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일은 바람이 무척 거세게 불었다. 완주부터 구례까지 고속도로 곳곳에서 강풍 경보가 떴다. 바깥 온도는 -3도, 차 안은 따뜻해도 밖은 추운 날씨, 그래도 도로에는 차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나들이 차량으로 북적였다. 송학동 신자들 만나면 커피나 차를 쏜다고 그래서 다들 나오셨나? 옆에 앉은 아내가 피식 웃는다. 하늘은 참 좋네요, 한마디 거드는 뒤쪽으로 두 남매가 쫑알대고 있었다. 둘이 노는 것을 보면 마치 삼각형과 원이 연상된다. 삼각형 안에는 원이 있고 삼각형 밖에서도 삼각형을 따라 원을 그릴 수 있는 것처럼, 강이와 산이는 친하게 지내고 있다.
산이는 강이를 남자 형제처럼 부르고, 강이는 오빠에게 누나처럼 말을 걸고 있다. 요샛말로 서로를 '디스'하는 것이다. 상대를 '깎아내리는 것'을 '디스'라고 부른다. 일종의 험담 같은 것인데 장난기가 다분한 대화 중에 종종 등장한다. 그렇지 않아도 살이 쪄서 고민인 강이에게 산이가 던진다.
" 오, 브라더! 네 얼굴에서 아빠가 보인다."
조용히 전방을 주시하며 운전하던 나까지 웃고 말았다. 다들 깔깔대며 '현실'을 인정한다. 강이 성격이 좋다는 것이 바로 이런 대목이다. 웃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농담은 진담을 가리키는 그림자가 되지만 험담은 진담을 보이지 않게 가려버린다. 험담보다는 농담이 좋고 농담도 적당히 즐길 줄 아는 것이 지혜롭다. 역시 참된 말, 진담을 나누는 사이가 바람직한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결국 걷지 않기로 했다. 걷지 않고 '걷기'로 했다. 출발 30분 전에 우리에게 남은 코스 가운데 어느 코스를 줄여볼까 찾아보다가 휴대폰을 접고 하동 군청에서 발행한 '하동 가이드북'을 펼쳤다. 지난번 대축에서 원부춘까지 우리를 태워줬던 '그분'이 줬던 책에는 좋은 정보들이 가득했다. 택시 기사님께 또 한 번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걷지 않고 걷기로 한 이유는 바람이었다. 봄이 막 찾아올 무렵에 부는 바람은 겨울바람처럼 매섭지는 않아도 더 위험한 구석이 있다. 방심放心이야말로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가 않다. 마음이 놓이고 마음을 놓을 수 있는 때를 우리는 얼마나 기다리는가. 오종종 걷는 아기 뒤를 지키면서 언제쯤 이 아이가 자랄까, 그때 벌써 마음으로 그리지 않던가. 가지 끝에 꽃 한 송이 나오면 어느새 '봄' 그러면서 콧노래를 부르지 않던가. 그 순간을 나무랄 수 없다는 것을 오래 기다려 본 적 있는 사람은 안다. 밥이 되기를 기다려 본 사람, 시가 되기를 기다리고 편지를 기다려본 사람들은 안다. 다방에 앉아서 나를 찾는 전화가 울리기를 기다렸던 옛날을 간직한 사람들, 합격통지서를 그리고 또 무엇이 있었을까.
아이가 예쁘면 그런 마음이 든다. 어서 자라라, 천천히 자라라. 두 마음이 번갈아 가며 무지개를 띄운다. 세상의 아기들은 그 마음을 받아먹고 자라야 한다. 다 큰 아이들이 오수도 안 왔는데 조용하다. 쿨쿨 잠에 떨어졌다. 부부만 멀뚱히 남아서 스무 번도 더 했을 이야기를 나눈다. 남원이 나오고 그다음 구례니까 얼마 안 남았네, 산수유도 필 때가 됐네, 주천까지 둘레길을 다 걸으면 감개무량할 것 같아요. 등등.
