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꽃구경 가자고

某也視善

by 강물처럼


잠시 쉬고 있었다. 앉아 있기는 불편해서 누워 있었다. 한두 번 겪어보는 것도 아니고 허리가 쉽게 좋아질 리가 없다. 좀 어떠냐는 말에 지금까지는 이쪽으로 달리던 통증이 잠시 멈추길래, 옳거니 이제 곧 좋아지려나 보다고 좋아했더니 하룻밤 사이에 그 옆을 헤집는 것 같다고 그랬다. 말도 잘한다며 웃었다.

자기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나를 병원에 태워다 주는 사람, 아내라는 이름의 그 사람의 시선 끝에는 무엇이 보일까. 혹시 뜻밖에도 레몬 꽃 피는 마을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 벚꽃이 지기 시작했다며 신호등 앞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입원을 하면 좋을 텐데···. 혼잣말하는 그녀에게 나도 혼잣말로 답했다. 애들 시험이 내일모레라서···.

그러고 다른 말이 나왔다. 햇살이 내린다.

"이건 어떻게 말할지 모르겠는데 - 그러니까 내가 착하다거나,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 아니라 - 나는 이런 통증을 갖고 있잖아. 어떤 스님들은 일부러 수행을 하느라 동굴 속에 살고, 침묵하고, 굶고, 목마름을 겪잖아. 그분들은 그것을 애써서 찾아가는데 나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나.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런 생각이 나한테 든다는 것이 나는 싫지가 않고 뭐랄까, 좋은 것을 - 어떤 의미로 좋은 것인지 그것도 잘 설명할 수 없지만 - 좋은 것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지 않고, 그래, 만난 것 같다고 할까. 그런데 그 느낌이 편안한 거야. 내가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 줄도 모르고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전혀 느끼지 못했으면서 만났다고 느끼는 것이지.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옛날에 했던 약속 같은 것을 봄날에 떠올린 것 같다고나 할까.

아내도 어느 만큼 내 이런 말들에 익숙해졌을까. 어디만큼 따라오고 있을까.

나는 그 말을 고맙게 간직하기로 했다.

"결혼해서 - 좀 많이 늦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란 것을 세 가지 새로 알았다고 그랬다. 걷는다는 것은 그래야 하는 일이 됐고 책을 읽는 것이 그래야 하는 일이었으며 종교가 세상에 있어야 한다는 말도 그렇게 이해하게 됐다고 그랬다."

가끔 묵주를 나에게 선물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신자인 줄 아는 사람들이며 나보다 더 깊은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 얼마 전에는 조카 장연이가 오스트리아에 놀러 가서 조그마한 손 묵주를 사다 주기도 했다.

기도를 많이 하지 않지만 자주 하는 편이다. 혼자서 숲을 걷다 보면 저절로 어떤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기도가 나를 이끌고 길을 가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다.

고통의 신비 5단 -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기도는 고통 위에 짓는 피난처다. 그래서 아마 내가 편안한 줄도 모른다. 복福 위에 짓는 건물이라면 내 기도는 허랑하고 헐렁해서 헐어내야 할 것이다. 운전하는 사람 옆에서 그렇게 떠들었다. 벌써 병원에 다 도착했다. 물리치료받고 나올 때까지 또 기다리겠지. 차 안에서 그러고 있을 것이다.

내일은 투표하는 날이다. 하루 종일 어디도 나가지 말고 누워 있으라는데 그러고 싶지 않다. 봄날은 많지만 내일이라는 봄날은 더 이상 없다. 꽃구경 가자고 졸라야겠다. 대신 운전을 좀 하라고 꼬셔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