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 통조림

일본 영화

by 강물처럼


생生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 두었다. - 니체

누구나 하나의 생生을 산다. 그래서 인생人生은 일생一生이다. 모든 일생은 단 한 번이라는 짧고 강렬한 멘트가 주어진 채로 시작한다. 일회용,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회용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주 멀리서 온 일회용, 동시에 아주 멀리 떠나는 일회용이다. 내 시작은 아무나 알 수 있는 그날이 아니다. 자동차 면허증에 적혀 있는 날짜로는 나를 알 수 없다. 그것은 편의상, 그러자고 정한 날짜에 지나지 않는다. 무수한 우연과 우연의 빗겨남과 충돌, 거기에서 떨어져 나오는 파편들, 깨어진 부스러기가 공중에서 반짝이며 쏟아지는 순간을 내 시작이라고 적는다면, 무덤덤할 것이다. 내가 채웠던 빈칸들에는 내가 없다. 주민센터에 가서 나를 찾을 때면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좋을지 망설인다. 이름, 주소, 나이를 순서대로 맞춰본다. 나는 암호를 대고 상대방은 그 암호를 입력해서 나를 찾는다. 내가 찾는 나를 그도 찾는다. 이게 너라고 내게 건네주면 나는 고개 숙여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렇게 서서 바라보는 나는 낯설다. 거기 있는 나에게 1986년 그 여름은 어땠냐고 물어볼 마음은, 솔직히 나지 않는다. 그 무표정한 페이퍼에게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암묵적인 합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디 가서든 그것으로 허락받는다. 여기를 지나가겠습니다.

역시 선 하나를 그어보는 수밖에 없다. 그것처럼 한 번에 많은 것을 설명해 주는 강렬함도 세상에는 드물다. 만물을 제 몸 밖에 두고서 곧게 뻗어가는 저 선線은 모든 것들의 내부, 모든 공간의 폐부다. 내 속에 것들은 내 밖의 세상을 견딘다. 마치 집처럼. 나는 오늘도 그 덕에 숨을 쉬며 살고 있다. 선 하나가 우주를 견딘다. 숨 쉴 수 있는 공간은 인생이 된다. 알다시피 인생에는 시간이 들어있다. 선을 따라가는 시간, 선이 긋는 이야기, 시작.

나는 이혼을 한 -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래 보였다 - 쿠사나기츠요시가 되었다. 초난강, 반가운 얼굴. 나는 NHK 방송국에서 스치듯 마주쳤던 그를 기억한다. 영화에 나오는 그는 하필이면 대필 작가였다. 나는 대필이라도 해볼까 궁리할 때가 있었다. 그대로 이입移入. 기분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가 처한 상황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서 들키지 않게 표정을 살핀다. 그의 목소리가 흐르고 그가 그리는 선들이 꾸물꾸물 일어난다. 자기 작품을 쓰고 싶어 하는 것이 영락없이 나 같다. 왜 쓰고 싶을까, 가장 궁금한 말이 바보 같아서 웃음이 난다. 이 영화는 영상이 무척 깨끗하다. 배경은 1986년으로 돌아갔지만 그 배경을 비추는 햇살은 최신이다. 천연색이 무엇인지 작정하고 보여준다. 대신 있는 그대로, 있었던 그대로 보여준다. 스스로 약속한 것들은 끝까지 지켜지는 특색이 있다. 그해 여름날 하루,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히사와 타케, 두 소년은 멀리 다녀온다.

내가 앉아 있는 공간 밖으로 눈이 내린다. 해가 뜬 하늘 아래 흰 알갱이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휘몰아치고 있다. 여름날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 가는 참에 극적인 무대 배경이다. 겨울은 여름이 지나서 왔을까, 겨울 지나서 온 것이 여름이었을까. 히사는 눈이 크고 겁이 많다. 늘 궁금했었다. 눈이 크면 겁이 많은 것인지, 겁이 많은 사람들은 눈이 큰 것인지, 눈이 작은 동생에게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히사는 글짓기를 잘한다. 국어만 잘한다. 마치 우리는 서로 사는 곳이 달랐지, 영 비슷했다. 히사는 먼 곳을 동경하지만 혼자서 가볼 용기가 없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히사는 그러니까 여름에도 겨울 눈을 상상하는 - 때로는 이해받지 못해서 오해를 사는 구석도 많았을 - 심성을 가졌다. 그런 아이는 꿈을 꾸기 마련이다. 이제는 새끼손톱만 한 눈들이 바닷속 정어리 떼처럼 위로 솟구친다. 나는 눈 내리는 바깥을 보면서 바다를 헤엄쳐 건너던 두 소년을 그려본다. 영화 속에서 타케가 그렸던 돌고래 그림처럼, 지워지지 않는 상상을 두 눈으로 그려본다. 눈송이를 타고 하늘을 오르는 소년들이 돌고래를 타고 즐거워하는 소년들을 만나는 꿈을 꾼다.