구례에서 하동으로 달린다. 올해는 이 길을 다니면서 시간을 보낼 듯하다. 나머지 6개 코스는 이제 화개마을에서 주천까지, 그러니까 구례군을 다 지나는 길에 있다. 우리는 이제 그쯤은 아는 사람이 됐다. 발로 밟고 지나면서 본 것과 차로 달리면서 바라본 사물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래서 발과 몸이 하는 수고를 가볍게 대하지 않는다. 정중해진 것 같다. 산이와 강이도 길에서 투정하는 것이 날이 갈수록 옅어지고 있다. 존경은 아니더라도 존중하는 자세가 엿보인다. 나는 그것을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왼쪽으로 쌍계사 가는 이정표를 따라 그 유명한 벚꽃 10리 길로 들어섰다. 화개花開 - 꽃이 열린다 - 얼마나 그윽한 이름인가. 좋고 나쁜 사주가 따로 없다. 이 골짜기를 지날 때마다 내가 느끼는 것은 그것이다. 산골짜기에 바람만 차갑게 부는 곳이어도 꽃이 필 줄 아니까, 여기 벚꽃은 누가 심었던가. 그 솜씨에 탄복할 뿐이다. 꽃이 피니까,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는 형상이다. 조화로운 곳에는 생명이 깃든다. 찾아오고 지저귀고 땅을 가꾼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또 사람이 모이면 거기 따라오는 '돈'이 좋은 기운을 검은 비닐막처럼 다 덮어버린다는 것이다. 비닐은 너무나 인위적인 것이라 숨 쉴 구멍조차 없다. 혼잡한 화개 입구를 지나서 한쪽 공터에 차를 세웠다. 자, 보아라. 여기가 어딘 줄 알겠냐.
화개천 건너 마을, 그 마을 뒷산에 펼쳐진 차밭, 그 위에 정자. 우리 2월에 저기 걸었잖아. 그래, 맞아! 정금차밭, 저기 걸을 때까지만 해도 좋다고 그러면서 걸었는데····. 지나간 것들은 어쩌면 그렇게 죄다 아련해지는지, 아이들도 그다음에 오르막 나오고, 힘들고, 길 잘못 들고, 또 거슬러 올라가고, 그날을 신나게 떠든다. 고생이 좋던? 그렇게 우리가 걸었던 길을 돌아보는 일은 신기하고 대견하고 재미있다. 나는 오늘 이렇게 '걷기'로 한 것이다. 길을 걸으면서 못 보고 지나치는 곳을 찾아가고 우리가 지나온 곳을 돌아보는 '휴식+위로, 그리고 힐링' 이런 테마, 어때?
성당 신자들에게 한 소리 들을 수도 있지만 나는 식구들을 데리고 절에 갔다. '칠불사'를 굽이굽이 찾아갔다. 특별히 아는 것이 있거나 인연이 있어서 거기까지 오른 것은 아니다. 이름을 간혹 들은 적은 있는데 거기가 어디에 있는, 어떤 사찰인지 전혀 몰라서 내 딴은 오늘이 좋아 보였다. 이런 날 아니면 언제 여기를 들러보겠나 싶었다. 일주문이 새로 지어서 그런지 늠름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른쪽으로 막 오르던 참에 와장창, 산속에서 처음 듣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정말 바람이 심하구나, 일주문 왼쪽 귀퉁이 기와가 주르르 떨어져 깨진 것이다. 사는 것이 이렇구나.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고 살고 있다며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놀란 것도 잠시, 모두들 공기 좋다며 허리를 돌리고 고개를 젓고 양팔을 돌린다. 나른했던 것들이 파닥파닥 날아가고 저 기다란 나무들 위로 겨우살이가 군데군데 자랐다.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오늘 이거 어때, 각자 동영상을 찍는 거야. 오늘 하루 보내면서 뭐든 찍는데 주제는 '봄'에 관한 거야."
(이렇게 멋지고 기특한 생각을 해내다니 나는 참, 참, 참말로 로맨티시스트가 맞나 봐!)
"오늘 밤 9시에 네 사람 것을 한 데 모아서 다른 사람 두 명에게 심사를 맡기는 거야, 각자 만 원씩 내고 내가 2만 원 내고, 1등 상금 5만 원이다."
