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는 체육대회 예선을 치르는지 다른 반과 축구 시합을 했다고 들었다. 아마 그랬겠지? 그러니까 자기가 골키퍼라고, 오늘 잘할 수 있을지 긴장된다는 말을 남기고 학교 앞에서 내렸다는데.
산이는 수요일 - 22대 국회의원 선거일 - 오후에 친구들과 영화를 보기로 했다고 5시에 하기로 했던 일본어 수업에 빠져도 되겠냐고 물었다.
강이네 축구 시합은 1 대 1, 무승부로 끝났단다. 강이는 소심한 것인가, 세심한 것인가? 아마 두 가지 모두 해당될 테지. 그런데 그러면서도 혼자서 책임을 져야 하는 골키퍼를 맡겠다고 나서는 것이 조금 특별하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러지 않고 공동의 책임이라는 울타리의 안에서 그것이 불안이든 평화든 따지지 않고 지낼 것이다. 강이에게는 그런 면이 있다.
산이 이야기를 듣고 다시 생각해 봤다. 어제도 새벽 2시 넘어서 집에 온 듯하다. 시간을 아껴 쓰는 것은 이제 산이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이 아이의 몫이다. 공부는 옆에 앉아서 지킨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무인도에 떨어져 있다고 못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들이 시절 인연에 따라 인연을 맺는다고 하지 않던가. 산이는 분명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공부도 해야 하지만 친구도 있어야 한다. 일본어 공부는 다른 때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리고 방학 때 했던 예습 덕분에 모두들 수업에 잘 따라가고 있다고 그런다. 아이들 모두에게 다음에 공부하자며 메시지를 보냈다. 다들 신나게 답장을 보내왔다. 이모티콘을 다 써가며, 방방 뛰었다.
11도 맑음, 하늘도 좋다.
내일은 오늘보다 좋아진 우리나라를 볼 수 있을까. 불안이나 초조를 소망으로 바꾸면 한결 좋은 것들이 많다고 그런다. 꼭 잘해야 한다에서 잘하고 싶다로 채널을 바꿔본다. 몰랐던 러시아 음악이 - 저녁이 다가오네 같은 - 귓가에 감도는 행운을 맛본다. '날리면'이나 '바이든' 둘 다 별로였으니까, 대파든 쪽파든, 실파든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백성들의 살림살이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 본질인데···.
내가 좋아했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나왔던 대사 하나 오늘은 적어 봐야겠다.
"뺏긴 것은 다시 찾아올 수 있지만 내어준 것은 되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내어주지 마세요."
맞다, 빼앗겼어도 진 것은 아니다. 스스로 내주고 마는 것이 완전히 지는 일이다. 소망을 담아서, 좋아진 우리나라가 보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서 오늘 하루를 지냈으면 한다. 어떤 세월을 지나온 나라인가. 그렇지 않아도 적은 숫자로 많은 노인들을 돌봐야 하는 이 땅의 젊은이들을 위해서라도 절대 내주면 안 되는 것들을 잘 챙겼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