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얼굴. 비가 그친 풍경이 말없이 무거워 보였다.
눈에 보이는 것들마다 물기가 가득했다. 흐르지 않고 갇힌 것들은 깊은 표정을 짓고 있다. 아스팔트 양어깨가 무거워 보이고 아파트 건물 옆구리도 우울을 비춘다. 날이 밝았어도 꿈쩍하지 않고 돌아누워서 한 번 깬 잠을 다시 이어 붙일까 시도한다. 일요일 같은 월요일 아침. 하늘은 흐리고 아직 물기가 남아있다.
아이들 시험도 끝났으니까, 지금이다. 일어나자, 나여.
그렇게 움직였다. 세자리아 에보라 Cesaria Evora, 가난했지만 밝은 음성을 듣는다. 그녀의 음악에는 바닷가 항구, 이름도 어려운 작은 섬 케이프 베르데를 무작정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딘가를 가보는 것, 그것이 내가 사는 목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마음먹는다. 내 어린 시절은 어디에서 무엇을 다 먹지 못하고 자랐던지, 게걸스럽다. 갈 데를 부지런히 찾는다. 가면서도 찾아가는 거기는 늘 저만치 피어 있는 꽃 같다. 나는 그것도 좋은 징조라고 여긴다. 나를 아끼는 것들은 그렇게 떨어져 있다. 그 모습으로 반긴다. 간격이 잘 맞춰져 있으면 자연이든 사람이든 편하다. 숨쉬기도 편하고 지내기도 좋다. 더 가까이 가고 싶은 그 마음만 잘 다스리면 세월도 근사하게 누릴 수 있다.
노래가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나를 깨운다. 흥얼거리며 차근차근 짐을 챙겼다.
동남쪽부터 환해지는 하늘을 서서 맞이했다. 무엇보다도 6개월 전에 봤었던 수철 마을, 거기에서 봤던 봄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다. 지막을 지나 평촌, 바람재에 오르는 길이다. 1년에 겨우 두 번 지리산 둘레길에 찾아온다. 모두 함께 걷는 일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인 것을 매번 깨닫는다.
어렵다고 아예 못할 정도는 아니다. 무엇이든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그런다. 좋은 것들, 정말 좋은 것들 앞에서 우리가 이구동성으로 터뜨리는 말은 그 말이다.
'돈 주고도'
그래, 돈 주고도 못 사고, 못 먹고, 못 보는, 그 기막힌 것들 앞에서 우리는 무방비 상태가 된다. 우리를 숨기지 못하고 우리를 표현한다. 그때 떠오르는 것들은 무엇인가. 다 표현하지 못하는 유쾌한 좌절쯤은 얼마나 앙증맞고 인간적인가. 그런 풍경들 앞에 서면 한없이 가벼워진다.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실컷 가벼워진다. 너도 함께 여기에, 그야말로 근사한 광고 문구가 손바닥에서 펼쳐지는 마술을 상상한다.
돈은 돈으로 얼마든지 살 수 있으니까, 자본이 막다른 골목은 아마 그쯤이 될 것이다. 이미 미어터지게 된 일방통행로에 계속 차들이 들어선다. 순환 능력을 상실한 자본은 심각한 폐색증을 일으킬 처지에 놓였다. 살아있는 것들은 본능적으로 냄새를 맡는다. 화재경보기처럼 우리 안에 설치된 감식 기능이 위험을 감지하고 작동을 시작할 때는 언제일까. 돈 주고도 못하는 것들이 얼마만큼 쌓이면 저 길에서 돌아설까.
올해 비가 내려서 돈 주고도 못 먹는 그 맛있는 경험을 몇 번이나 취소했던가. 나는 궁금하다, 우리가 차리게 될 식탁이 궁금하고 그 식탁에 둘러앉아 무슨 감상들을 터뜨릴까, 어떤 푸념들이 잔챙이처럼 파닥거릴까, 다 듣고, 보고 싶다.
