 우리를 재촉하지 못할 것이다. 길이 있어서 걸었다. 이렇게 말하니까 있어 보이고 좋다. 길을 따라 걷자, 아이들아.

주천에서 운봉까지 지리산 둘레길 1코스를 걷지 않았다면 어쨌을까.

비도 내렸고 내일은 아이들이 개학을 하는 날이기도 해서 코스를 다 걸을 생각은 없었다. 신학기를 활기차게 맞이하고는 싶고 날씨는 흐리고, 적당히 다녀올 만한 어떤 데를 찾았다, 그러다가 비가 내리면 남원으로 피할 생각에 둘레길 1코스로 향했다. 기대가 낮아서 오히려 좋았던 날이다.

그러려니 했던 것이 맞아떨어지면 통쾌함이 번진다. 통쾌, 상쾌, 유쾌, 마치 변비약 광고처럼 한 번에 세 가지를 얻었던 하루였다. 버리는 카드가 안타도 치고 홈런까지 치면 감독은 기뻐해야 할지, 미안해야 할지, 행복할 것이다.

지난해 우리가 다녔던 인월-금계 구간도 표지판에 잘 그려져 있었다. 벌써 추억이 된 이름들이 초록색 줄을 따라 이어졌다. 중군마을, 배너미재, 장항마을, 상황마을, 등구재. 20km가 넘는 길에서 우리는 자연의 배경이 되어봤다. 아침에도 낮에도 해가 지는 무렵에도 길을 배경으로 근사했었다. 그 길 끝에서 진동하던 장미철쭉의 향기를 여태 잊지 못한다. 산이와 강이가 더 자랐다. 그때보다 튼튼해졌다. 길을 걷자는데 투정 부리지 않아서 아빠하고 엄마가 좋다. 마음이 한결 가볍게 걸을 수 있었다.

걷자마자 징검다리를 건넜다. 우리가 지리산에서 건너게 될 징검다리는 과연 몇이나 될까. 그보다 우리는 지리산을 어디까지 걸을까. 이러다가 둘레길을 다 걸어볼 마음이라도 생기면 그때는 어떡하지. 풍차 모양을 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둘레길 홍보전시관을 그대로 지나서 큰 도로를 따라 걷다가 드디어 마을로 들어섰다. 논이 기다랗게 펼쳐지고 산들이 멀리 물러섰다. 능선을 조망하며 걷는 것이 꼭 순례단 같다. 국토 순례단! 첫 번째 마을, 내송마을은 아침 기운에 싸여 있었다. 점잖은 인상을 주는 마을, 집들이 단정해 보였다. 자, 본격적으로 걸어볼까 싶던 곳에 '개미정지'라고 푯말에 쓰여있었다. 정지? 내가 어릴 적 외갓집에서 들었던 그 정지? 그때는 부엌을 정지라고 그랬었다. 어렸지만 그 말이 좋았다. 8살 때 두 달쯤 외갓집에서 지내면서 특히 듣기 좋았던 것은 '샘에 가서' 그 말 하고 '정지에 가면' 그 두 가지 말이다. 맞았다. 쉼터라고 설명해 주고 있다. 임진왜란 이야기가 나오고 의병장이 등장한다. 개미는 우리가 아는 개미다. 개미쉼터, 개미정지를 지나서 오르막이 이어졌다. 계단이 지난 계절에 쌓인 낙엽으로 덮여 있었다. 2km를 오르면서 강이가 고생했다. 엄마하고 강이는 부안 마실길을 걸으면서 서로에 대해 잘 파악하는 사이가 됐다. 어디쯤에서 쉬고 싶어 하는지 먼저 알아채고 재촉하거나 기다리지 않는다. 같이 오르고 같이 쉰다. 호흡을 맞춘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언덕, 구룡치까지 올랐다. 구룡치면 근방에 혹시 구룡폭포가 있다는 이야기인가. 어느 해 여름날 구룡폭포를 구경하러 계단을 내려간 적이 있었다. 내려가다가 더 내려가야 할지 그만 포기하고 돌아가야 할지 망설였던 날이 생각났다. 그런 갈등을 겪고 난 뒤에 본 구룡폭포는 물줄기가 거대했다. 다시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갈증이 충분히 해갈된 기분이었다. 구룡폭포는 그 정도 수고는 해도 좋을 만큼 장관이었다. 그 구룡폭포가 있는 구룡치였다. 집에 돌아와 지도를 찾아보니 멀지 않은 곳이다. 아, 이쪽으로 오르면 달궁이 나오고 정령치로 이어지는구나. 옛날 달궁에 사는 사람들과 주천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 고개를 넘어 남원으로 장을 보러 다녔다고 한다. 사람들이 넘어 다녔던 고갯길이다. 이름에서 풍기듯이 아홉 마리 용이 계곡을 넘어가는 고개, 구룡치는 길이 좋았다. 고갯마루가 이렇게 넓고 정갈하다니, 거기에서 김밥도 먹고 시간을 들여서 쉬었다. 바람이 불었지만 오르막을 오른 뒤라서 얼마큼은 시원했다. 오늘도 우리는 옷을 두껍게 챙겨 입고 왔다. 다들 벗어놓고 땀을 식혔다. 열이 식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금방 춥다고 다시 옷을 입고 이제는 아이들이 먼저 출발하자고 앞선다. 구룡치에서 내려오는 길은 경사가 거의 없어서 한동안 평지가 걷는 듯 발걸음이 가벼웠다. 지난가을에 떨어진 솔잎들이 길을 덮고 있어서 발밑이 푹신한 것도 사람의 감상을 돕는다. 부드럽고 편안하고 따뜻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마침 하늘도 다 맑아졌다. 구름을 만지려 구름 속에 들어왔는데 맑은 하늘이 내다보였다. 그 아름다운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자기가 그 산중에 있기 때문이라던 - 不識廬山眞面目 불식여산진면목 只緣身在此山中 지연신재차산중 - 소동파의 명구절을 음미하는 순간이었다. 소박할 만큼 소박해져도 좋을 것 같은 기분을 이렇게 걷다가 만난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길 안에 있는지 아니면 길 밖인지 나도 모르게 묻게 된다. 길에서는 자주 묻는다. 그리고 오늘 걸을 길이 끝나더라도 걷겠다는 의지는 더 커질 것을 어렴풋이 짐작한다. 길이 가르쳐 주는 것들을 더 받아 적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저희들도 기분이 좋아졌던지 목소리가 나고 떠들고 노래도 부른다. 이대로 쭉 가냐며 묻는다. 행복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궁금했을 것이다. 계속 이렇게 가는 거야? 나도 숨을 고를 수 있어서 좋았다. 길이 다정했고 나긋나긋했다. 그러면서도 알게 모르게 우리를 마을로 이끌었다. 작은 개울도 나오고 돌무덤도 나왔다. 다시 또 돌다리 하나. 어느새 산을 내려오고 회덕마을이 보였다. 이제 도로다. 도로변에 무덤이 있고 그 바로 곁에 집이 있다. 옛날에는 이렇게 삶과 죽음이 한 그림 안에 있었다고 길가의 무덤이 낯선 아이들에게 일러줬다. 두렵지 않은 죽음도 있다고, 여전히 만지고 싶은 사람과 이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도로를 따라 걸었다. 길은 한적하다. 멀리 회덕마을이 보인다. 거기 억새로 지붕을 얹은 집들 몇 채가 모여있다. 또 아이들을 옆으로 부른다.

