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입춘이 지났다. 입춘 무렵에는 꼭 춥다고 해서 '입춘 추위에 김장독 깬다' 그러는데 올해는 비가 내렸다. 어딘가는 눈이 내렸을 것이다. 눈이 내렸어도 장독을 깨뜨리는 그런 밀도 높은 추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여기도 꽁꽁 얼어붙었을 것이니까. 24 절기, 그 막이 올라간 셈이다. 한 해 동안 어떤 이야기가 무대에서 펼쳐질까, 서로 다른 사정들을 갖고 살아가지만 지금은 모두 어깨와 가슴에 기대를 하나씩 달고 뛰었으면 싶다. 견장과 훈장, 지난해에 얻었던 경험과 지혜를 디딤돌 삼아 내를 건너서 마을로, 마을을 지나 사방으로 뻗어갔으면 한다. 빨리 가기보다 멀리 가기는 어떨까. 멀리 가면서도 재미난 구경은 놓치지 않는 그대를 상상한다. 입춘은 시작이며 시작할 때 우리는 기원한다. 한마음이 되어 서로의 안녕과 행운을 빈다. 최소한 그랬으면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인 듯하다. 너 나 할 것 없이 차별이 없기를 바란다. 출발점에 서는 사람들이 긴장 속에서도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은 하늘 아래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 믿음에 상처를 내지 않고 오래 간직할수록 사람은 맛이 깊어질 것이다. 그 맛이 그윽하게 감도는 곳이 무릉도원이 될 것이다. 21세기에도 신선이 살고 있다면 얼마나 반가운 일일까. 잊을 뻔했다. 건양다경建陽多慶, 늘 나에게서 그대에게 부는 바람에는 이 말을 꼬리처럼 달아놓는다. 맑은 날 많고 좋은 일 많기를, 부디.
입춘이 지나니까 설이 찾아온다. 그 걸음이 가볍다. 나보다 더 반가운 얼굴을 하고 내 집에 들어설 기세다. 그에 앞서 명절 선물 꾸러미가 하나씩 찾아온다. 명절 분위기가 난다. 딸아이도 선물을 먼저 받아 들며 덩달아 좋아한다. 어릴 적 내가 보냈던 설날이 딸아이가 맞이하는 설날과 나란히 서 있으면 어떤 모습일까. 키도 더 크고 영양 상태도 좋은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아마 '설렘'일 것이다. 그 시절에는 정말이지, 설레었다. 말하지 않아도, 드러내지 않아도 다들 설날을 기다렸고 반겼고 즐거워했다. 설날에는 외상값도 찾아가서 갚고 아빠 따라, 엄마 따라 목욕탕에도 갔다. 모두가 친절해지는 날, 웃는 날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모든 것들이 신기했던 것이다. 그때는 명절이어서 좋은 줄만 알았는데 오로지 평화만 있는 날이 어린 마음에도 흡족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먹을 것, 입을 것, 그리고 주머니에도 돈이 이쪽저쪽에 다 들어 있으니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지금도 전주 남부 시장을 그때 모습으로 기억한다. 활기가 가득했었다. 우리 아이들은 평화를 알까. 문득 궁금하다. 선물은 알까. 마음은 알까.
명절 선물을 하나씩 들고서 퇴근하는 아내는 마저 집안일을 마치고 나면 그때서야 한숨 돌린다. 식탁에 앉아서 하루 지낸 일들을 꺼내놓고 품평회를 한다. 골고루다. 아내는 백화점을 하나 가진 듯하다. 직원들 이야기 하나하나에도 스토리가 숨어 있고 또 매일 처리하는 갖가지 민원, 그 민원을 처리하는 과정에 생기는 다른 일들, 끝이 없다. 하루는 직장 이야기, 하루는 친정 이야기, 하루는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이야기까지. 품목도 종류도 가격도 다양한 옴니버스식 이야기보따리 장사꾼이다. 하나 우스운 것이 있다. 비밀인데 이제는 말해도 될 것 같다. 대부분 '글쎄, 그렇다니까요.' 그러면서 문제를 제기한다. 어떤 때는 심각하게 고민할 때도 있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 내막을 솔직히 잘 모른다. 듣기는 해도 영숙 씨가 누군지도 모르고 철희 씨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떻게 아나? 나처럼 문서에 관한 일에 무지하고 무심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쏟아놓는 것을 보면 그 심정도 이해가 간다. 나는 주식거래도 어떻게 하는 줄 모르는 원시인이다. 휴대폰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이상한 기우제를 지내는 사람이 나다. 누가 어디 아파트 앞으로 나오라고 그러면 어려운 문제 풀 듯이 한다. 어떤 면에서는 미안한 것도 있다. 다들 코인 사서 돈 벌었다고 그럴 때, 누구는 재테크를 잘해서 살림이 뭉텅뭉텅 불어났다고 할 때 따로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아내가 꺼내는 문제들은 한결같이 비슷한 구석이 있다.
"그러니까,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이걸 놓치는 거 같아. 중간이 중간이 아니라니까. 이쪽하고 저쪽을 보자고, 어느 쪽이 더 무거워? 봐, 지금 여기 장연이네 엄마가 누가 봐도 더 힘들겠네. 그러면 그쪽에 힘을 실어줘야지. 그래야 이게 균형을 잡을 거 아냐."
