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부 1
날짜는 벌써 잊었어.
하지만 그 장면은 내내 아빠에게 남아있다.
나는 어제 있었던 일도 쉽게 흘려보내면서 왜 그 장면을 붙잡고 있었을까.
아쉬웠던 거야.
그리고 내가 가르쳐줄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았던 걸 거야.
나는 오늘 아침에서야 '당부'라는 말로 산이에게 내 생각을 전한다.
너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박원순 서울 시장'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라.
그의 죽음을 따져 물어보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의 죽음을 두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패가 갈렸는지 어떤 식으로 사람의 한 평생이 다뤄지는지 rational 하게 - 아빠가 굳이 영어로 쓴 이유는 합리나 이성적이란 말도 어떤 일을 판단할 때 도구로써 작동하기 불편한 감이 있어서다. 네가 견문을 넓혀서 너를 받쳐주는 그 힘으로 바라보길 바란다. - 살펴봤으면 한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다.
변변한 의견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세상이 평화롭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는 물결에 태워 흘러가고 싶은 '강물'이다.
너는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 때때로 익혔으면 좋겠다.
배움이야말로 바람직한 쪽으로 불어 가는 바람이 되어야 하니까 언제나 길을 잃고 어지러울 때에는 바람의 방향을 잘 감지해야 한다.
더불어 바람이 너에게 답이 되어 주지 않기를 바란다.
바람은 느끼는 것이어야지, 바람에 떠밀려서는 자신이 조각조각 흩어져버리는 사태를 맞이하고 말 것이다.
사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일로 삶을 구축해야 한다.
바다 같은 것이 사람들의 인생이다.
누구나 바다가 되려고 하지만 모두 바다에 빠지고 만다. 바다를 탓하고 만다.
그 바다를 호령하려 덤비지 말고 바다를 바다로 남겨두는 방법을 너는 찾아라.
너는 바다도 바람도 될 것 없이 오직 너로 살아보는 일에 재미와 순수를 다 들여라.
그것 하나가 사람이 해야 하는 바람직한 선택인 것을 아빠도 쉰 살이나 되고서 알았으니까 강산이 너는 많이 늦지 않도록 명심했으면 한다.
어제 하루 있었던 시절의 단상 斷想을 그야말로 짧게 적어봤다.
저녁 시간이었고 너하고 강이는 무엇인가로 서로 다퉜다.
평소에 사이가 좋은 편이라 따로 신경 쓰이지 않아도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자기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 놓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는 요즘이었다.
서로 덩치가 커졌고 의견이 대립되는 시절이 너희에게도 찾아왔다는 인상을 준다.
"애들이 중학교 가면 벌써 달라져서 자기 방에서 나오지도 않아."
그런 말들 많이 들었다.
"초등학교 때는 말도 잘 듣고 힘든 것도 모르지, 중학교만 가 봐."
별 수 없을 거란 말처럼 들려서 대꾸하지 않고 들어 뒀던 말들이다.
아빠는 그 말들이 싫거나 그 말에 저항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순순히 그 말에 맞장구치고 싶은 마음도 아예 없다.
바다는 바다, 바람은 바람.
그 위대한 것들에 나는 맞설 마음이 없다.
그것들이 나를 키워주길 바라는 편이 오히려 좋고 그것이 편하다.
내가 너희를 키웠겠냐, 아니지 그것은 겉만 보고 하는 소리지.
누가 바다를 키우고 바람을 길들일 수 있을까, 바다는 저 혼자 바다인 것을 바람이나 알고 있을까.
우리는 서로 지켜주는 것으로 우리의 신의를 다하기로 하자.
우리는 마주 보며 즐기는 것으로 우리의 시간을 다 쓰기로 하자.
그리고 난 다음에도 바다는 바다로 출렁이고, 바람은 바람으로 나부끼는 하늘을 상상하는 일까지를 우리 몫으로 갖자.
"둘이 싸웠으니까 손바닥 세 대를 맞자."
아빠는 그때 왜 그렇게 말했을까.
두 대라고 하면 한 사람이 한 대씩 딱 좋을 텐데, 하필 세 대라는 말이 불쑥 나올 게 뭐람.
지금 이 시대에도 손바닥을 때리느냐고 의아해할지 모르니까, 그건 제스처에 지나지 않았다고도 부연 敷衍.
내가 '당부'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1분 정도 고민하더구나.
그야말로 정적이었지.
아빠는 우연히 마주친 그 상황이 적잖이 기대되기도 하면서 직감적으로 중요하게 다가왔었다.
기름기를 쏙 빼고 담백하게 다음 이어질 스토리를 기다리기로 했지.
"내가 두 대 맞을게."
얼마나 주저했다가 세상에 나온 말이었더냐.
사람은 사람이 용서하고, 인생은 인생에게 위로받고, 사랑은 사랑으로 극복되어야 하지.
말똥말똥 우리를 바라보고 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삶이었을까.
삶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때 우리는 오만 인상을 다 써서 얼굴을 찌푸린다.
가만 보고만 있어도 팔자가 어떻다느니, 그게 누구 탓이라느니 심지어 못 본 듯이 지나가라고 부탁 같은 하소연을 해댄다.
산이보다 세 살 어린 여동생, 강이가 겨우 말을 꺼냈다.
그 순간이 평화다.
서로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오빠 산이는 그 여린 마음에 어떤 파문 波紋이 밀려들었을까.
뜨끔했을까, 부끄러웠을까, 고마웠을까, 아니면 웃겼을까. 안심했을까.
산이, 너의 인생이 계속 그 순간을 기억하며 너에게 물어볼 것 같다.
"너는 그때 기분이 어땠어?"
아빠는 글쎄, 그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본 바다는 조금 수줍어 보였다.
아직 발을 담그기에도 살짝 차가운 듯해서 백사장을 따라 걷기로 했어.
지금은 7월이고 11일, 토요일이다.
'바다'보러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