"너희들, 초가집 알지? 초가집을 실제로 본 적은 없잖아. 초가집은 볏짚으로 지붕을 짓고 저기는 억새로 만들었대. 왜 그랬을까? 억새는 그거 알잖아. 가을에 많이 봤던 거. 끝에 하얗게 솜처럼 난 거."

회덕마을은 도로에서 바라보면서 금방 지나왔다. 길이 갈라지는 곳에 소나무 몇 그루가 늘씬하게 모여 있는 곳에서 다리를 쉬었다. 거기서 방향이 달라졌다. 억새집이 인상에 남았던지 지금도 거기서 사람이 사냐고 강이가 묻는다.

"그러겠지. 여기는 산촌이잖아. 농촌, 어촌, 산촌할 때 그 산촌. 볏짚은 쌀농사를 지어야 얻을 수 있는데 여기는 그러기 어렵잖아. 볏짚 대신에 억새를 엮은 거야."

내가 물었던 말에 내가 대답을 얹었다. 나도 억새 하나 엮은 것 아닐까. 이 말들은 어디까지 기억에 남을까. 우리는 왼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길 양쪽으로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봄이 이제 다 왔다는 신호를 저희끼리 주고받는 풍경들. 정갈하게 갈아놓은 땅이며 시골 마을 전봇대 하나도 그림이었다. 나는 앞에 가면서 가끔 뒤를 돌아 엄마와 걷고 있는 두 남매를 찍는다. 우리는 너희에게 무엇을 전해주고 싶은 걸까. 나는 나보다 길을 믿는다. 믿기로 한다. 약속처럼 찾아올 봄을 기다리는 씨앗들이 저 흙 속에 있다. 산이와 강이도 그렇게 일어날 것이다. 겨울은 안으로 속을 채우는 시절, 너희들 걸음이 너희를 꼭꼭 채워주길 소망한다. 스틱을 하나씩 나눠 들고 마스크를 쓰고 걸었던 오늘은 22년 3월 1일이다. 세상이 코로나로 불안해하는 날들이다. 좋아지기를 바란다. 봄에는 일제히 활짝 피어나서 꽃노래를 불렀으면 한다.

