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2코스

비록 아마추어지만

by 강물처럼


하루를 얻었다고 할까, 하루가 생겼다고 할까. 어떤 쪽이든 그 앞에 '덤으로'라는 말을 써넣어야 오늘 같은 날은 맛이 날 것 같다. 2022년 3월 9일, 하늘이 그야말로 깨끗이 파랗다.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하다. 오늘은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날이다.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남원, 지리산 둘레길 2코스 앞에 섰다. 그러니까 순전히 길을 걷기 위해 사전투표에 참여했던 것이다. 이쯤 되면 둘레길이 건네는 매력에 빠진 거 아닌가. 휴일이나 공휴일을 챙겨서 지리산으로 향하는 것이 요즘 말하는 '소확행' 아닐까 싶어서 운전을 하면서도 경쾌했다. 주천에서 운봉까지 걸었던 것이 지난 3월 1일. 그때는 화요일, 지금은 수요일. 그때는 비가 그친 하늘이었고 오늘은 맑은 하늘. 여기 삼산마을이라고 크게 쓴 돌비석이 있다. 산이 세 개나 보인다는 뜻일까. 비석 앞에서 우리는 산이를 보면서 웃었다. 산이는 여기 아무 집이나 들어가도 대접받겠다! 우리 저기에서 버스 기다리며 앉아 있었잖아.

산이와 강이도 알아본다. 여기에서 3km를 더 가면 2코스 출발점, 우리가 그날 도착하지 못했던 운봉읍이 나온다. 주차장이 바로 옆에 있어서 좋다. 사소한 것들이 나를 돕는다고 느낄 때 삶은 얼마나 가벼운가. 간단히 점심부터 먹고 걷기로 했다. 마침 저쪽에 정자가 보인다. 우리는 느긋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 시골 한적한 마을에 자리 잡고 앉아서 김밥을 하나씩 먹었다. 다 잊힐 풍경들이 살갑다. 청승이다. 겨우 김밥 한 줄 먹으면서 사람이 가벼워지다니. 자꾸 가벼워서 한번 날아볼까, 아이들을 ㅡ내가 사실은 산타였다며 그랬던 것처럼ㅡ 놀래줄까 싶었지만 작은 시내를 건너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에 장단을 맞췄다. 그래, 그래, 미안하다. 너를 방해했나 보구나. 조용히 있다가 갈게.

지나간 날들은 쏜살같이 사라져 간다. 우리가 비록 아마추어지만 - 장비나 복장, 정보나 경험 등등이 없는 - 그동안 걸어온 길들을 떠올릴 때마다 잘 걸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들, 우리가 지나온 것들에 대한 예의, 길에서는 그것을 줍고 밟고 만진다. 저녁해를 바라보면서 걸었던 날들, 가뭇없이 흩어진 시간들에게 댕기라도 매어줄 것을.


격포 바닷가를 휘돌아 걸었던 마실길도 가끔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정말 우리가 거기를 다 걸었었나. 그쪽으로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우리 여기 걸었잖아!' 그러면서 소리치지만 그때의 감동, 그날의 감각은 좀처럼 대꾸가 없다. 마치 내가 낯선 사람이 되어 길을 가다가 '여기 누구네 집이지요?' 그러면서 묻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풍경을 닮았다. 겨우 열흘이 지난 것도 아닌데 인상이 제법 달라졌다. 해가 기울 때와 해가 한참 오를 때, 그것만 갖고도 사물은 다른 모습이다. 3월은 빠르게 순환하는 계절임에 틀림없다.

