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에 찾아갔다. 이번에는 나 혼자 가서 물리치료를 받고 왔다. 정형외과에서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한의원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알 수 있었다. 비로소 환자로 취급받는다는 기분이었다. 1일 날 여기 와서 치료받고 돌아가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은 아마 그거였을 것이다. 치료 방법의 차이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어디든 누구든 각각의 방식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치료받는 입장에서 그리고 치료받는 과정에서 환자가 어떤 대상으로 대우받는지는 중요하다. 아픈 것이 자랑은 아니니까 위치의 상승이라고까지 말할 수 없겠지만 하나의 일거리로 다뤄지는 현장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아픈데 어쩐지 내 신세가 추락하고 있는 한 마리 새 같은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물론 그런 신세라는 것도 모르고 이것이 최선이겠거니 여기고 그마저도 기다렸다가 불편한 허리를 붙잡고 시키는 대로 엎드려서 전기 치료를 받고 돌아오곤 했던 것이다. 정형외과 물리치료비 3200원, 한의원 9000원. 3배의 차이는 서비스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싶은 것이 지금 내 심정이다. 9000원으로 가격이 오르면 치료 과정에 무엇인가가 추가되겠지만 환자를 대하는 태도나 자세도 같이 추가될 수 있을까. 저 서비스는 어떻게 가격에 포함될 수 있을까. 물론 한의원이라고 언제나 환자에게 다정하고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거기도 바쁘면 별 수 없을 것이다. 환자를 돌보는 일과 환자를 처리하는 일, 그 경계가 잘 보이는 곳에 다녀온 듯하다. 나를 돌보던 사람이 바쁜 일이 생기면 그때는 내가 그를 이해하는 것이다. 나를 처리하던 사람은 그러고 보면 매번 바빴던 거 같다. 그래서 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서로 고개만 까닥하고 헤어졌던 것 같고 어제는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그러면서 나왔다.
노인이 많아진다. 산책을 하면서 우리도 곧 늙을 텐데 우리는 대접받기 힘들 거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무엇이든 희귀하고 드물어야 귀한 줄 아는데 우리는 너무 많아서 어디 가서든 평범할 거라고 그랬다. 평범한 것이 가진 편안함과 넉넉함은 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건강해야 하고 그러려면 지금부터라도 이렇게 같이 걸어 다니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스스로, 둘이서, 그렇게 만들어 가는 안정감이 필요한 시대라고 끄덕이며 공감했다.
한 달 이렇게 지내고 있다니까 놀라던 표정이 깊이 새겨졌다. 그게 놀랄 일인가 싶었다. '그동안 이렇게 어떻게 지냈어요?' 아픈 사람들을 멈칫거리게 하는 말이다. 그 말이 멀리서 가늘게 실처럼 들리는데 잠시 미소가 지어졌다. 맞아, 세상에는 저 말이 있었지, 처음 듣는 말 같아서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살짝 당황스러웠다. 아이처럼 내가 누그러졌다. 그날 처음 본 한의사에게 세수를 하면서, 옷을 입으면서, 양말을 신으면서, 줄줄이 떠들었다. 둘이 웃었다. 나는 겉으로 웃었고 내 앞에 보이는 그 웃음은 깊었다. 백제 불상에서 보이는 그런 류였다. 나도 처음 하는 말을 건넸다.
걸을 수만 있어도 그게 어디냐는 그런 마음이 생겼습니다. 아프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마음인데 지금은 늘 그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그것부터 챙겨 입으면 내가 좀 따뜻해지는 것 같아 꼭 챙기고 있습니다.
잘하고 계시네요, 보살 같은 표정이 부처님 같이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