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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다는 말

某也視善

by 강물처럼


로마서 16장을 오늘 새벽에 마쳤다. 습관이 들었다고 그래서 따로 준비하거나 마음먹지 않아도 날마다 필사가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하는 성경 필사는 꽤 절차가 있는 작업이었으며 해를 거듭해 왔던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날짜를 세지 못하는 존재는 성급히 동굴 밖으로 뛰쳐나가거나 백 일이 지났다고 알려줘야 거기서 나온다. 몸 밖에 있던 것들이 내 안에 깃들기를 기다리는 일, 나는 성경을 받아 적기로 했다. 그때가 언제였던가. 한참 낙담할 때가 있었다. 몸은 아프고 기운은 없고 일도 못하겠고 걱정스러운 날들, 누구나 암을 앓게 되면 그 정도 혼란스러운 경험을 한다. 죽을 수도 있다는 마음이 생긴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펼친 것은 아니다. 살고 싶다는 것도 바람일 뿐, 그것은 운명 같은 거라고 일찌감치 길을 정했기에 삶과 죽음을 들어보며 저울질한 적은 없다. 그렇다고 거기에 초연하거나 홀가분한 것도 아니다. 내 낙담은 그런 것이었다. 온통 감정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확신, 죽어서도 놓여날 것 같지 않은 굴레 같은 것들로 칭칭 감긴 세상을 보는 듯했다. 우주의 질서에서 벗어난 운석은 어디에 떨어지는가. 떨어지는 그곳도 우주, 우주는 넓고도 갑갑하구나. 어떤 책을 따라 배우고 어떤 곳을 다니며 무엇에 의탁할까. 사람이 사람에게 반한다는 사실은 맹목일까 비극일까. 아니면 그렇게라도 살아서 다행일까. 동굴에서 뛰쳐나가지도 기다리지도 못하는 것이 나였다. 날짜도 숫자도 엉켜버린 실타래 같았다.

창세기를 적었던 스무 살, 시편 150장을 적고도 내 마음을 모르겠던 서른 살, 무엇인가 필요했다.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안갯속이면 깜박거리는 불빛이라도 있어야 한다. 목이 마르면 물, 배가 고프면 밥이다. 외롭고 불안한 시절에도 나를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그것이 내 실패의 기반이다. 그 위에 내가 놓았던 돌들은 아직 건강할까. 실패로 끝날 줄 모르는 그것들에게 지금이라도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나는 아름다워지고 있다. 로마서를 적으면서 그 마음이 비로소 들었다. 얻지 않으려고 갖지 않으려고 살지 않으려고 우연이 나를 돕는다. 다시 성경을 펼친 것이 얼마 만이다. 한글 성경을 읽으면 열에 다섯쯤 이해하는 것 같다가 그것을 쓰면 0.5% 선명해진다. 그것을 다시 일본어로 읽으면 둘, 더 올라간다. 다시 손으로 쓰면 0.5% 좋아진다. 마지막에는 영어로 읽고 쓴다. 더 수치가 높아지는 것은 없는데 오래 해왔던 작업을 하는 기분이 든다. 성경을 쓰고 나면 옛날에도 이렇게 받아 적었다는 꿈을 꾼다. 눈을 뜨고 노트를 쳐다보면서 글자를 -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 사랑한다. 애정이 간다. 가늘고 긴 실이다.

오늘 로마서 16장을 적으면서 두 사람이 떠올랐다. 유독 그 얼굴들이 어른거렸다. 고맙다는 말이 마지막 인사가 되어야 할 사람들인 것을, 그렇다고 다 화해될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뜬금없지만 나와 소원한 그들에게 마음으로나마 계절 안부를 전한다.

태영이가 늦은 시간 전화가 왔다. 그렇지 않아도 저녁 먹으면서 네 이야기를 했다고 그랬더니 저도 막 내가 생각나서 휴대폰을 들었다고 그런다. 대학에 가지 않겠다던 아이가 입학식에 다녀왔다고 소식을 전한다. 학군단에 들어가 보겠다고도 그러고.

용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친구가, 그렇게 쓴 그저께 문장을 '용인에 사는 친구가'로 바꾸면서 나는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부는지도 모르게 부는 미풍이 눈동자를 맑게 닦았다. 내가 끊어야 할 것들은 니코틴이나 알코올 같은 것이 아니라, 이런 겉치레 같은 것들이다. 내 삶을 건너가는 것들과 내가 건너가는 삶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아직도 모른 채 거룻배를 띄운다.

우진이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못했다 60, 안 했다 40. 그 아이를 처음 본 것이 중학교 1학년, 20년 전이다. 우리 집 우편함에 청첩장을 직접 넣고 갔다는 메시지를 보면서 내 정체성은 무엇일까 곰곰해졌다. 나한테 영어를 배운 것도 수학을 배운 것도 아닌데 우리가 믿는 것은 무엇이기에.

사진 한 장을 기억한다. 복사기에 올려놓고 그날 신문에 난 광고를 복사했다. 까맣게 그을음에 덮인 채 보이는 것이라고는 빛나는 두 눈과 환하게 웃는 이, 소방관의 사진이었다. 우진이 아빠가 소방관이라는 것을 저희끼리 떠드는 통에 알았던 것이다. 아무 말도 안 하고 그 A4용지를 아이에게 주었다. 그 눈빛을 기억한다. 우진이는 다 잊었을 우진이의 눈빛을.

다시 성경을 쓰게 되어 좋다. 고린도전서로 간다. 믿는다는 말은 가히 환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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