지리산은 3월, 기운이 사람과 역으로 흐르는가. 나는 겨울을 잘 지냈다가도 봄이 되면 감기나 몸살이 찾아온다. 방심하다가 얻어맞는 꼴이다. 그것도 된 통으로. 어디 가서 점을 쳐본 적은 없다. 물론 사주나 운세, 관상이나 손금, 이런 것을 돈 내고 볼 만큼 적극적인 면도 없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특히 동양 고전, 주역이라든지 명리학, 음양오행, 이런 말들을 우연찮게 자주 만나게 된다. 그럴 때 한 번씩 기웃거리면서 사주가 어떻고 천간과 지지, 명주, 이런 말들을 배우게 된다. 나는 점쟁이도 공부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걸어보는 사람, 찾아보는 사람이다. 만세력에 나오는 내 사주를 보면, 己土라고 나온다. 음양으로 따지면 음의 기운을 담고 있는 흙의 성질이다. 나 같은 사람은 사방이 넓게 퍼진 평야라든지 들판의 결을 갖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겨울에 얼었던 땅이 봄이 되면서 땅은 물의 영향을 받는다. 흙이 몸을 푸는 대신 물기가 갑자기 많아지는 수가 있다. 그럴 때 땅이 질척해진다. 누구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수변로를 걷다가도 지형에 따라 산책로의 상태가 제각각이다. 마른 곳, 돌이 많은 곳, 발이 척척 감기는 곳 등등. 어떤 곳은 물이 고인 데도 있다. 질척한 땅은 걷기에도 불편하고 힘들다. 땅이 흙이다. 대지에 봄이 들 때, 나는 그 빛과 온기의 양에 영향을 받는 기질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음양오행에 따르면 그렇다. 봄이 급하게 오거나 봄이 커다랗게 나오면 나는 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거 같다. 적당한 것이 좋다. 하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적당하고 적절한 것, 그것은 결코 쉽지 않다.

열심히 해야 할 때 적당히 하면 부족하고 적당히 힘을 줘야 할 때 강하게 나서면 깨지거나 고장 나는 것이 이치다. 상황에 어울리게 '적당할 줄' 아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을 중용이라고 이야기한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산길을 10km 걷다가도 곳곳마다 다른 환경, 상황, 시간과 마주친다. 그때마다 걷는 속도며 모양새가 달라진다. 대처 방식이 다른 것이다. 투정을 하기에는 나이를 먹었고 돌아서 가기에는 여태 걸어온 길이 아깝고 또 내 앞에 놓인 길이 기대된다. 포기도 하나의 방법은 될 수 있다. 내가 길에서 배우는 것 중에 하나는 나쁘고 / 좋은 길은 따로 없다는 사실이다. 마치 사람의 인생처럼 말이다. 살면서 자주 배운다. 나 아니고 다른 사람을 만났더라면 너는 얼마나 좋았을까. 괜히 순해지고 착해지는 것이 아니다. 이치라는 것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되는 시점이 찾아오는 듯하다. 너 어니고 다른 사람을 만났더라면 나는 지금만 같을까? 얼마든지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은 많다. 그래서 사실만 가져갈 수 있어도 큰 발견이 되겠다는 확신이 있다. 사실만, 그런 감각을 신뢰하고 싶어졌다. 배고프다, 그립다. 시원하다. 아프다. 잠 온다. 그 편하고 간단한 것들 말이다. 고맙다, 미안하다. 편안하다, 그런 말들을 따사롭게 만져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을 나는 길에서 학습하고 있다. 어느 페이지에 써놓으면 좋을까, 그러고 있다. 미안한 것은 아직 편안한 것이 아니라는 말, 미안 未安. 걱정거리가 있어서 편안한 것이 아닌 것은, 불안 不安. 아프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아서 편하고 좋은 것은, 편안 便安.

