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지리산은 처음이지?

오래 쓰는 육아일기

by 강물처럼


"왜 가? 안 간다고 그래!"

산이 친구들은 나를 어떻게 상상할까. 독재자? 게임도 못하게 하고 쉬는 날 쉬지도 못하게 횡포를 부리는 나쁜 왕? 아니면 지호가 말한 것처럼 무우도사쯤 될까. 모자 안에 감췄던 머리카락을 풀면 다들 놀란다. 설날 아침 모처럼 뵌 우리 어머니도 -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평범한 상태가 아니다. - 머리 자르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건강하셨다면 아마 혼내셨을 것이다. 머리가 그게 뭐냐며.

"근데, 그게 안 돼."

산이 대답을 또 친구들은 어떻게 해석했을까. 완전히 깡패네. 찍소리도 못하고 사는구나. 정말, 이런 집이 있었다니, 불쌍하다, 강산이. 그랬을까?

나도 한마디 보태줘야 그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텐데, 일부러 우리 집에 부를 수도 없고, 오해를 풀기 위해 여기에라도 내 말 몇 마디 적어 놓자.

"얘들아, 우리는 이렇게 논다. 놀 때 같이 노는 게 좋잖아? 그래서 우리가 찾은 놀이가 바로 이거야."

산이가 3학년이었을 때 내가 암에 걸렸다. 산이가 지금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니까 8년이 다 되어간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암이 무엇인지 어떻게 아냐. 그런데 우리랑 같이 걸어줬다. 엄마하고 아빠하고 같이 걸어줬어. 강이는 7살밖에 안 먹었으니까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지냈을 텐데, 강이도 우는소리 한번 내지 않고 정말 잘 걸었다. 나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얘들아, 우리는 걸으면서 밥 먹고 걸으면서 이야기한다. 너희도 밥 먹고 이야기하잖아. 우리는 밖에서 걸으면서 그러는 것뿐이야. 왜냐면 산이, 강이네 아빠, 엄마는 나이도 많고 몸도 좋지 않으니까. 우리는 그래, 그래야 해."

2020년 5월 지리산 둘레길을 처음 찾았다가 어딘가에서 자신감을 얻었던지, 그해 우리 가족은 부안 마실길을 걷기 시작한다. 마실길 8개 코스, 총 66km를 걷는다. 거기서 배웠던 거 같다. 걸으면 좋다는 것을, 같이 걸으면 행복해진다는 것을. 길에서 얻은 것들이 많다. 산이와 강이는 한창 몸과 마음이 자라는 시기였다. 초등학교 4학년, 6학년 그랬으니까. 내 부모님은 식당을 하며 4남매를 키웠다. 먹고 사느라 따로 여행을 다닐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그 시절은 어느 집이나 비슷비슷했다. 여유가 없이 사는 데 급급하고 정신없었다. 어른들은 엄격했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어울렸다. 지금처럼 일부러 걷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절이다. 걷는 것이 일상이었다. 학교도 시장도 성당도 다 걸어 다녔다. 그러면서도 불평할 줄 몰랐다. 운명처럼 자신이 짊어진 운명처럼 여겼던 거 같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걸었던 것이 하나의 교육 아니었을까 싶다. 줄지어 소풍을 가던 모습이 떠오른다. 건강해야 했고 책임감도 키워야 하고 인내심도 필요했었다. 지금처럼 무엇이든 돈을 내고 배우는 삶이 아니었다. 돈으로 못하는 것,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것이 걷는 것이었다. 산으로 들로, 강으로 걸어 다녔던 시절, 친구 찾으러 엄마 찾으러 다녔던 시간들이 우리를 키웠다. 우리는 그래서 잘 컸을까.

산이, 강이는 2024년 1월 1일에도 지리산 둘레길 14코스를 엄마, 아빠하고 같이 다녀왔다. 지나가면 다 좋아진다. 아빠는 그때 걸었던 길이 군데군데 생각이 난다. 너희가 했던 말들이 그 길과 함께 떠오른다. 나 혼자 걸었다면 거기 좋았다는 말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너희가 우리와 동행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직은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그 진가를 알아볼 날이 꼭 찾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가 걷는 일은 단순히 어디 산을 넘어갔다 오는 그런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지켜보고 증언하는 일이다. 부모의 삶이 자식들의 삶에서 꽃으로 피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음으로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것 아닐까, 세상의 그 많은 길이 서로를 잇는 것처럼.

설날에 세배도 하고 세뱃돈도 받고 유쾌하게 보냈다. 엄마하고 강이는 아직 근육통이 있어서 오늘 하루 더 쉬면 좋아질 것 같다. 오늘은 강이가 가고 싶다던 찜질방에도 한번 가보자. 아빠는 지리산 둘레길 얼마 남지 않아서 벌써 서운해지려고 한다. 좋았던 시절이었다고 언제든 말할 것 같다.

고마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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