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성서를 읽는다

오늘 만난 구절

by 강물처럼


로마서 11:18-22

"그대는 잘려 나간 그 가지들을 얕보며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그대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그대를 지탱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대는, "가지들이 잘려 나간 것은 내가 접붙여지지 위해서였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들은 믿지 않아서 잘려 나가고 그대는 믿어서 그렇게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만한 생각을 하지 말고 오히려 두려워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본래의 가지들을 아까워하지 않으셨다면, 아마 그대도 아까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도 생각하십시오."

2024. 0216. 금.

땅콩이 고소하다. 냉장고 저 구석에는 '나만' 먹으라고 고급 요구르트가 들어있다. 그래봤자, 몇백 원 더 비쌀 것이다. 우유를 좋아했던 나는 이제 우유를 먹지 못한다. 아이들은 우유를 먹으라고 그러고 나는 따로 요구르트를 넣어주는 식이다. 한창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은 시시때때로 냉장고를 열어본다. 딱히 먹고 싶은 것이 없어도 냉장고를 열면 기분이 좋아지는지, 좀처럼 그 버릇이 고쳐질 기미가 없다.

견과류가 좋은 것은 누구나 안다. 노화, 치매 예방에도 좋다며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하라고 광고도 많이 나온다. 하지만 좋은 만큼 비싸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한 푼이라도 모으려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허리띠를 졸라 매어야 할 형편이다. 우리도 가끔 견과류 세트를 먹어보긴 하지만 떨어지지 않게 대놓고 먹기에는 가격이 부담스럽다. 셀레늄이 함유되었다며 브라질리언 너트는 얼마나 인기였던가. 아몬드와 호두는 누구나 좋아하는 것 같다. 아내는 설 명절 전에 들렀던 대야 장터에서 사 온 땅콩을 볶아서 플라스틱 통에 담아놨다. 식탁을 오가며 하나씩 주워 먹기에 좋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물이다. 값이 비싸고 좋은 거라도 일부러 챙기지 않으면 상하고 변질된다. 그러고 나면 버릴 수밖에 없고. 아, 요구르트가 거기 있다는 것을 하루 종일 잊고 있었다. 챙겨줘도 먹지 못하고 지낸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먹을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배고프지 않아서 잊는다.

축구 이야기다. 얼마 전 아시안컵 대회를 끝낸 우리 축구판이 뒤숭숭하다. 사람들이 떠드는 말에 휘둘리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도 무슨 일인가 들여다보게 된다. 선수가 다른 선수의 멱살을 잡았고 급기야 주먹질까지, 그래서 손가락이 탈구되는 부상을 입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한다. 그다음 날은 알다시피 요르단과 중요한 경기가 있었고. 두 선수 모두 주전일 뿐만 아니라 이미 세계적인 선수여서 그들이 얼마나 실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대표팀 경기력이 달라질 정도다. 결과론이지만 그런 일이 있었던 탓인지, 우리 대표팀은 공격다운 공격도 없이 졌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스러웠다.

누구나 힘들 때가 있다. 힘들 때 어떻게 그것을 견뎌내는가. 아마 '간절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내가 경험한 어려움과 힘든 것들은 모두 - 비록 타이밍이 늘 늦고 말지만 - 간절한 마음 위에서 다시 보였다. 이 지점에서 '종교'를 가졌다는 것을 내심 다행으로 여긴다. 내 간절함은 나와 같이 철부지 같아서 금방 자기가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지를 잊고 마니까. 아픈데 먹고 마시려고 하고, 피곤한데 놀려고 한다. 마치 내 안에 '방해꾼'이 따로 있는 것 같다. 나로 있는 내 방해꾼, 그는 내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그래서 '신앙'에 맡긴다. 내 신앙은 간절한이라는 형용사를 입고 세상에 나섰으면 한다. 그대의 신앙은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었는가.

건강을 잃은 것을 따로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가 암 진단을 받고 처음 한 말은 이거였다.

'나 같은 사람이 걸리지, 누가 걸리겠어?'

미안하지만 술이나 담배, 그런 것들은 아니다. 암은 꼭 그렇게만 오는 것이 아니다. 그 뒤로 나는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며 지내고 있다. 사라진 것, 잃어버린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 모든 것들을 후회하면서 지낼 수도 없다. 그래도 때때로 밀려드는 후회는 어쩔 수 없다. 어제도 백미현의 '하늘만 보면' 그 노래를 듣다가 모든 동작을 멈추고 적막했었다. 하지만 적어도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내 후회의 밑바닥에서 찾아낼 때가 있다. 그 순간은 무척 단순해서 허무할 정도다.

스물몇 살에 샀던 책, 희미하게 옅어진 밑줄을 눈으로 따라가면서 거기를 지나던 '나'를 지켜볼 때가 있다. 그가 외롭게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너를 지키겠다는 마음이 인다. 그가 봤던 책을 다시 읽으면서 너는 서른 살도 되고 마흔 살도 되고, 아들도 있고 딸도 있다고 말해준다. 내 왼손 약지에 끼고 있는 묵주 반지를 만지면서 네가 처음 끼었던 거라며 일러준다.

땅콩을 하나씩 먹으면서, 축구 경기를 보면서, 책을 읽으면서, 성당에 가면서, 그 생각을 한다. 뿌리가 있고 그다음에 줄기가 있고 줄기에서 가지가 나고 가지 끝에 열매가 맺는 일. 나는 열매가 되지 못하는 꽃이어도 좋을까. 열매를 키우는 잎이어도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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