우리는 생각보다 좋고 나쁜 것들에 오래, 많이 길들여져 있다. 어떻게 길에게도 그런 꼬리표를 붙일 줄 알게 되었을까. 좋은 길/ 나쁜 길. 한편으로는 세상을 산다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닌 듯해서 이해도 되고 마음도 쓰인다. 위험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어지간한 것들은 전부 불안하다. 미래는 보이지 않고 현재는 항상 긴장된 상태다. 늘 어딘가 부족하고 쫓기고 만족스럽지 못하다. 우리가 따라가는 것들은 무엇인가. 그것은 과연 길이 될 수 있는가 스스로 묻는 일이 많아졌다. 정상을 따진다. 어느 것이 정상적인지 나는 점점 더 구별하기 어려워지면 어딘가에 다녀왔던 것 같다. 부자가 아니면 정상이 아니고 귀하지 않으면 낙오하게 되는 이 루트는 누가 개척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믿는 종교야말로 종교가 되는 일, 나는 그런 일에 적극적이지도 소극적이지도 못한다. 그래서 지금은 걷는다. 걸으면서 지금을 산다. 나는 나를 편안하게 만들 책임이 있다. 내 편안함은 길 위에 있다. 미안하다, 내 식구들아. 내 편안함으로 너희가 고생이 많다. 그것도 숭고한 희생 아니겠냐. 어디 가서 돈 주고 배울 수도 없는 거룩한 정신 아니냐. 김밥 한 줄에 상념이 지나쳤다. 커피를 마시면서 입을 헹군다. 입을 헹구면서 저 건너 우리가 걸어갈 길에서 아지랑이처럼, 추억처럼 흔들리는 그림자를 본다. 거기 우리가 있다. 한 해 전에 다른 길을 걸었던 우리가 있다. 재잘거리던 우리가 있다. 힘들어하던 우리도 있고 우리에게 놀랐던 우리도 있다. 길은 구부러지고 흩어져도 우리는 쭉 이어져 가고 있구나. 우리의 시선은 어디를 보고 있을까.

오로지 지나간 날들만 아무 말 없이 우리의 시선을 맞이한다. 때로는 토닥거리며 말도 걸어준다. 그 말들은 봄빛이다. 봄 그리고 빛, 그 두 개의 신비는 불안을 위로하고 달랠 줄 안다. 그래서 많은 것들이 그 둘을 따라 다시 세상에 나온다. 믿음처럼 따른다. 가장 먼저 대지가 기지개를 켜고 잠에서 깨어나 호흡을 한다. 땅은 대지의 살갗이다. 대지는 온몸으로 호흡을 한다. 안과 밖, 머리에서 다리까지 모두 열어놓고 빛을 받는다. 두 손을 모으고 물을 받던 사람들처럼 이 땅은 빛을 모은다. 품을 넓힌다. 자연은 본성 - nature - 자연은 생명을 보듬어 안고 그 품에서 키운다.

비는 만물을 상쾌하게 씻어주고 햇살은 탱글탱글, 좋고 나쁜 길이 따로 없는 것처럼 하늘도 늘 그렇다. 바람이 부니까 춥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다. 추우면 껴입고 추우면 움직이고 추우니까 서두른다. 크게 다를 것 없는 세상 사는 이치 같은 것이다. 대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다는 것! 나에게는 일이 필요하다. 삶이 필요하다. 그래서 자연은 그대로 빌리고 갚고 또 빌려서 갚기로 한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채워질 것이다. 나를 채우는 것을 믿는다. 시냇물이여, 흘러라.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어도 좋다. 흙이니까. 어디든 날아갈 수 있으니까. 바람아, 너에게 나를 맡긴다. 너, 불! 불이어도 좋다. 나는 그에게로 가서 꽃병이 되고 밥그릇, 국그릇이 되어도 좋다. 내가 품은 것들은 어느 날 보석처럼 그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흙이 키우는 것들은 모두 금 金이니까.

길 양쪽으로 벚나무들이 간격도 보기 좋게 늘어선 길을 걸었다. 왼쪽에는 시내가 흐르고 오른쪽에는 들판, 그 사이를 걸었다. 나긋나긋하다고 그러면 또 웃을 것 같다. 오늘 우리를 처음 마중 나온 길은 그래 보였다. 나긋나긋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상냥했다. 어쩐지 2코스도 무난히 좋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물이 가득했다. 봄이 이 근처까지 다 온 것이다. 오늘 어디에선가 그 노래도 한 번 불러야겠다. 학년이 올라가면 꼭 불렀던 노래, 음악실 가득 울리던 그 노래, 봄처녀.