이 열쇠로 많은 것들이 열린다. 이 열쇠로 열린 것 중에 가장 큰 문은 바로 '아내'였다. 일이 많은 편인 사람이라 바쁘고 피곤하다. 그런데 자기 마음처럼 마음대로인 것이 없다. 하루에도 열두 번 뒤집히는 것이 그 마음이다. 편히 앉아서 떠들기만 하니까 이런 편한 소리나 하고 있는 줄도 모른다. 나도 어이가 없고 기가 찬 상황들 속에서 지지고 볶으면 견딜 재간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에도 내가 갖고 나설 무기는 '중용'일 것이다.
얼마 전에 처남 내외와 저녁을 먹었다. 곧 명절인데도 일부러 자리를 만들었다. 뜬금없다고 그랬을 것이다. 열여덟 해 동안 그런 일이 없었으니까. 올해 그 집 외동딸이 대학에 입학한다. 열심히 노력해서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다. 축하도 하고 또 따로 전해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분위기 좋은 식당 창가에 앉아서 궁금해하는 처남 내외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이런 생각은 벌써 14년 전쯤부터 하고 있었는데 오늘에야 그날이 왔네요. 우리 산이가 네 살부터 어린이집 다니느라 여러 사람 도움을 받았는데 그중에서도 현주네 집에서 제일 시간을 많이 보냈거든요. 나는 아직도 그 모습이 선해, 아이를 데리러 집에 들르면 산이가 어두워진 창밖을 받침대 올라가서 내다보고 있다가 나한테 달려오는 모습이 정말, 생생하거든요."
그때부터 선물 하나 하고 싶었다고, 그러면서 입학 축하한다고 성의를 건넸다. 뜻밖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그런 것이 중용이다. 지났다고 잊는 것이 아니라 지난 것들을 기억해서 보답하는 것도 하나의 중용이다. 삶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무게 추를 옮겨보는 일, 그것은 비교적 쉬운 힘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지렛대처럼.
이 글을 쓰던 중에도 혼자서 누룽지를 끓여 먹었다. 남들처럼 먹는데 금방 허기가 지는 구조다. 수술했다는 이야기는 너무 많이 해서 이제 그만 쓸 때도 됐는데 누군가는 이 글이 처음이라, 또 이렇게 쓰고 만다. 나는 누룽지가 가장 편한 사람이다. 우리 집에서도 누룽지를 때때로 만들지만 아내 친구, 영민 씨는 일부러 누룽지를 만들어 우리에게 선물한다. 바쁜 아내가 살림까지 하며 뱃속이 좋지 못한 나까지 챙겨야 하는 것을 자기 일처럼 실감하는 것이다. 그런 실감이 있으니까 불 앞에서 누룽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아내는 성경을 읽지 않고 듣는 것을 좋아한다. 하루 종일 일하다 온 사람은 그저 쉬고 싶을 뿐이다. 덕분에 나는 설명이 날마다 늘어간다. 이대로 가면 '세바시'에 나갈지도 모른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 마르코 12 : 43
중용은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다. 예수님뿐만이 아니다, 부처님, 석가모니에게도 가난한 노파가 있었다. 온 세상을 밝혔던 등불이 있었다. 부처님 앞에 등불 하나 공양하는 것이 소원이었던 난타의 이야기다.
"그만두어라, 아난아. 그 등불은 한 가난한 여인이 간절한 정성으로 켠 것이어서 너의 힘으로는 그 불을 끌 수 없을 것이다. 그 여인은 지금은 비록 가난한 모습이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마침내 깨달음을 이루어 부처가 될 것이다." - 현우경, 빈녀난타품
새벽에 누룽지를 끓여 먹으면서 콩나물무침을 꺼냈다. 김치하고 콩나물,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떻게 콩나물을 데쳤는지 열무를 씹는 듯 아삭거릴 수 있을까. 이 김치는 고창이 친정인 주민이 건네주셨고, 이 콩나물은 예전에 함께 일하던 직원 아주머니께서 만들어 주셨단다. 지금은 다른 데 일하는데 마침 거기 명절 선물 사러 들렀다고 그런다. 복 많은 아줌마가 아내였구나. 콩나물하고 고기 주물럭을 따로 받아왔다. 해마다 고로쇠가 한 통 배달된다. 그 물을 먹는 사람은 아내도 아니고 나다. 신세 진 것이 고맙다고 그렇게 보내오는 것이다. 나는 아내가 농사지은 열매를 넙죽 잘 받아먹고 지낸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가졌다고 일러줬다. 고마운 것은 잊지 않기로 한다.
아무 활동이 없는 나에게도 선물이 왔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지낸 지 꽤 됐다. 흥미와 여력 둘 다 떨어졌다고 고백하는 편이 아무래도 정확할 것이다. 저녁 9시 이후로는 자려고 한다. 그 덕분에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남은 시간은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지낸다. 물론 나도 일을 하고 있지만 일을 하며 지낸다는 것이 얼마쯤 건강해야 하고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게 되었다. 일하면서도 다른 일까지 다 챙겨가며 사는 사람들, 슈퍼맨이 틀림없다. 부디 건강해야 한다. 매번 챙겨주는 선물이 고맙기는 해도 미안해서 미리 메시지를 보냈었다. 그런데도 어김없이 명절 선물이 도착했다. 그가 보낸 메시지가 울림이 있어 적어본다.
중략 - 제 기도 제목은 딱 하나입니다. 감사의 마음이 마르지 않게 해 달라는 거. ㅋㅋ
오늘 지나면 설 연휴가 시작이다. 다시 마음을 정리한다. 사람이 선물이고 세상이 선물이라고. 새해에는 눈을 씻고 살아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