타케는 초밥을 만드는 요리사가 될 줄 알았을까. 초밥을 만들고 싶다던 마음이 그대로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타케가 그리는 선, 그 안에는 있을 것이 다 있으면서 또 있어야 할 것이 다 없었다. 타케의 1986년도 표정은 런닝구 - 러닝셔츠라고 하면 타케가 표현되지 않는다 -에 담겨 있다. 여름은 얼마나 복된 계절인가. 그거 하나로 계절을 다 지날 수 있으니, 여름은 무엇을 더 요구하지 않는다. 육체, 우리의 몸이 여름이 원하는 스파링 파트너다. 땀 흘리고 걷고 모험을 하고 도망치고 헤엄치며 부메랑 섬에 가보는 것, 그 밖의 것들은 아무 관심도 없다. 타케와 히사는 여름을 제대로 만난 셈이다. 둘은 그 여름을 딛고 쑥 자란 것이다. 두 소년의 풋풋한 우정을 영화는 기억하지만 나는 여름을 그들 옆에 서라고 권한다. 너희 셋, 어울린다. 여름이 친구였다고 바다가 토모다찌*였다고 그 사진 아래에 써주고 싶었다. 잊히지 않는 것들이 사람을 성장시킨다. 좀처럼 저물지 않는 저녁놀을 따라 오래 걷는 날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기 마련이다. 슬픔이든 그리움이든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릴 적 친구든, 젊었을 때 만났던 그 사람이든, 길섶에 숨겨 놓은 보물들 말이다. 생生은 또 어디에 그런 것들을 감췄을까. 몰래 아메리카노라도 한 잔 건네고 올까.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 성 프란체스코, 평화의 기도

어린 타케는 동생이 넷이나 있었다. 어부였던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집은 가난했다. 런닝구만 입고 다닌다고 친구들이 놀리는 것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타케네 집은 볼 만했다. 놀림감은 먹잇감이다. 성선설이 궁지에 몰리는 때가 바로 이 지점이다. 타케네 반 친구들이 실컷 웃다가 사라졌다. 타케는 너덜거리는 집을 보여주기가 죽도록 싫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있잖아, 왜 나랑 오자고 했어? 자전거 가지고 있어서?"

히사가 물었다. 이렇게 먼 곳까지 올 줄 몰랐고 더구나 타케였다니, 히사는 그날 하루가 신세계였다. 모든 것이 처음 열린 세상이었다.

"웃지 않아서"

그날 친구들이 깔깔대며 저게 집이냐며 놀려댈 때, 히사는 웃지 못했다. 히사는 친구들을 따라 웃기에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그 일을 계기로 여름이 시작된 것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더라도 그 여름은 잊지 못할 것이다' - 히사

나는 얼마만큼 생生을 이해하기로 했던가. 내 탓이 아니라고 다 팔자가 사나워서 그러는 것을 어쩌겠냐고 고집스럽게 불퉁거렸던 나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할까. 타케의 표정은 냉소적이며 경우에 따라서 대담해진다. 히사는 겁이 많지만 상대를 배려할 만큼 세심하다. 내가 예전에 알지 못했던 것이 하나 있다면 우리의 삶은 하필이면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너 나 없이 불완전해서 태어났고 불완전하게 살다가 불완전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난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래서 곁을 줄 사람이 사람에게는 있어야 한다. 흔히 말하는 대로 불완전한 존재가 다른 불완전한 존재를 만나 그나마 덜 불안하게 길을 가는 것이다. 생명은 그렇게 서로 다른 것들, 낯선 것들이 함께 타오르는 불꽃이다. 타케와 히사, 히사와 타케는 서로가 가진 것으로 저 바다를 다 건너 다니는 것이다. 세월이라는 바다까지도, 인연이라는 심연까지도 건너는 것이다.

타케 어머니가 사고가 나는 곳에서 우리 식구들은 모두 한 마음이었다. 그러면 안 돼, 안 되지. 그러지 마, 아. 넷이서 다른 소리를 냈지만 모두 한 곳에 힘을 모았다. 타케의 엄마가 돌아가시고 친척들이 타케의 동생들을 맡았다. 타케는 혼자서 누구를 따라갔을까. 타케와 타케의 친척 아저씨가 앉아 있던 기차역 벤치를 나는 놓치지 않는다.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 장면에는 바닷속보다 깊은 침묵이 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타케와 친척 아저씨, 침묵이 찍혔다. 아름답다는 말은 다시 꺼내지 않고 그저 바라보리라. 바다가 보이는 넘치게 아름다웠던 그 역에 가보고 싶어졌다. 거기 벤치에 앉아서 타케의 마음을 만져보고 싶다. 울음이 겹으로 포개지던 그 어린 생生이 앉았던 자리에서 나는 문을 열고 나의 밖으로 나갈지도 모른다. 거기서 나를 기다리는 것이 떠나지 못했던 내 어릴 적 모험이라면 나는 또 어떻게 할까. 그때에 나는 사랑하게 하소서. 모든 아름다운 것들 속에 머무는 적막을 사랑하게 하소서. 나를 사랑하는 나를 만나고 싶다. 마흔이 넘은 히사가 영화 시작에 무엇을 써야 할지 두리번거리다 이렇게 말한다.

"내게는 고등어 통조림을 보면 떠오르는 아이가 있다."

그를 따라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게는 자전거만 보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토모다찌 ㅡ ともだち,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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