운봉 읍내를 걸어서 관통했다. 그렇게 걸어보고 싶었었는데 그날이 오늘이었다니. 이 근방을 지나치면서 늘 운전을 하고 있었다. 여기가 운봉인 줄은 아는데 한 번도 운봉을 밟은 적은 없었다. 어디든 시골 동네를 구경하며 걸을 때 제대로 나그네 분위기가 풍긴다. 조령산 아래 연풍에 가서 둘러보았던 충청도 산골 마을의 깊은 내음을 산이와 강이는 기억하고 있을까. 농협 마트에서 군것질거리를 산다. 운봉 읍내를 벗어나자 서림 공원으로 가는 표지와 함께 지리산 둘레길 운봉 - 인월 제2구간 시작점을 알리는 든든한 안내판이 나왔다. 친구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스랴. 정물이 손짓하는 곳이 군데군데 있다. 나를 반가워하는 저 표정을 나는 자꾸 떠올릴 것이다. 살면서, 흐르면서, 걸으면서.

언제부터 시냇물을 잊었을까. 비석들이 일렬로 늘어선 서림공원을 지나 제방 길을 따라 걸었다. 언젠가부터 비석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나에게도 생겼다. 이름이라도 언제 살았고 어디에 살았던 사람이었을까 더듬어 보는 것이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이면서 결국 이렇게도 마주쳐야 하는 사람들인 것을 자그맣게 실감한다고 할까. 기억한다고 할까. 길에서는 구도가 되고 순례가 되는 까닭이 무엇일까. 어딘가에서 봤던 잠언 한 구절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우리는 작은 잘못들을 고백한다, 단지 우리에게 큰 잘못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믿게 하기 위해. - 프랑수아 드 라 로슈푸코.

그 말에 나도 동그라미를 그려 본다. 당신이 나를 꿰뚫었다고 밝게 웃는다. 봄날이 나에게 먼저 피어나고 있었다.

실개천이 흐른다. 고향을 잃고 언덕을 잃고 시내를 잃어가는 끄트머리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정갈하게 갈아놓은 저 땅이 몽글몽글 희망처럼 부풀 것이다. 봄기운이 완연했다. 입고 나온 겨울 외투를 벗어서 허리춤에 묶고 걷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내가 세상에서 만난 아이들이라니, 사람이 자연 속에서는 순하게 창호지처럼 엷어진다. 무작정 고맙다는 마음이 걸음마다 핀다. 걸어서, 걸을 수 있어서 좋은 일이다. 언제 무슨 인연으로 여기 북촌이며 신기, 비전마을 같은 시골 동네를 두루 구경할 수 있겠나. 그것도 봄이 오는 날에 말이다. 기세 좋게 걷던 아이들 걸음이 터벅거릴 때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송흥록, 박초월 같은 명창들의 생가가 나왔다. 다리도 쉬어 간다. 동편제라는 말도 새로 듣는다. 서편제와 동편제, 그것이 판소리를 가리키는 말이며 여기 운봉, 저 옆으로 순창, 아래로 구례에서 불리던 창법이란 것도 우리는 새로 알았다. 너희는 청산도를 알지도 못하지? 나는 뜬금없이 바다 위로 이야기를 던져 산이와 강이를 데리고 논다. 거기가 섬인데 옛날에는 거기를 걸을 만했지. 영화 '서편제'를 찍을 때만 해도 멋스러웠는데, 지금은 어떻게 변했으려나. 스무 살 적에 내가 다녔던 그 흙냄새 진하던 섬이 자욱하게 떠올랐다. 또 쉬고, 또 가자.

