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40분, 청암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빗방울이 날렸다. 둘레길 한 바퀴를 다 돌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6시까지는 집에 도착해서 토요일 저녁 미사에 참석해야 한다. 적당한 데까지 걷다가 돌아올 생각이었다. 평소 우리가 한 번 쉬던, 중간 휴식처를 생각했었다.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살짝 기운이 빠진 상태였다.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는데 힘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걷는 청암산이었고 밖에 나와서 산책하는 거 자체가 반가웠다. 호젓했다. 옷이 젖을 정도로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니어서 감상적인 구석도 있었다. 그래도 기운이 나지 않으면 무슨 일이든 곤란하다.
거기서 300미터쯤 더 가면 오두막 같은 데가 나오고 오두막을 지나서 500미터를 더 가면 우리가 쉬던 곳이다. 1킬로쯤 덜 걸었다. 너른 평상 같은 것이 보이길래 우선 앉았다. 사과 하나를 깎아서 먹고 그쯤에서 돌아가기로 했다. 서운했지만 비가 더 내리기도 했고 시간도 그렇고 또 옥경이 국밥이 먹고 싶었다.
정말이지, 그 집 국밥은 왜 그렇게 맛이 좋은 거냐!
건더기를 주어 먹으면서 얼추 배가 찼다. 그런데 어떻게 거기에서 그만 두나. 아, 사람이 그렇구나. 길은 얼마든지 그만 둘 줄 알면서 밥은 그러지 못하는구나. 그거였구나. 내가 부족한 것이!
한 그릇을 다 먹고 난 후 오른쪽 옆구리를 직격하는 통증이 뻗쳤다. 내가 느끼는 통증의 종류, 강밀도는 순간적으로 파악이 된다. 괜찮은 거, 불안한 거,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는 거. 이 정도면 불안을 넘어서 소리가 나오지 않는 쪽에 가깝다. 대개 그럴 때는 이마에 진땀이 맺힌다. 눈은 커지고 저절로 배를 움켜잡고 몸을 최대한 구부린다. 그리고.... ㅋ. 기도를 한다.
서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차분하게 문을 잠그고 변기 뚜껑을 들어 올리고 토한다. 중간에 얹혔을 때는 토하는 것이 아주 쉽다.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될 정도만 토악질을 하고 나면 된다. 그런데 이렇게 창자로 넘어간 듯할 때가 고역이다. 문제는 어지간해서는 역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때는 마사지를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이미 넘어갔느냐 아직 그렇지 못했느냐, 그러니 위胃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사람을 돕는 일인가. 위는 통이다. 그것은 단단한 스테인리스 통도 아니고 깨지기 쉬운 플라스틱 통도 아니다. 삼킨 것을 받아뒀다가 문제가 생기면 다시 게워낼 줄도 아는 영리한 기능을 가졌다. 사람을 돕지 않는 기관은 없다. 사람이 기관을 돕지 않아서 탈이 나는 것이다. 내가 위라면, 내가 심장이라면 적극적으로 민원을 넣을 것이다. 이러다가 사고 납니다. 그때 어떡하시려고 그러시나요! 따질 것이다.
한 개인의 일기를 이렇게 공개하는 것은 얼굴 빨개지는 일이다. 벌써 나는 그러기로 마음을 먹는다. 아무래도 궁금할 것이다. 위가 없는데 어떻게 지내는지, 나는 처음에 사람이 어떻게 사냐고 묻기까지 했으니까.
어제는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을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고는 배가 아픈 것이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았다. 모든 결정과 동작이 순간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먹은 것은 아래로 흐르고 그 시간은 매우 짧다. 그래서 중간 기착점, 위胃는 소중하다.
다행히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러니까 내 소장에 일시적으로 교통체증이 일어난 듯하다. 그리고 나는 즉시 화장실에 왔고.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힘들어했다. 쏟아진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안에서는 내가 내린다. 방금 전까지 고마웠던 인연들이 변기통에 담겼다. 물을 내리고 수도꼭지를 틀고 입을 헹군다. 거울에는 어떤 사람이 나를 보고 있다. 그는 괜찮냐고 묻고 나는 웃었다.
익숙한 아내, 아내는 밥 먹다 화장실 가는 나한테 익숙하고 나는 그런 아내에게 익숙해졌다. 그런 순간들이 있다. 몇 가지 감정들이 함께 소용돌이치는 장면. 누구는 짬뽕이라고 하고 누구는 잡탕이라고 하고 나는 비빔밥이라고 부르는 그 정체불명의 맛이 가끔씩 우리를 방문한다. 망개떡 사려, 찹쌀떡~. 추억처럼 그리울 것이다. 아찔했으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툭툭 털고 일어나는 자리를 아낀다. 모든 순간이 그렇지 않던가. 사랑스러우면서도 불안하고, 불안하면서도 예쁜 것, 마치 젤라또를 하나 더 먹어도 될까 싶은 거 말이다. 배가 아플 텐데 너는 왜 이렇게 부드러운 거냐 싶은 거 말이다.
그 누군가에게 들려줄 이야기다. 아직 아프지 않은 그대에게 전하는 말이다. 늘 하는 말, '꽃자리' 그 말을 음미해야 한다고 쓴다. 내가 있는 여기도 꽃자리인데 너의 그 자리는 얼마나 좋은 거냐고 가르쳐 주고 싶지는 않다. 다시 5년을 기약하며 거꾸로 쓰기 시작한 일기다. 1787일. 얼마나 근사한 숫자인가. 고백하기에도 소풍을 다녀오기에도 소설을 쓰기에도 무엇을 하기에도 다 충분한 날들이다.
다 걷지 못하고 사과 하나 깎아 먹고 왔던 길로 돌아오면서 아내에게 그랬다. 우리는 이런 분위기를 끌고 가는 데 달인이다. 빗방울이 수면을 가득 채우고 머리가 심심하게 남은 물풀이 - 부들 아니었을까 싶은데 - 흔들리는 곳에 물오리가 동동거렸다.
"사람들이 나중에는 통증이 더 커서 아무런 저항을 못하잖아. 몸은 쇠약해지고 통증은 커지고, 압도적인 상태가 되는 거지. 마지막에는 말할 힘도 없어서 아픈 것이 아픈 줄 모르는 것 같더라고."
아내가 한마디 거든다.
"그러고 보면 우리 아빠는 정말, 주무시다 돌아가셨잖아요. "
나는 우리 아빠를 떠올렸다.
아버지 기일이 며칠 전이었다. 아버지는 갑자기 돌아가셨다. 서류에는 급성심근경색이라고 적혔다.
"나는 이런 데 있잖아, 이렇게 하늘이 보이고 그런 데, 이렇게 풍경을 바라보다가 죽고 싶어."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말이죠? 이상하게 아내는 끝을 올려서 상긋하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만든다. 나도 거기에 도움을 받아 정신 차리고 거들었다.
"근데 다른 사람들이 고생하잖아. 그리고 그게 법률적으로도 문제의 소지가 있을 거야."
아내는 겁이 없는 것인지,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착한 것인지······. 그런다.
"내가 해 줄게요."
뭐야, 울지는 않더라도 무슨 소리냐며 길길이 뛰어도 시원찮을 판에 너무 대답이 쉽다. 거기다 뒤에 붙인 말이 더 가관이다.
"걱정하지 마."
정말이지, 아름다운 토요일, 비 내리는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