오늘 같은 날, 그런 날은 어떤 날인가. 우리 삶에는 오늘 같은 날이 몇 개쯤 준비되어 있는 것일까. 오늘 같은 날 - 정기 적금도 아니고 쌈짓돈 같은 날에 지리산 길을 찾아가는 것이 왠지 어울린다. 시간에게 장난을 치고 발도 걸어본다. 지리산에 오면 그 느낌이다. 여기 6코스 아이들과 함께 걷는 길도 수술받기 전에 혼자서 걸어봤던 길이다. 그때는 천천히 갈 줄 몰랐다. 오로지 숫자에 빠져서 어디든 서둘러 다녔다. 몇 킬로, 오늘 몇 킬로까지! 군대에서 훈련하듯이 걸었다. 아무 소용없는 것에 헛심만 썼다. 힘은 그런 것인가 싶다. 놀래려고 이기려고만 한다. 잠시만, 그 멋진 음악, 탱고를 들으면서 옛날을 떠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인생은 두 어깨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아틀라스 같은 거대한 신화가 아니라 겨우 말 머리 하나 차이가 만드는 여운으로 그리는 그림 아닐까. 그 그림마저도 가뭇없이 사라지고 없는 빈 캔버스. 사람들의 환성과 탄식이 뒤섞인 경마장을 그린 그림 말이다.
나는 그 말을 오래 적어 놓았다. 여인의 향기에서 눈이 보이지 않는 남자가 했던 말, "발이 꼬이더라도 그냥 탱고를 계속 추면 됩니다. all tangeld up, just tango on." 그 말을 여기에서 꺼낸다. 말이 달린다. 사람 입에서 나왔던 말이 말처럼 달릴 수도 있구나. 멋지다. 내 속에는 좋고 멋진 말들이 담겨있다. 아, 말들이 달린다. 책에서 봤던, 술집에서 만났던, 학교에서 나눴던, 그리고 또 세상 곳곳에서 나를 일깨워주던 고요한 말들, 그 말들이 초원을 가로지른다. 나는 말발굽 소리가 울리는 대지가 되어 잠시 말을 잃는다.
이런 식으로 마음을 추스르게 하는 힘은 어디에 있다가 등장하는지, 길에서는 음악이 어울린다. 사람에게는 무엇이 어울릴까. 힘이 드는 곳에서 힘에게 전한다. 철없던 그때도 고마웠고 지금도 여전히 고맙다. 앞으로 내가 더 잘할게.
탱고가 흐른다. 화해와 회복의 장소에 그만이었다. 스페인어, 포르 우나 카페사 Por una Cabeza, 그야말로 '머리 하나 차이로'
나 혼자 걷던 둘레길이 저기 있다. 하나의 나는 앞에서 또 하나의 나는 뒤에서 걸어오고 있다. 둘 사이에 머리 하나의 간격이 있다. 시간이나 길은 나를 알아볼까. 흥미롭다. 나는 그들을 알아보는데 말이다.
그렇게 찾아온,
여기는 바람이 곧잘 불고 있다. 아침에 떠나온 그곳은 해가 났을까. 가을꽃들도 많이 피었다. 살살 흔들리는 꽃들, 구절초, 쑥부쟁이, 벌개미취. 닮은 것들끼리 사이도 좋아 보인다. 이 산골에서도 노랗게 벼가 잘 익어가고 있다. 이것이 행복이다 싶다. 색이 예쁘면 감당이 안 된다. 거기다 산청은 지금 한참 약재 축제가 물이 오른 듯하다. 지리산 둘레길 6코스는 산청을, 산청의 배꼽에서 심장을 구경하며 지나간다. 우리는 지금 경호강이 흐르고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잠시 앉아있다. 바람이 가을을 새기고 있는 곳에서 식구들을 둘러본다. 하늘은 나른하고 강물을 유유하고 나는 평평하다. 가로수 그림자가 길에 무늬처럼 떨어지는 이 그림을 어디에 걸어둘까. 자, 일어서자.
비가 내리고 날이 서늘했다. 비유하자면, 우리에게는 ´동풍이 있었다.'
적벽에서의 일전을 앞둔 오나라 장수, 주유는 불화살로 적군을 공격할 작정이었다. 그는 외쳤다.
´만사가 모두 갖춰졌는데 오직 동풍만이 부족하다. ´
궂은 날씨를 탓하며 그대로 집에 있기에는 하루짜리 이 여유가 눈에 밟혔다. 조바심이 났다. 하늘만 보면서 일요일 오후라도 출발할 요량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놀던 아이들도 집에 돌아와 같이 기다렸다. 그러나 비가 내렸다. 그렇게 날이 어두워졌다. 내일 아침 일찍 하늘을 보고 다시 정하기로 했던 여정이었다.
구름 사진도 챙기고 날씨 예보를 중복해서 살폈다. 길에서는 무엇보다 날씨를 잘 만나야 한다. 됐다, 동남풍이 분다.
