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4일, 수요일 오전 7시 40분. 싱크대에 서서 창문을 열고 밖을 내려봤다. 비가 내린 아파트 단지는 깨끗해 보였다. 출근하는 차들이 연달아 양쪽에서 단지 내 도로로 합류하고 있다. 멀리서도 차들이 벌이는 신경전이 보이는 것 같다. 끼어들어야 하는 차와 앞차에 꼭 붙어 틈을 주지 않는 차, 아침 이 시간은 신호등 한 번이 많은 것들을 결정한다. 여기에서 신호등을 잘 타면 길이 술술 뚫리는 것이다. 한 번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도착지까지 줄곧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침 출근길에 만나는 사람, 차, 신호등이다. 아침은 그 변수들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천사도 악마도 된다. 거기다 하루의 컨디션 또한 아침 분위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라고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Serenade to Spring, 노르웨이 사람들도 우리나라 사람들도 좋아하는 그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 사람들은 봄에 우리는 가을에, 좋다. 아,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라고 하면 금방 알아듣는다. 확실히 가사를 잘 지었다. 연주만 듣는데도 속으로 가사가 읊어진다.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아무래도 그 부분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세월이 훨씬 더 많이 흘러서도 그럴 것만 같다.
7시 55분. 오늘 아침에는 콩나물국이 나왔다. 다른 때처럼 맑은 국이 아니라 김치를 썰어 넣고 끓여 은근히 맛이 궁금해지게 만든다. 저쪽 건너편에 앉아서 어제 일기를 적으면서 코를 킁킁거리게 했던 그것이 바로 이거였다. 도마 위에서 칼이 사사삭 소리를 낸다. 비단결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가 저와 같을까. 소리와 함께 김치 냄새가 심심한 거실에 퍼진다. 맹랑하다. 아, 이 소리는 파를 썰면서 내는 소리다. 파는 정말 송송송, 그렇게 소리를 낼까? 잘 익은 김치 냄새가 2월 비 내린 아침 공기를 타고 집안을 떠다닌다. 냄새 하나로 밥 짓는 사람의 상태가 전해진다면 나는 사이비 교주쯤 될까? 밥솥에 밥이 다 되어 가면서, 뜨거운 증기를 뿜어내면서 또 한 번 냄새들이 섞인다. 원활하다. 그보다 더 인상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까 식탁으로 걸어가는 동안에 생각했다. 냄새가 부드럽다, 살갑다, 그 정도면 됐다.
의자를 빼고 자리에 앉으면서 나는 왜 이 자리가 고정됐을까 또 안 하던 생각을 해봤다. 감각은 이렇게 실타래처럼 풀리는 것이다. 긴 미로마저도 실타래 하나로 길을 찾는 것처럼 아침 밥상은 사람의 감각을 여는 주문 같은 것이 된다. 밥이다, 밥! 열려라, 참깨! 그런 주문들이 되는 냄새가 있고 장면이 있고 말이 있고 또 뭐가, 뭐든지 '상황'에 맞으면 기꺼이 '신비'가 된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오늘 아침 콩나물국은 어릴 적 엄마가 끓이던 콩나물국을 떠올리게 했던 것이다. 어느 나라의 자장가를 듣더라도 엄마가 토닥거리던 -다 잊은 기억들- 그 박자가 내 어깨와 등에서 꿈틀거리는 것처럼 말이다.
밥을 먹었으면 좋겠는데, 머리를 말리러 거실을 가로지르는 산이, 8시. 혼자서 식탁을 지킨다. 이 따뜻한 기운을 어떻게 하지? 국은 다시 뜨고 밥도 다시 퍼담기로 한다. 가능한 밥을 천천히 씹는다. 두부를 으깨서 야채와 함께 부친 두부 전은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는데····.
매일 아침 7시 20분이면 벽에 걸린 시계가 웃는다. 뭘 그리 자꾸 보냐면서. 5분 기다렸다가, 그다음에는 2분 30초, 그다음에는 1분 15초, 37.25초, 산이를 깨우는 데 들이는 공이다. 아이가 잠을 더 자는 것이 나을까, 밥을 먹고 가는 것이 나을까, 아내는 늘 그 지점에서 눈치를 본다. 내 눈치, 아이 눈치, 시계 눈치.
오늘도 밥을 못 먹고 가겠구나.
8시 7분, 겨우 자리에 앉아 따뜻한 물을 먼저 마시고 사과를 한 조각 먹는다. 일부러인지 아니면 의식하지 않는 것인지 나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는다. 밥은 못 먹겠는데?
그 말은 힘이 세다. 사람들 사이에 힘이 센 말들이 종종 등장할 때가 있다.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말은 힘이 세다. 작용하는 힘이 크니까 그에 대한 반응도 클 수밖에 없다. 우선 엄마한테 말을 잘하라고 일렀다. 엄마가 챙긴 식탁이니까. 거기에는 엄마가 일찍 일어나서 더 못 잔 잠이 들어있으니까. 둘이 합의를 본다. 괜찮아? 괜찮아. 둘이 형제처럼 현관을 나선다. 방학 때는 엄마가 산이를 학교에 데려다준다. 고등학생들은 방학에도 보충수업이 한창이다.
하루 전날, 똑같은 등장인물에 식탁 앞이다. 화요일 아침은 조금 여유가 있었던 거 같다. 아침 식사를 다 마쳤고 이제 각자의 일터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무슨 이야기 끝에 팔씨름을 했지?
2024년 2월 13일, 밸런타인데이 하루 전, 오전 8시경, 선화로 1길 57-33 번지에서 2007년 10월생 강산이한테 내가 졌다. 진검 승부였다. 전혀 봐주는 것 없이 힘 대 힘, 강 대 강으로 붙어서 깨졌다. 그것도 비등하게 진 것이 아니라 처음 7.8초만 잘 버텼고 그대로 무너졌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내가 그 당사자였다. 기록해 둔다. 1945년 8월 15일에 버금가는 충격이다.
산이 방문에는 턱걸이를 할 수 있게 봉이 설치되어 있다. 아이가 없을 때마다 오며 가며 턱걸이 연습을 했다. 두 개를 겨우 하던 실력이 다섯 개까지 늘었다. 그동안 눈물겨운(?) 시간을 보냈다. 고독했고 고통스러웠지만 하나라도 더, 그런 심정으로 매일 턱걸이를 해댔다. 이럴 줄 정말 몰랐다. 할 말이 없다.
슬프다.
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