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새로 네모난 책상 달력을 받고 처음 든 생각이 몇 번이나 둘레길에 갈 수 있을까? 그 생각이었다. 앞으로 일곱 번, 7개 코스를 걸으면 지리산 둘레길 21개 코스가 완성된다. 올해는 그 길을 다 잇고 싶어서 계획을 세우고 어느 날이 좋을지 미리 달력에 표시도 해뒀다. 그 첫 번째 동그라미가 2월 9일, 금요일을 둘레길처럼 감싸고 있었다.
산이가 6학년이었고 강이가 4학년이었던 2020년, 그해 5월 금계에서 인월로 가는 길 위에 우리가 있었다. 겁도 없었다. 정말이지 순진했다고, 지금 생각하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며 그때를 회상했다. 얘들은 어렸지, 아내나 나 둘 다 수술을 받고 몸을 추스른 지 얼마나 지났던가·····. 어쩌면 그래서 더 걷기로 했던 거 같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그거라도 해야 한다는 일종의 부채의식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 아니면 영영 기회를 놓치고 말 것 같은 초조함이 거기 있었다. 마흔 살에 난 아들과 마흔셋에 난 딸을 두고 몸이 이렇게 아프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어떻게든 피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악착같이 달려들어 떼를 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가는 데까지 가보자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우리의 구호다.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고, 노랫말이 아니라 우리의 바람 그대로다. 쉬었다 못 가면 다음에 가면 된다, 늘 그 마음이었다.
모든 조건이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살면서 배우지 않던가. 사라지지 않고 추억으로 남은 기억들은 사람을 보듬어준다. 대견하다며 우리를 쓰다듬어 준다. 그 손길이 따스하다. 2월 지리산 골짜기에 부는 바람은 아직 차가웠지만 추억 덕분에 볼이 발그레하니 달아올랐다. 그 힘으로 걸었던 거 같다. 우리는 지금 앓고 있다.
강 프로, 노 프로 그러면서 부르는 녀석들이 재미있다. 어느새 구력 5년 차의 걷기 선수들이 됐다. 그동안 다닌 산길, 들길, 강변길을 펼쳐놓으면 어디까지 갈까. 그 걸음 하나하나가 깨알 같다. 깨소금 같다. 하나도 버리지 못할 만큼 달콤한 통증이다. 항상 잘 다녀왔던 것이 고맙다. 건강한 것이 고맙고 멋진 길동무들이어서 고맙다. 그 프로들이 나섰다. 하늘도 파랗고 고속도로는 명절 연휴라 요금도 받지 않았다. 어디서든 환영을 받는 기분이었다. 구례에서 화개로 들어섰다. 원부춘, 1월 1일 우리가 올해를 시작했던 곳에 다시 섰다. 반듯하게 주차를 하고 깊이 숨을 들이켠다. 잠시 현기증이 날 것이다. 맛있는 공기가 몸속으로 퍼지는 동안에는 반가운 증상이 나타난다. 저번에는 오른쪽으로 걸었고 오늘은 왼쪽으로 가는 거야. 차 안에서 잠을 자고 깨어난 아이들이 한껏 움츠렸다. 산공기가 유리처럼 투명하고 차가웠다. 계곡을 따라 바람도 분다. 표정들이 제각각이다. 산이는 올 것이 왔다는 심란함, 강이는 겁을 먹은 표정이다. 오르막을 보고 벌써 기선이 제압당했다. 아내의 표정은 무엇이었을까. 자기 팔자를 지긋이 바라보는 여인 같았다. 그 눈빛에는 여러 가지 구슬이 한꺼번에 빛을 내고 있었다. 기대와 걱정, 눈과 꽃이 함께 있는 정원 같은 표정이었다. 조릿대를 특히 닮았다는 인상이었다고 말하면 전달이 될까. 연한 줄기에 허리께에 겨우 닿는 저 나무에 싱싱한 이파리들이 한창이다. 추운 계절에도 잎을 달고 있는 나무, 바람이 불면 바스락거리며 손을 흔드는 그 무리가 저 여인의 인생길에는 언제나 등장하기를.