거기 도착해서도 비가 내리면 차 한 잔 마시다가 오면 된다. 읽고 싶은 책을 각자 한 권씩 챙겼다. 비가 내리는데 산으로 출발, 바람을 믿었다.
´바닥´이란 말이 다르게 들릴 때가 있다. 더 나빠질 것이 없다면서, 바닥을 딛고 일어서겠다는 사람을 보면 뭉클한 것이 있다. 두 팔이 없던 동자승이 발로 글씨를 쓰고 밥도 접시에 담아 제힘으로 먹던 모습 말이다. 바닥에서 올라온 것들은 구름 위에 하늘을 본다. 날씨든 꽃이든 사람이든 모든 그렇다.
가을이 정들기 시작하면 색이 변한다. 벼는 다 익었고, 그 노랑은 늘 사람을 안심시킨다. 황금이라고 불러도 좋을 벼 이삭이 산골에서도 넘실댔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 주렁주렁 달린 감을 넘보는 것 같다. 하기야 가을볕을 그대로 품에 안은 주홍감은 가을이 끝날 무렵에는 실핏줄이 다 보일 만큼 투명할 것이다. 속까지 울긋하고 불긋하게 가꾸면서 깊은 추색秋色을 겹겹이 동여맬 것이다. 아서라, 볏님들아. 그대들은 하나의 무리群로 엮은 큰 장수가 되어라. 본성을 살려 사람의 뱃속을 채우고 세상을 구하여라. 보시布施 하여 그대는 밥이 돼라. 그 밥으로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착해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라. 우리는 땅을 아끼고 너는 우리를 아껴 오래 세상에서 마주쳤으면 한다. 그때에도 너를 위해 하늘에 빌고 땅에 감사하리라. 겨우 노란 수컷들을 달랬다. 감나무의 감들도 조용히 붉다.
지리산 둘레길 여섯 번째 코스, 수철에서 성심원 12km는 야트막한 노지였다가 포장된 임도였다가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도 나온다. 산이와 강이가 편하게 걸었다. 다른 길도 여기 같았으면 좋겠다고 속을 비친다. 게다가 거리도 짧으니까 더 좋아했다. 평지를 걷는 날은 날이 서늘하거나 시원해야 한다. 될수록 뙤약볕은 피하는 것이 오래 걸을 수 있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 것이다.
다행히 비가 내리지 않았고 선선해서 좋았다. 한 십 리쯤 더 걸어도 좋을 것 같았다. 한밭 마을 앞에서는 걸음이 저절로 멈췄다. 비를 뿌렸던 구름이 급하게 어딘가로 서두르는 모습이 작고 아담한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그림 같았다. 비슷비슷한 크기의 산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마을을 감싸고 마을로 들어서는 너른 들판에 수확을 앞둔 벼가 한창이었다. 성심원 4.3km라고 쓰인 표지판도 찍어본다. 어쩌면 지리산 둘레길에 서 있는 많은 길 안내 화살표 중에 배경을 멋지게 소화해 내는 그런 표지판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앞으로 마주치게 될 다른 화살표들도 기대된다.
6코스는 심심하지 않다. 경호강이 청년처럼 옆에서 흐르고 있어서 길이 생기가 있어 보인다. 파랗다가 깊다가 넓어서 발길을 멈추게 한다. 강가 모래밭에 나가고 싶은 것을 참고 길가 카페에 들어가 이 여행을 즐겼다. 마침 이층 한쪽은 온통 유리로 지어진 공간이었다. 거기 해먹도 있었다. 산이가 그 안에 쏙 몸을 감췄다. 강이 흐르는 곳에서는 사람이 연주되는 느낌이다. 하마터면 시를 쓸 뻔했다. 딸아이, 강이는 또 자랑한다. 내 친구 '강이' 흐르고 있네, 그러면서 바다는 제 언니라고 이야기를 짓는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자기 혼자만 이름이 '한 글자'여서 바꾸고 싶었단다. 신데렐라로 바꾸고 싶었단다. 그런데 그러지 않길 정말 잘했다고 좋아한다. 그리고 점점 자기 이름이 좋아지는 중이란다.
커피를 마시며 나도 맞장구를 쳤다. 돈 안 들이고 짓는 것들이 좋은 거다. 내가 지은 이름, 하지만 그 이름은 처음부터 이 땅에 있었던 이름이다. 산이며, 강이며.