눈을 감고 있어도 평온한 사람, 나는 그 기운을 더듬거리는 줄도 모른다.

꽃이 만연한 봄에는 계룡산으로 가볼까도 싶다. 한겨울이었지만 지난 1월 말에 올랐던 계룡산의 경쾌함을 몸이 반겼다. 내 안의 것들이 즐거워했던 것이 선연하다. 지리산에서 계룡산에서 청산도까지 다 그리고 있다. 너그러워지고 있다는 표시다. 잊고 있었던 것들이 수면으로 떠오르는 이런 장면이 극적 모멘텀인 것을 즐긴다.

지리산 둘레길 2코스는 대부분 평지여서 어느 시절에 이 길을 걷느냐에 따라 그 인상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꼬마들과 동행하는 우리, 늘 초보 같은 우리는 지금이 이 길을 걷는 최적이었다고 여긴다. 햇볕을 다 받아 가면서 길을 걷기란 여간한 것이 아니니까, 지금이 바로 여기를 만끽할 때라고 몇 번이나 손바닥을 마주쳤던가. 시절 인연이란 말이 그대로 산길에서 울리는 듯했다. 우리는 어쩌자고 1코스와 2코스를 이렇게 예쁘게 남겨둘 줄 알았을까. 마음이 흐뭇해지면서 호수 같았다. 그리고 옥계 저수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쓰여있는 그대로 창공에 쓴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시인의 시를 아껴서 부른다. 이 길 끝에다가 내가 짓는 푯말로 거기 써두어야겠다.

호수를 지나 임도가 바르고 고르게 나 있었다. 걷기에 편했다. 산이가 동생 가방까지 들었다. 강이는 신발 깔창을 고정하고부터는 아픈 것이 없다고 좋아한다. 아빠는 무모했고 엄마는 지혜로웠구나. 무모하지 않도록 우리를 돌보는 엄마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림자가 길어지는 길 위에서 바라본 하늘에는 청색이 촘촘하게 빽빽했다. 엄마도 한 손에 물병만 들고 간다. 딱 좋은 곳에 벤치가 있구나. 여기는 처음부터 걸어본 사람이 알 수 있는 지점이다. 쉬었으면 싶은 타이밍에 그리고 쉴 만한 자리에, 그것이 행정이며 정치일 것이다. 오늘 우리나라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과연 그 선택은 훗날 어떤 모습으로 백성을 도울까.

사진도 찍고, 다들 뒤로 물러서서 찍는다. 나만 매번 맨 앞이다. 크다, 대충 다 커 보인다.

지리산 둘레길 2코스에 다녀왔다. 지난 3월 1일, 마무리 짓지 못한 1코스 나머지 3킬로미터를 같이 엮었다.

사브작사브작 게으른 걸음이어도 좋다며 걸었다. 봄기운이 완연했다. 산골 자그마한 동네를 걸으면서 구경하는 맛이 살살했다. 시냇가를 끼고 줄곧 걸었다. 산이도 강이도 우리를 도왔다. 걸어주는 고마움과 걸어가는 즐거움이 사람의 품격을 높이는 것 같아 휘파람이 났다.

다른 길에 비해 완만하고 단조로웠어도 그것으로 충분했다. 2코스를 다시 찾을까 싶으면서 다른 길들에 대한 동경과 기대, 무엇보다도 그렇게 해서 하나의 둘레길이 완성되는 일. 그 과정을 즐겼다.

달오름 마을로 들어서기 전에 오래 걸었던 길, 그 길 끝이 흥부골 자연휴양림인 줄 나중에서야 알았다. 길이 크게 휘어지더니 나타났던 휴양림. 휴양림에서 내려다보는 인월은 정말이지 흥부가 살았을 것 같은 풍경이었다. 달 밝은 밤이 기대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이오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오리다 - 김동명, 내 마음은 호수요 中

인월에 다 왔다. 수고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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