녀석들 귀찮아할 줄 알고 선수를 쳤다. 상금 5만 원은 크다. 그런데 사실 이런 작업은 적극 권할 만하다. 어릴 적에 산이와 강이는 가끔 이런 식으로 밖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나뭇잎 10개, 대신 종류별로 다르게. '소식'과 연결 지을 수 있는 말을 오늘 여행 중에 발견하기, 오죽헌으로 3행시 짓기 같이 놀면서도 할 수 있는 '인문학적 활동'을 가미시켰다. 파를 가늘게 썰어 계란부침에 넣어 요리하는 것과 같이 이해하면 된다. 먹지 않고도 먹고, 하지 않고도 하는 그런 활동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오늘처럼 걷지 않고도 걸어보는 것이다.
칠불사 마당은 마음에 들었다. 넓지 않고 높지 않아서 단정한 인상의 가람이었다. 가락국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성불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창건된 사찰이라 칠불사다. 지리산 반야봉의 남쪽 줄기에 폐허로 남아 있던 칠불사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것은 한 스님의 믿기지 않은 믿음과 신념의 행로 덕분이었다. 칠불사 큰스님, 제월통광스님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찾아 읽었다.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 걸음이 되는구나. 아무것도 아닌 한 걸음이 삼 백도 되고, 천 킬로미터가 되고 그 이상이 된다. 그러는 도중에 깨닫는 것들은 이 산속 바람처럼 상쾌할 것이다. 쾌快는 마음이 막힌 데 없이 툭 터졌다는 것 아닌가. 모든 것이 마음공부라는 울림을 이곳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숙제는 미루지 않고 해치우는 데 맛이 있다. 동영상 하나 완료, 이제 즐기면서 다니면 된다.
점심시간이었지만 9시에 아침을 먹고 출발해서 배고프지 않던 참에 길가에서 차들이 빽빽이 들어선 카페를 발견, 들어갔다. 전망도 좋은 곳에 카페 앞마당이 어디 이름난 박물관 정원 같이 근사했다. 마침 날이 춥고 쌀쌀해서 그렇지 화창한 봄날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제법 있을 것 같다. 빵도 커피도 맛이 좋았다. 맛이 깊었다고 하면 맞을 것이다. 김천 직지사 근처에서 마셨던 커피가 제일이라면 두 번째가 되어도 좋을 것 같은 맛이었다. 물론 그만큼 비싸기도 했지만 우리를 따라 동행해 준 아이들에게 전하는 고마움이기도 했다. 사진을 찍고 좋아한다. 우리를 따라 걷는 것보다 사실은 이런 데가 더 좋아요, 그 표정들이 당연하다 싶으면서 한쪽 벽에 몸을 기댔다. 단것이 갑자기 들어오면 이렇듯 몸이 적응을 못하고 나른해진다. 당뇨환자가 당이 떨어지면 힘들어하는 것과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세 사람이 떠드는 소리가 멀어지고 잠시 잠에 들었던가. 깨끗하게 비워진 접시를 가져다주고 밖에 나섰다. 한결 편해졌다.
내가 보내준 섬진강이 나오는 영상은 여기 스타웨이에서 찍은 것이다. 정선에서 스카이워크를 걸었었는데 오랜만에 그 스릴을 맛보는가 싶어 기대가 됐다. 자기는 빼달라던 아내도 걸어 다닐 정도로 무섭지 않은 전망대였다.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이 동시에 바라보이는 곳이라 풍광 하나는 기막혔다. 가만있을 수 없어서 동영상도 찍었다. 바람소리가 예사롭지 않았을 것이다. 손이 시려서 1분도 채 못 채울 것 같았으니까. 어땠는지 궁금하다. 용인 사는 친구는 멋진 곳에 갔다며 호응해 주던데····. 그나저나 저 세 사람은 동영상을 찍고 있는지 전혀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포기했나?