오른쪽으로는 병풍처럼 지리산이 펼쳐지고 왼쪽에는 경호강이 늘씬하게 흐르고 있었다. 가을은 점점 더 무르익을 것이다. 여기서 세월을 사는 주인장 부부의 표정이 보살 같았다. 아니, 천사 같았다고 해야 내 종교에 맞을까. 편안했다, 적어도 마주한 나에게는 담백한 약수 같은 기운이 풍겼다. 다음에 또 들러서 커피를 마실 것 같다.
아내와 걷는 뒤로 산이와 강이가 따라온다. 온전히 자연 속이었다.
길 위에서 만나는 것들이 소중한 줄 몰랐다. 그것도 몸에 힘이 좀 빠져야 겨우 배울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몸에 힘이 좋을 때는 다 이기려고 한다. 이길 것만 같은데 그거야 당연하다. 지금은 지고도 이기는 것이 편하고 좋아 보인다. 그것을 본받아야지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아니면 이기고도 지는 것은 또 어떨까. 이러나저러나 질 것이 훤하다. 나이를 공으로 먹을까. 나이 먹은 만큼 지고 또 나이 먹은 만큼 잘 지고 싶다. 훤한 것이 환한 것 아니었던가. 불꽃처럼 말이다. 지는 것은 사그라들고 엷어지고 희미해지는 일, 그리고 그러고도 씨가 되는 일이다. 내가 지고 난 자리에는 씨가 남기를 빈다. 길에서 성당을 만나면 부처님을 본 듯이 손을 모은다. 성심원에 성당이 있을 줄은 그 앞에 설 때까지 몰랐다. 하늘은 파랗고 강물도 파랗고 나도 파랬다. 파란 날 위로 산새들이 지저귀는 날이었다.
거기 대성당은 넓고 고요했다. 아무도 없는 성당을 잠깐 방해했다. 깊은 명상에서 빠져나오는 성당 얼굴이 그 순간 스쳤다. 스테인드글라스에 그려진 달과 별이 꽃처럼 피었다. 햇살, 살이 옅어지는 시간에 공기 입자들 하나하나가 춤추며 일어서는 이 시공간의 얽힘을 나는 사랑한다. 운명 같은 것들이 달콤한 설탕처럼 쏟아질 것 같은 눈부심에 그대로 몸을 맡긴다. 폭포수 아래에 선 것처럼 고요하게, 우렁차게, 정신 번쩍 드는 순간 말이다.
햇살이 뒤에 서 있으니 유리에 그린 그림들이 신이 나서 성당을 온전히 지키고 있었다. 고요하지만 적막하지 않은 것, 막연하지만 막막하지 않은 어떤 것이 성당 안에는 있다. 거기 앉아서 십자가를 바라봤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고 어떤 말이 있었다. 그것이 종교 아니겠는가.
성당 마당 느티나무 아래서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식구들에게 한 사람씩 들어가 보기를 권했다. 선선히 따라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가족이다. 먼저 아내가 성당에 들어갔다 나왔고 산이가 그 뒤를 이었다. 10분이 지났는데도 안 나오는 것이 사람을 궁금하게 했다.
잘못한 것이 많나? 강이가 던지는 말에 다들 웃었다. 맑은 표정으로 산이가 나오고 강이도 뛰어 들어갔다. 가을바람이 나뭇잎을 쓸고 있었다. 그 모습을 찍기도 했다. 강이는 더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나는 피아노 있는 데도 가보고 고백 성사 보는 데도 봤고, 앞에까지 가서 십자가도 자세히 봤어, 성당이 넓네!"
우리가 속으로 했던 것들을 강이는 눈으로 대신 다 하고 나온 듯하다. 그것도 괜찮다 싶었다. 그러면서,
"유리창에 있는 그림들이 너무 예쁘더라."
이렇게 해서 12. 2킬로미터를 마쳤다. 다음 코스는 12. 6 킬로미터짜리, 7코스다. 또 오자는 말이, 여기에서부터 시작하자는 말이 우리의 약속이다. 세상에는 길이 참 많다. 그러나 길이 없다고도 한다. 겨우 몇 군데 다녀본 우리 아이들은 뭐라고 말할까. 나는 그때에도 오늘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함께 걸어본 길이 우리가 사는 길에 불어오는 ´동남풍´이었으면 싶다. 길이 바람이 되는 꿈, 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