나는? 나는 애인을 만나러 온 것 같았다. 서두르고 싶은 것을 드러나지 않게 걷느라 숫자를 세면서 걸었는데도 한참 앞서가고 있었다.
아마 6코스인가, 7코스를 걷다가 그 생각이 들었던 듯하다. 우리, 둘레길 다 걷는 거 아냐? 이러다가 다 걸을 수도 있겠는데? 처음부터 여기를 다 걸을 생각이었다면 오히려 더 찾아오지 않고 그만 잊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하나를 하고 다음 하나도 해볼까 그러면서 걸었을 뿐이다. 그래, 길이 일곱 개쯤 쌓이면 탑을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목표인 줄도 모르고 목표로 삼고 지나왔다. 더운 날도 있었고 추운 날도 있었다. 가을에도 봄에도 누군가 어디냐고 전화가 걸려오면 여기 지리산이라고 대답했었다. 또 거기냐고 그러면 또 여기다고 웃으면서 지냈다. 오늘도 또 거기에 있다. 오늘 우리가 가는 길은 어렵다는 코스다. 길이도 높이도 경사도 날씨도 쉽지 않다. 설 연휴 첫날을 선택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어머니가 편찮아지고 나서 명절이 사라졌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다른 절차는 간소해졌다. 설 연휴에 둘레길을 찾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오늘 고생하고 나머지 연휴는 천천히 쉬면서 보낼 생각이다. 계획이 맞아떨어진다. 둘레길을 걷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하긴 명절 맞을 준비로 다들 바쁜 시간이었을 것이다.
15코스 원부춘 마을에서 가탄마을까지 13.3km는 힘들다. 만약 가탄마을에서 길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신중해야 한다. 그 오르막은 일찌감치 경험하지 못한 오르막이 될 것이다. 쌈박하게 트레킹을 만끽하고 싶다면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명실상부 최고의 훈련으로 전혀 손색이 없을 거라고 자신 있게 추천한다. 그 길에는 화장실이 적재적소에 갖춰져 있다. 그 말이 꼭 하고 싶었다. 관리도 잘 이루어지고 있는 편이다. 둘레길 안내 표지판이 새것으로 바뀌어 가는 것처럼 시설과 관리가 처음 우리가 걷기 시작했던 때와 비교해서 많이 좋아지고 있는 것을 실감한다. 뒤에서 수고하는 사람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섬진강을 따라 달리다가 왼편에 펼쳐진 산그늘 아래로 들어서서 그 산을 계속 오르면 풍요롭고 따뜻한 동네에 닿는다. 거기가 부춘이다. 아직은 하동군, 오늘 가탄마을까지 간다. 하동을 이렇게 지그시 밟고 건너는 일이 일생에 몇 번이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하동이란 이름이 나는 좋다. 아이 같으면서 청년 같고 또 신선 같은 그 이름이 정감이 간다. 하동을 벗어날 때까지 사랑하리라 마음먹는다. 원부춘 마을회관 앞, 우리는 왼편으로 첫 발을 떼었다. 가자, 오르자. 형제봉으로 간다.
