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지금은 좋은 때 / 에밀 베르하렌
지금은 좋은 때, 램프에 불이 켜질 때
모든 것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저녁,
새의 깃털 떨어지는 소리까지도
들릴 것 같은 이 고요함
지금은 좋은 때, 가만가만히
사랑하는 사람이 찾아오는 바로 그런 때
산들바람처럼 연기처럼
조용조용 천천히
사랑은 처음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듣는다
그 영혼을, 나는 알고 있다
별안간 빛이 솟아나는 것을 보고
그 눈에 살그머니 입을 맞춘다
지금은 좋은 때, 램프에 불이 켜질 때
고백이,
하루 종일 혼자서만 망설이고
있었노라고
깊고도 깊은, 그러나 투명한 마음
밑바닥에서 떠오를 때
그리하여 서로 평범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뜰에서 딴 과일에 대해서,
이끼 속에 피어난 꽃에 대해서,
또 낡은 서랍 속에서 우연히 찾아낸
옛날 편지에 대해서,
지금은 모두 사라져 버린 사랑의 추억에
마음은 순식간에 꽃을 피우며 감동에 몸을 떤다.
지금도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닌 사랑의 추억이라고 쓴다.
내 마음이 순식간에 꽃을 피우는 그런 때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너 때문이다.
낡은 서랍 속에서 우연히 찾아낼 편지도 없다.
널 닮은 글씨를 보고 반가움보다 서글픈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 내 스타일이다.
이제는 운명이란 말에서 헛헛한 것을 보고 마시고 느끼고 토한다.
한 때, 정말 그것은 한순간이었으며 한 나절 걸려서 걸어간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도 여전히 너를 기다리던 내가 있었고 아직도 그는 거기에서 너를 기다릴 거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집어 든 물컵에서 손이 네 손처럼 희고 길고 그리고 가볍게 스텝을 밟는다.
참을 수 없는 것은 테두리를 따라 포개지는 아니 접接하는 네 입술이 아직,
립스틱 색깔마저 늦가을 어제 내리던 비처럼 촉촉하고 차갑다는 거,
죽었으면 죽었지 차라리 그러고 말지, 너라고 부르는 '너'는 너뿐이라는 거.
4시에서 5시가 되도록 바람도 없고 지나가는 새도 없는 깜깜한 11월 어느 새벽을
네 영혼에 살며시 입을 맞추다가 훌쩍 일어나 떨어진 낙엽이나 주으러 나선다.
그대, 안녕하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