오후 3시가 넘었다. 내 남은 일정표에는 삼성궁과 박경리 문학관 두 곳이 남았다. 삼성궁이 몰라보게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들어서 들러볼까 했는데 날씨도 그렇고 집에 돌아갈 것도 생각해서 최참판댁으로 정했다. 아직 강이가 태어나기 전이니까 산이가 겨우 3살이나 됐을 것이다. 네가 이 언덕을 걸어서 올라갔다. 아내도 그때가 생각나는지 엄마하고 어머니도 여기서 나물도 샀다고 덧붙인다. 우리 집에 '사랑의 매' 있잖아, 그것도 여기서 산 거야. 정말? 두 아이가 눈이 커진다. (거기서 그냥 끝내지 않고 없는 이야기를 꺼낸다.) 산이가 이거 사자고 그래서 산 거야. 자기 갖고 싶다고, 나는 능청스럽다. 강이가 (오빠를 툭 치면서) 오빠 때문이야, 왜 그것을 사자고 그랬어! 소리쳤다. 여기도 그대로인 것과 바뀐 것들이 어울려 있구나. 저 들판은 언제 봐도 소설 같고 그림 같다. 나는 시절을 매만지듯 파란 하늘을 응시했다.
볼거리가 많아졌다. 예전에는 최참판댁 한 곳 훌쩍 둘러보면 그만이었는데 드라마 세트장처럼 꾸며놓은 초가들이 그런대로 관리가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마루에도 앉아 보고 부엌에도 들어가 보았다. 양반집 안채 뒤뜰에는 저렇게 대나무숲이 있었다며 사랑채, 별채, 행랑채, 평소에 쓰지 않던 말들을 나누며 거닐었다. 걷지 않으면서 걷고 있는 시간들이었다. 사랑에서 안채로 이어지는 담장 옆으로 매화가 피었다. 오늘은 매화를 많이 봤다. 매화부터 열리는 곳이 여기 화개였구나. 너를 보며 사람들은 무엇을 안심했을까. 무엇을 그리워하고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매화 맑은 꽃송이들이 글자 한 자 한 자로 피어났다. 매화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고 두 걸음 떨어져서 완상 했다. 소설 한 권을 읽고 일어나는 순간처럼 내 삶이 영롱해지는 환영이 맴을 돈다. 봄날에, 바람이 불어도, 봄날에.
박경리, 나는 그 이름을 첫사랑처럼 간직한다. 비밀이 다하면 비취색이 아니다. 나는 내 스토리가 가공품이 아니기를 바란다. 언제 들어도 똑같은 인상에 똑같은 감동을 전하는 음악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바람결에서 다르고 물결 위에서 다르고 숨결마다 다른 색이 묻어나는 이야기이길 바란다.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하는 색을 나는 비취색이라고 부른다. 내 이야기는 그러기를 바란다. 박경리 선생은 투박하고 정감 있고 우물 같지 않던가. 내가 가지지 못한 좋은 것들을 가졌지 않던가. 원주에 찾아갔던 날을 산이가 기억하고 말해준다. 하동, 박경리 문학관은 처음이지만 이로써 나는 어떤 완성을 본 듯하다. 통영에는 몇 번 더 찾아갔었다. 거기 묘소에 서면 멀리 희미하게 바다가 보인다.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얼버무렸다. 통영에서도 원주에서도, 어제는 그 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선생이 쓰던 펜이며 원고를 보고 나왔다. 강이가 차분하게 실내를 돌아보는 것이 왠지 위로가 됐다. 오늘 우리가 여길 잘 왔구나 싶었다.
바람이 차가웠다. 오늘 아침도 차다. 어제 다녀온 이야기를 다 적었다. 나도 홀가분하다.
어제 찍었던 우리 동영상은 강이와 내가 공동으로 1등을 차지했다. 심사는 처제와 아내 친구가 맡았다. 밤 열 시에 우리가 보내 준 영상을 보고 공정하게(?) 심사했다. 상금은 반반씩 나눴다.
다음 공유하는 영상은 3등을 차지한 작품 '봄에 취한 사람'이다. 등위에 들지 못한 두 사람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