볕은 환한데 바람은 차가운, 꼭 온천이다. 오르막을 오르면 금방 몸이 후끈해진다. 바깥이 추워도 속은 달아오른다. 거기가 숨이 사는 곳이다. 숨결, 호흡은 그 변화가 심오해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까무러치게도 한다. 산기슭에서 부는 2월 순풍은 그대로 얼굴로 달려든다. 무수한 키스 세례다. 호흡이 순간적으로 거칠어진다. 입맞춤, 바람에 흥분한다. 노란 별이 서 있던 자리에서 출발을 기념하며 사진을 찍었다. 남쪽 하늘이 뻥 뚫렸다. 빈 나뭇가지도 전봇대도 쪽빛 하늘을 뒤로 두고 기지개를 켠다. 다들 좋은 날이다. 포장도로가 길게 뻗어있다. 여기를 여름에 걸어서 오른다면 그것은 또 얼마나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할까. 무조건 내가 걷는 오늘이 가장 좋은 날인 줄을 나는 안다. 벌써 까마득히 뒤떨어진 세 사람을 멀리서 찍는다. 산이가 손을 흔드는 이 사진 어디에서 그를 찾을 수 있을까.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저기 있다. 저 끄트머리에 아이가 있다. 중학교 3년,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우리와 동행하는 너는 멋있다. 한참을 올라왔는데도 활공장 7km라는 표지판을 보고 나도 믿어지지 않았는데 너희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오르막을 7km 더 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우리는 너무 잘 안다. 벌써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윙크를 보낸다. 각오를 다지듯이 나는 나를 찍었다. 도로에 비치는 내 그림자가 어쩐지 믿음직스러웠다. 긴 머리카락을 오른손으로 쓸어내리면서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들어섰다. 아직 12시도 안 됐잖아. 물이 흐르는 소리에 마음을 건넸다. 흥미가 떨어질 때는 물에게, 겁이 날 때는 꽃에게, 막연할 때는 하늘에게 나를 맡긴다. 그것이 내가 세상을 지나온 방식이다. 이제 서서히 서로들 실력 차이가 난다. 산이가 치고 나가고 강이가 뒤로 쳐진다. 나는 강이를 연거푸 찍는다. 그대의 힘든 시간을 기록하는 것이 내 악취미다. 앞서가는 아이의 뒷모습은 언제나 편안함을 준다. 엄마와 아들이 나란히 간다. 두 사람 종아리가 제법 야무지게 자세를 잡았다.
"강이야, 앞으로 걸으려고 애쓰지 말고 뒤로 편하게 젖혀, 내가 밀어줄게. "
방학이라 야외활동이 거의 없이 지내는 강이는 지난번 둘레길을 걷고 난 이후로 이렇게 몸을 움직이는 것이 처음이다. 겨우 집 근처 학원에 다녀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힘들다. 이렇게 갑자기 한꺼번에 많이 움직이는 것도 좋은 것만은 아닌 줄도 안다. 현실은 어디쯤에 있는 정거장인가. 나는 늘 현실을 놓치고 지나치는 운전수 같다. 아이를 도울 방법도 도울 기회도 제대로 갖지 못하고 산다. 그래서 강이를 민다. 아이가 힘든 만큼 그게 내 탓인 것 같아서 강이의 호흡을 돕는다. 이참에 너는 숨을 고르는 거야. 코로 쉬고 입으로 천천히 뱉고, 걷지 말고 가만히, 내가 미는 대로 가만히 앞으로 가는 거야. 나는 강이가 건강하기를 바란다. 이만하면 괜찮다. 업어달라고 떼를 쓰던 아이가 이만큼 컸다. 길 한쪽에 조릿대가 자란 곳에 채 녹지 않은 눈이 보였다. 다 녹고 여기만 이렇게 남아있었구나. 진귀한 것들은 보물 대접을 받는데 이대로 봄이 올 때까지 과연 너는 너를 지킬 수 있을까. 쉬면서 올랐다. 약과 하나씩, 산이는 소시지도 하나 까먹었다. 12시 36분, 가탄 9.1km 남은 지점에서 삼거리를 만났다. 활공장이 있는 형제봉은 오른편에, 가탄으로 가는 둘레길은 왼편이다. 우리는 왼쪽 길이다. 아, 평지가 나왔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나올 줄이야. 포장도로도 동시에 끝났다. 흙길, 산길 그대로 난 길에 들어섰다. 뜻밖이란 듯 서로 좋아했다. 이래도 되는 거야, 속으로 박수를 쳤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정작 15코스는 거기서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