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기도해야 할 것이다. 분에 넘친다.
새벽 두 시 반이다. 새벽 두 시 반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는 분명 힘든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반대쪽에 앉아 있는 기분으로 지금 깨어있다. 물론 잠을 잘 자고 일어났다. 좀 일찍 깬 것뿐이다.
꽃은 봄꽃이 예쁘고 나무는 가을 나무가 볼만하다. 봄꽃, 목련이 지더니 벚꽃이 틈을 주지 않고 피어댄다. 지금 한창 바쁘게 손을 놀리고 있는 듯하다. 누가 다듬기라도 하나, 꽃꽂이는 나면서부터 배우는지 나무마다 맵시며 자태가 여간 아니다. 지나가던 꼬마들도 그 빛이 환해서 좋았던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봄날이다. 저 아이에게 봄이 드는구나.
드라마 한 장면이 떠오른다. 나도 그런 거 만들어줘. 최강 동안 최수연 어때, 아니면 최고 미인 최수연? 아니야, 너 그런 거 아니야, 너는··· 너는 봄날의 햇살 같아. 너는 나한테 강의실의 위치와 시험 정보와 바뀐 시험 범위를 알려주고 동기들이 날 놀리거나 속이거나 따돌리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해, 지금도 너는 내 물병을 열어주고 다음에 구내식당에 또 김밥이 나오면 나한테 알려주겠다고 해.
"너는 밝고 따뜻하고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야,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야!"
색은 깨끗하고 모양이 소담스러운 꽃이 세상에 가득하다. 그리고 햇살이 비친다. 그대의 봄날, 그대의 햇살에게도 안부를 전한다.
허리가 아프고 꾸부정하지만 그렇다고 봄날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시험이니 수행 평가로 아이들도 바쁜 일요일이다. 그렇다고 이런 꽃날을 모른 척할 수는 없으니까. 저녁 6시에 모이기로 했다. 나는 6시에 일이 끝나고 산이와 강이는 그때까지 자기 할 일을 하기로 했다. 평일에는 겨우 아침 시간 30분이나 얼굴을 볼까, 그것도 서두르느라 서로가 정신없어서 눈은 두 개 제대로 달고 다니는지도 챙기지 못한다. 우리 벚꽃 보러 갔다 오자.
산이는 무슨 논문을 써야 한다고 그러면서 9시까지는 돌아올 수 있는지 확인한다. 나는 속으로 '보고서' 같은 것을 논문이라고 그런다고 웃는다. 하지만 절대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오, 노오온문, 이라고 그런다. 약속대로 6시, 10분 뒤에 출발했다. 어디 가는지 알지? 이 길로 가면 거기지!
밥 먹으러 30분을 넘게 달린다. 어떤 밥은 그렇게 먹기도 한다. 누가 운전을 할까 - 허리 때문에 - 아무래도 거기는 내가 운전해서 가는 것이 모두 편하다. 임피를 지나 함라, 성당 쪽으로 난 한적한 길을 달렸다. 얘들아, 벚꽃 봐라. 여기저기 꽃이 만발했다. 산이가 콧노래를 시작했다. 봄 봄 봄 봄이 왔네요,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때의 향기 그대로.
차 안이 바로 벤치가 되는 것 같았다. 그대가 앉아 있었던, 아직도 남아 있는 그 벤치 옆에 나무가 우리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넷이 저녁을 먹으면서 줄곧 산이 이야기를 했다. 수시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당연한(?) 말이 먹음직스러운 김치 위로 전달되었다. 요즘 아내는 회사를 마치면 입학 설명회에 찾아다니느라 좀체 쉴 수가 없다. 거기다 나까지 허리가 아프다고 낑낑대고 있으니 그야말로 일복이 터졌다. 아이들이 커서 이제는 음식도 남기지 않고 싹싹 해치운다. 식탁에서도 한 세대가 가고 다른 세대가 등장하는 것을 구경한다. 나는 그때 당사자인지 구경꾼인지 살짝 애매한 자세를 취한다. 마치 자기 일을 남 일처럼 거든다. 미 : 미친 거 아냐? 나 : 나만 보면 지랄이야, 리 : 리어카로 그냥 콱!
돌미나리가 찬으로 나온 것을 보고 반가워서 삼행시를 짓자고 그랬다. 어김없이 나를 먼저 시키길래 한 방에 기를 죽였다. 둘 다, 셋 다 어쩌면 그렇게 순식간이냐며 혀를 내두른다. 그러면서 느낌이 살아 있단다. 나는 후딱 우리 같은 사람을 그렇게 부르더라, '천재'. 그러고 입을 닫았다.
강이가 때맞춰 끼어들었다.
자기 핸드폰에 저장된 아빠 별명이 바로 그거란다.
'맑은 눈의 광인'
그 별명 마음에 들었다.
맛있는 저녁만큼 행복한 것이 있을까, 있다. 즐거운 저녁이 있다. 적당히 배가 불렀으니까 재미를 찾아 잠시 옥녀봉에 들렀다. 강경 읍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이다. 문제는 역시 허리. 한 발씩 밖에 내놓고 차에서 몸을 뺐다. 벌써 재미있지 않나. 봄날, 밤에, 꽃 피는, 언덕, 그리고 등산용 스틱을 지팡이처럼 집고 계단을 오르는 나.