노치마을에 가는 길은 들판이 한동안 이어졌다. 거기까지 왔는데 겨우 절반 왔다고 표지판을 보더니 실망한다. 그럴 것 없다. 가는 데 만큼만 가면 된다. 사람들 편하라고 정해놓은 거리지, 숙제처럼 다 걸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가는 데까지 가자, 애들아. 멀리 보이는 산과 우리 사이가 넓다. 빈 들판을 일부러 걸을 일은 거의 없다. 비어있는 풍경이 자주 시선을 뺏었다. 논둑길을 걸어오는 아이들을 찍고 찍었다. 그러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호수, 덕산 저수지는 딱 맞춰 나타나는 쉼터 같았다. 심심해진다 싶은 참에 호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돌았다. 이야기도 떨어지고 조용하게 걷던 사람들이 호수를 배경으로 V자를 그리며 또 웃는다. 아이들 고생 시키고 싶지 않아서 어디쯤 왔는지 얼마만큼 가면 좋을지 궁리하기에도 좋았다. 이 길을 따라 가장 마을이 나오고 행정 마을 앞에서 택시를 부르자고 했다. '조금만 가면 돼' 산이와 강이는 내가 하는 말 중에 저 말은 믿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내가 했던 가장 고약한 말이 바로 저거란다. 저희끼리 내 흉을 본다.

"갔는데 안 나오는 거야. 또 가, 그런데 또 안 나와. 또 가야 돼. 계속 가야 돼~"

저수지가 끝나고 작은 오솔길을 올랐는데 그게 고개인 줄 모르고 걸었다. 질매재는 그렇게 나온다.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는 고개는 처음이다. 게다가 거기서 보이는 운봉읍이며 다른 이름 모르는 산들은 이 길이 가진 숨겨진 매력 포인트로 충분했다. 풍경이 되는 곳에서는 늘 잠시라도 머문다. 언제 여기를 다시 올 수 있겠냐는 한마디면 다들 끄덕인다. 거기 앉아서 우리는 또 무엇을 재잘거렸을까. 마저 남은 것들을 하나씩 먹었다. 바람이 불지만 이렇게 있으니까 춥지 않다. 저기 바로 보이는 마을이 가장마을이야. 이제 정말 다 왔다. 매번 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걸음'은 신기하다. 겨우 30센티가 될까 싶은 그 한 걸음으로 여태 걸어온 길을 하나씩 갖다가 잰다고 생각하면 어느 세월에 그걸 다 잴까 싶다. 신기가 신비로 환하는 시공간이 우리의 종착지가 된다. 모르겠다. 우리가 어느 만큼 걷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 걷고 나면 우리도 믿기 힘든 '신비'를 완성품으로 꺼내놓을 것이다. 걸음을 모두 '미신'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걸으면 좋다는 것을 곁으로 듣는 사람들, 그것도 알고 있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는 사람들이나 그러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은 그들의 '걸음'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건 미신이야. 그렇게 정하고 거들떠보지 않는 냉정함이 있다. 미신과 신비가 하나의 길에서 만난다는 사실을 나는 체험하고 있다. 미신은 이기적이다. 나에게 이로운 것만 취하는 마음 자세다. 그래서 소극적이고 은밀하다. 신비는 공개적이다. 다 같이 공유한다. 적극적이며 포용한다. 신비는 자신을 잊게 하고 미신을 의지하면 자기를 잃는다. 자신을 잊고 사는 것이 새로 태어나는 기적이라면 자기를 잃는 것은 안타까운 결말이며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우리 오늘은 여기까지다.

행정마을은 고즈넉했다. 마을회관 앞에서 다들 널브러졌다. 우리가 출발했던 곳으로 데려다줄 택시를 불렀다. 버스가 다녔지만 어느 쪽으로 가는 것이 출발점인지 알 수 없었다. 버스를 타고 싶은 마음에 정류장에서 기다렸다가 겨우 이 방향이 아닌 것을 알고 그제야 택시를 부른 것이다. 이런 것도 추억이 될 수 있을까요? 어디 전당포에 가서 물어보고 싶다. 아니면 TV에 나오던 '진품명품' 같은 프로그램에라도 나가서 보여주고 싶다.

'이런 것도 명품에 드나요?'

3월 1일을 강이 말마따나 아주 보람차게 보내고 돌아왔다. 길은 한적하며 높고 그러면서 숨차지 않고 낙락하고 소슬한 맛이 있었다. 차분하게 걷기에 좋았다. 질척이는 것도 없이, 매섭게 차가운 것도 없이, 봄이면서 흐리면서 안개 속이면서 맑았다.

다시 걷고 싶은 길에 올려놓아도 손색이 없다. 가당찮게 내가 따지고 든다. 다시 거기를 다닐 기회가 있다면 서슴지 않고 합류해서 걸어보리라.

오랜만에 먹은 돌솥비빔밥은 또 어찌나 맛이 좋던지, 구수한, 고소한 두가지 말을 놓고 밥상 앞에서 티격태격, 눈들이 웃느라 재미가 좋았다. 노곤했고 어둠은 내렸다. 하루가 다 저물었다.

1년이 비로소 시작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