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편 놀이터 모습이 달라졌다. 초록을 입으니까 영 달라 보인다. 그 모습을 찍었다. 4월 초 목련이 피었을 때 사진을 찍고 난 뒤로 날마다 놀이터를 바라보는 시간이 따로 생겼다. 목련이 지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그 나무 아래 널따랗게 마치 그늘이 진 것처럼 하얗던 꽃잎들이 사그라드는 모습도 카메라에 담겼다. 그때 저기를 오래, 계속 찍어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우연처럼 오기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읽었다. '우연'은 내 이름과 무척 닮았다. 마치 내 삶에서 불었던, 부는, 불 바람은 모두 그것을 따라 하는 시늉 같은 거 아닐까 싶다. 우연이지만 가뭇없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 그렇다고 필연도 아니었던 것 같은 '나'라는 모래시계를 거꾸로 카메라 렌츠 밖에서 들여다본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사진 찍는 오기렌이 들려주는 짧은 아주 짧은 크리스마스다. 이런 우연은 반갑고 확신을 준다. 역시 나는 우연이었어. 발악할 것이 없다. 악착같을 것이 없다. 그래서 글이 내게 맞는 도구가 된다. 한 번도 내가 쓰는 대로 써진 말은 없다. 내가 쓰는 글자가 탁탁 화면에 쳐지는 모든 순간에 금박은 입히듯 입김이 분다는 것을 안다. 그 모습이 어떻게 보이든 -하여튼- 나는 원재료를 가져다 쏟아붓고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아무것도 모른 채 부지런히 젓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눌어붙지 않게, 타지 않게 살살 저어주는 것, 그뿐이다. 어쩌면 나도 올 한 해는 저 놀이터를 찍느라 오기렌이 될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나에게도 누군가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생기는 것일까.
하나 발견한 것이 있다. 글을 쓸 때 - 그러니까 나무가 꽃을 피울 때로 바꿔 말해도 괜찮을 것이다. - 앉아서 쓰는 것이 얼마나 '글'이라는 품목에 어울리고 적합하고 필요한 자세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지금처럼 노트북 화면에 커서가 깜박이는 순간이 '글'에는 기록되지 않지만 사실 무수히 많은 커서가 하나의 글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전에도 그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감각으로 깨닫기는 처음이다. - 목격했다. 실감했다. 글에는 깜박거리며 기다리는 내가 있어야 한다. 저쪽에서 나를 기다리는 나, 이쪽에서 저쪽으로 나를 만나러 가는 나, 그 도구가 되는, 그 통로가 되는 횡단보도에 점점이 깔린 점멸기. 한 줄을 쓰고 하나의 말을 쓰고 점등, 그리고 소등하는 내 의식과 의지, 그 사이에 부는 바람이 꽃잎을 흔들던 바람과 무엇이 다를까.
허리가 아프니까 며칠 서서 글을 썼지만 탐탁하지 않았다. 무엇일까. 개운하지 않은 입가심은 꼭 제목을 달지 못한 시詩를 바라보는 마음이었다. 어떤 사람의 이름이 내게 남았는가. 이름을 잊고 그 얼굴이 떠오르는 괴로움 속으로 걸어가던 날들이 저녁노을 속에 비쳤다. 저 노을을 호수가 담고 있다. 그 호수를 내가 찍었다. 아니, 그 찍었다가 아니라 이 찍었다다. 내가 콕 찍었다. 서서 글을 쓰다가 밖을 나와 어디로 갔다. 서툴러 보였던가 아니면 서두르는 것 같았을까. 따라 나오는 아내를 옆에 태우고 갈 곳 모르는 곳에 닿고서 차도 버려두고 천천히 걷는 수밖에 다른 것이 없었다.
'내가 보니까 서서도 쓰긴 쓰는데 거기에 중요한 것이 빠졌더라고. 점이 없어, 점点이 있어야 요행을 바라는데 그것이 없으니까 아무것도 없는 거야. 그다음이 생겨나지 않아. 공간이 없으니까 돌지 못하는 거지. 차가 돌아서 나가지 못하니까 꼼짝 못하고 갇히잖아. 뭐냐면, 나도 여태 몰랐는데, 앉아서 쓸 때 수많은 점들이 꺼졌다 켜졌다 그랬던 거야. 방심 같은 거 - 마음을 놓는다고 그러는 거 - 아주 잠깐 멍하게 바라보는 상태가 점점이 있었던 거야. 그런데 서서 쓰니까 그 점들이 없어. 하나도 안 뜨는 거지. 커서는 여전히 깜박이는데도 내가 깜박이지 못하더라고. 그러니까 바빠, 뭐랄까. 앉아서 쓰는 것은 재미로 하는 일 같고 서서 쓰는 것은 일을 하는 것 같아.'
나는 우연처럼 오늘 새벽에 그 소식을 들었다. 김제 진봉면에 있는 천 년 사찰, 거기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게 되는 곳, 망해사 대웅전이 불탔다. 불에 타고 있는 YTN 영상을 차마 켜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눈이 내리고 난 다음날에 찾아가서 서성거리다 왔었는데 그것이 마지막이었구나. 그때 시를 다 쓰지 못하고 말았었는데. 우연은 나를 엉뚱한 곳에 내려놓으라는 신탁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늘 낯설다. 내가 나를 처음 본 듯 말을 걸고 글을 쓰고 다시 알아가느라 발품을 들인다. 자주 방문한다. 이제 망해사는 하나의 전설이 되겠구나. 나는 그 전설을 다듬고 새겨서 상像을 하나 지을까 보다. 누구를 닮았을까. 거기에는 서해와 그 바다의 낙조와 겨울, 그리고 여인이 있을까. 어디서부터 긴 고백을 해야 할지.
- 바다의 천도를 비는 날. 사방이 다 아팠다. 단청이며 종소리, 처마도, 천 년 마당도 적막했다. 언덕에 바다를 묻고서 그가 떠났다. 바다 없는 절에는 아미타불이 만가輓歌 대신 울렸다. 절 마당은 깊은 삼매에 들고 후박나무 숲에서 한 번씩 바람이 철썩였다. 꼭 사람 우는 소리 같았다. 옛날이 있었고 바다가 있었고 또 해가 지고 있었다. -
종소리를 기다리는 새벽이다. 그래, 총소리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 일기를 다시 써야겠다. 아무래도 이것은 일기 축에 끼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