봄날은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니까, 편지라도 써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면 오래, 그것도 안 되면 잠시라도 바라보고 싶었다. 아직 어려서 그런 것은 모른다. 아이들이 떠들면서 좋아하는 것이 그저 고맙게 들렸다. 작년에 봤던 '봄날'을 추억하는 세 사람에게 문제를 하나 냈다. 나는 늘 '문제'를 달고 다닌다. 강이가 그랬다. 우리 집 '문제'는 아빠라고!
"작년에 우리가 여기 바로 여기, 이 나무 옆에서 했던 이야기가 있는데 그게 무슨 이야기였는지 아는 사람?"
정말 밑도 끝도 없고 얼토당토않은 문제를 냈다. 그리고 맞추면 상금 만 원!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강이가 정확히 그대로 읊는다. 마치 시를 외우듯이, 그때 오빠가 우리 반에 '외 자'가 정말 많다면서 여섯 명이나 된다고 그랬어. 그랬다. 나도 세상에 그럴 수 있냐며 신기했었다.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학교 이야기에 관심이 갔었다. 그러면서 강산, 강이, 자기 이름에 대해서 한 마디씩 나눴던 봄날이었다. 산이와 아내는 놀라면서 감탄한다. 어떻게 그걸 기억하냐고~?
기억은 인상이다. 인상은 어느 정도 마음의 작용이고,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래서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속에서부터 정이 솟는다. 그때 네가 이렇게 말하더라, 그런 말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산이와 강이에게는 다르게 말해줬다.
'좋아하는 만큼 기억하는 거야.'
그래, 나는 오늘도 기억하기를 바란다. 내 몸이 늙어가겠지만 내 기억은 다시 봄이 되고 또 낙엽이 되어 떨어지겠지만 그때에도 다시 봄이 올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와 닮은 구절이 내게서 날았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즐거움, 나무와 꽃 사이를 거니는 즐거움, 강바람이 귀밑을 훑고 지나는 즐거움, 아들과 딸이 조잘거리는 시절을 구경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오늘 밤 봄을 완상했다.
집에 오는 길에 마침 라디오에서 내가 아는 노래가 흘렀다. 신청곡 산울림의 '너의 의미'들려드리겠습니다. 멘트와 함께 내 유년을 함께했던 친근한 그 멜로디가 우리를 감쌌다. 산이와 강이도 아이유가 불렀다면 따라 부른다. 나도 불렀다. 셋 모두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 마지막에는 네 사람이 모두 웃었다. 이런 순간도 있구나····.
산이는 논문(?) 써야 한다고 스터디 카페에서 내렸고 우리는 또 주차장이 꽉 차서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들어왔다. 내일 아침에는 또 바쁘고 서두를 것이다. 씻고 먼저 자리에 누웠다. 할아버지처럼 허리가 펴지지 않는 허리로 구경 잘했다. 누워 있으면 - 허리가 쉬면 - 또 잘 펴진다. 그래도 지난주보다 훨씬 좋아져서 다행이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멀쩡해진다. 그게 삶이다.
어느 순간 잠들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아내가 문 여는 소리에 깼다. 1시 반, 산이가 올 때까지 기다렸냐고 물었더니 여태 쪽파를 다듬었다고 그런다. 아는 사람이 농사 지었다며 많이도 줬다고 자랑하듯 보여줬던 그 쪽파를 말하는 것이다. 내일 출근할 사람이····.
다시 잠을 이어 붙이려고 누웠지만 잠이 들지 않았다. 쪽파 때문이다. 커다란 파란색 비닐봉지에 상당히 많이 담겨 있던 것들.
우리 집에서 파김치를 먹는 사람은 나다. 나는 파김치를 어렸을 적부터 좋아했다. 어머니가 건강하셨을 때는 늘 파김치를 챙겨주셨다.
어제 쓰지 못한 일기를 적고 이렇게 아이들 육아 일기도 하나 더 적는다. 오늘 제목은 '너의 의미'라고 붙였다.
'너의 그 한 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다시 들어도 좋은 가사다. 중학생 때 산울림 노래를 얼마나 반복해서 들었던가.
육아 일기를 마무리하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다. 배가 고파야 밥이 하늘인 줄 알고 목이 말라야 물이 생명인 줄 안다. 나는 오늘, 봄날 저녁이 행복인 줄 알겠다. 그런데 그 바탕에 보이는 것이 하나 있다. 산이는 숙제를 하다가 멈추고 우리와 함께 저녁 시간을 보냈고 강이는 작년에 들었던 오빠 이야기를 잊지 않았으며 아내는 밤늦게까지 쪽파를 다듬었다. 나는 허리 좀 아픈 것은 대수롭지 않다고 지팡이를 잡고 걸었다. 그것이 다행이고 고맙고 갸륵하다.
4시, 혼자서 노래를 들어본다.
'너의 모든 것은 내게로 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네. 슬픔은 간이역의 코스모스로 피고 스쳐 불어온 넌 향긋한 바람. 나 이제 뭉게구름 위에 성을 짓고 널 향해 창을 내리 바람 드는 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