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웃었다

오래 쓰는 육아일기

by 강물처럼


화분이 놓인 창가 앞으로 갔다. 요 며칠 추운데 그래도 저희끼리 잘 지내고 있다며 일부러 시선을 건넸다. 그런데도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구부렸던 몸을 일으켜 이번에는 창밖을 두리번거렸다. 거리 이쪽과 저쪽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제는 소리까지 껄껄대며 웃음이 더 심해졌다. 이렇게 웃어본 지가 언제였는지 모르겠다면서도 웃었다. 내가 웃는 것이 아니라 웃음이 찾아와서 나를 흩트려놓는 것 같았다. 그러는 내가 어색하게 보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산이도 머리를 말리다가 나와서 강이 방으로 뛰어들어가는 것이 등 뒤로 느껴졌다. 나한테 왜 그러냐고 묻지도 못하고, 하여튼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우리 집 아이들만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산이도 코가 잘 막힌다. 차 뒷좌석에 앉아서 2~3분 간격으로 코를 킁킁거린다. 겨울에는 확실히 더 그런다. 병원에 가도 별다른 처방이 없다. 저러다가 축농증이라도 생기는 거 아닌지 속으로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나마 산이는 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라서 그럭저럭 이겨내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동생, 강이다. 강이는 비염이 있다. 비염 자체가 계절에 민감한 특징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유난히 심해지는 때가 있다. 우리 몸 어디 한구석도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라서 어딘가 아프거나 다치면 바로 지장이 온다. 아무 쓸모가 없을 것 같은 데도 새로 깨닫게 된다. 여기가 아프면 이런 것들이 불편하고 힘들어지는구나, 그러면서.

줄줄 콧물이 흐르다가 눈물까지 범벅이 되는 밤들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강이 침대 머리맡에 수북이 쌓인 휴지를 보면서 밤새 얼마나 고생했을까 싶어 아이를 깨우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그나마 방학 시즌에는 그렇게라도 아이를 위로하지만 학교에 가야 하는 아침에는 속수무책이다. 겨우 손수건을 챙겨 다니라고 하나 마나 한 잔소리가 전부다. 의사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가 아빠니까 그 책임을 같이 느낀다. 자식이 아프면 부모도 아프다. 비염, 아토피성 피부염, 자폐성 장애, ADHD,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한껏 무거워지는 '아픔'들이 그 밖에도 많다. 지금처럼 면역력이란 말을 자주 들으면서 살아갈 시대가 있을까. 태어나서 3개월이 다 지나기 전에 맞아야 할 기본 접종이 5개, 그 뒤로도 계속 주사는 맞아야 한다. 어른이어도 간염부터 폐렴, 대상포진, 예방 접종이란 이름으로 맞아야 할 주사는 끝나지 않는다. 독감에다 지금은 코로나 백신까지 전 국민이 다 맞아야 하는 시대다.

'오염'이란 말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대기 오염, 수질 오염, 또 갖다 붙일 수 있는 말들은 모두 '오염'이 될 소지가 있다. 증거도 오염되고 기사도 오염되는데 사람이라고 그러지 않을까. 정말로 사람이 섬처럼 따로따로 떨어져 살아야 할 날이 오기라도 할까. 걱정이 끝이 없다. 그래서 어느 하나를 고치는 것이 바다에 돌 하나 던져보는 것처럼 허허로운 때가 있다. 금방 고장 날 텐데, 다시 또 물이 새고 물이 막히고 어수선해질 것이 눈에 보여서 일부러 외면할 때가 있다. 과연 의사 선생님들은 환자를 볼 때 어떤 심정일까. 하느님은 세상을 굽어보시는데 어떤 마음이 드실까.

아이를 데리고 산으로 들로 다닌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았던 '처방'이었다고 여긴다. 생각을 뛰어넘어 하나의 신념, 믿음에 가까워졌다. 아이들이 가끔씩 투정을 부리더라도 나는 이렇게 도울 생각이다. 어르고 달래서, 또 재미나게 굴어가면서 가자고 그럴 것이다. 우리 여기에서 여기까지 걷다가 오자고 그럴 것이다. 천식이 있다고 병원에서 담아준 약은 실로 거대했다. 그 약을 앞에 두고 탄식이 샜다. 이 약을 다 먹어야 하나요? 대답이 무서웠다. 평생 먹어야 해요. 우리는 약을 버렸다. 그래서 또 생각한다. 그게 약이 아니지만, 그래도 잘 걸었다. 강이하고 걸을 때 많이 더 즐겁다. 가장 약한 줄기가 나를 따라온다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서서 기다릴 수 있고 얼마든지 길을 찾아가며 앞서 걸어갈 수 있다. 기침이 가라앉았다는 말도 듣기 좋고 콧물이 이제 나오지 않는다는 말도 감격적이다. 그러나, 그러나 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 모든 것이 그렇듯,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사는 것이 사람에게는 주어진 운명이다. 시지프스만 돌덩이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살아야 한다. 산에 한 번 다녀와서, 공부 하루했다고, 봉사 한 번 다녀온 것으로 삶은 변하지 않는다. 일생도 겨우 한 번이다.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이태백이 그랬다. "도끼를 갈아서 도대체 언제 바늘을 만들려고 그러시오?"

노파가 답했다. " 하다가 그만두지만 않으면 당연히 바늘이 되고도 남지요."

이태백은 그 말을 듣고 다시 상의산으로 돌아가 공부에 매진하고 훗날 세상에 남는 시선詩仙이 된다.

- 중략

그래서 나는 많이 웃었다.

강이는 밥 먹고 30분 지나서 한약을 먹는데, 그 약이 비염이나 천식에 도움을 준다고 해서 겨울에 먹고 있다. 어린것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아무 말 없이 넙죽 잘 받아 마신다. 나이 든 아빠는 좀 신파적이다. 아내는 출근하고 없어서 내가 약을 챙긴다. 약을 따라 강이 방에 가져갈 때마다 뭐라도 하나 더 챙겨서 '일부러' 쟁반에 올려 - 그러니까, 거안제미를 흉내 낸다 - 에티켓도 차려가며 똑똑, 네, 그러고 나면 문을 열고 들어가서 내려놓는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그러고 고개도 깊이 숙여 인사하고 나온다. 마치 호텔 서비스처럼.

과자도 한두 알, 젤리가 있으면 그것으로, 샤인 머스캣도 두 알, 사탕, 초콜릿도 갖고 들어간 적이 있고, 날마다 그 시간이 되면 궁리를 한다. 그 궁리하는 자체가 재밌다. 그리고 강이도 은근히 오늘은? 그러는 것이 있다. 어제는 아무것도 없었다. 과자도 떨어지고 냉장고를 봤더니 치즈 말고는 마땅한 것이 없었다. 작고 귀여운 것, 쓴맛을 달래줄 수 있는 한 알이 필요한데 없었다. 간장 종지에 담을 그 작은 것이 없다니...

싱크대 아래를 열어봤다. 라면이 있고, 황태포가 있었다. 벌써 웃겼다. 황태포 조각을 하나 집었다. 그것을 담아서 쟁반에 올리고 약도 따랐다. 그리고 하던 대로 노크, 좋은 시간 보내세요, 시침을 뚝 떼고 그대로 나왔다. 이게 뭐지? 고개를 돌리는데 강이가 고개를 쭉 내밀며 그것이 뭔가, 그러는 것이 곁으로 보였다. 아무 말이 없었다.

창가에 섰다. 막 웃음이 난다. 아무 일도 아닌 것이 이렇게 코믹하다니, 10년 치 웃음을 웃은 것 같다. 황태라니, 황태 쪼가리였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