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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May 14. 2024

내일 이야기

우리가 걸으면서


하지 않는 것보다 늦게라도 하는 게 낫다는 말은 사람을 위하는 말이다. 한때는 좋아서, 내가 좋아서 했던 일들도 어느 때가 되면 그만두고 싶고 그대로 던져놓고 훌쩍 사라져 버렸으면 싶은 것이 사람이다. 공연히 트집을 잡고 그런 것도 없으면 무기력해진다. 자기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모습도 사람마다 다양하다. 정리되지 않고 어지러워진 책상이 일주일 넘게 그 모습이라면, 설거지할 그릇들이 하루가 지났다면, 밖에 나가지 않은 채 한 달쯤 지났다면 스스로 점검해 봐야 할 시점이다. 거기서부터는 자기장의 힘이 세진다. 무엇인가 무서운 힘이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끌어당길 수 있다. 그래서 일주일이 지났더라도 책상 위를 정리해야 한다. 하루가 지났다면 또 하루가 지나기 전에 먹고 난 그릇들은 씻어야 한다. 한 달밖에 되지 않았다는 셈법을 버리고 한 달이나 됐다고 말해야 한다. 그래야 놀란다. 놀라서 밖으로 뛰쳐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다는 것을 깨우쳐야 한다. 그것도 혼자서, 낙오자처럼 외롭게 또는 쓸쓸하게. 사는 일이 이렇게 심심하고 부스러기 같고 허허로운 얼굴을 갖고 있다니, 일상의 맨얼굴을 눈부신 하늘 아래에서 만져가며 더 살 필요가 없는 이유를 떠올려야 한다. 세상에 없는, 없어도 되는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다. 그대로 바람이 흐르고 새들은 지저귀고 하늘은 맑을 뿐, 미동도 없다. 그러니까 나 없으면 세상도 없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나 없어도 세상은 여기 있다. 나 없는 세상은 어떻든가.

그래서 어제 쓰지 못한 일기를 오늘 쓰는 것은 나 없는 세상을 열어젖히는 것이다. 창이든 문이든 열고서 조금 늦었지만 그만두고도 싶지만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 또 살아보자고 내미는 손이다.

18년에 설 특집으로 방송됐던 임실 진뫼 마을 이야기를 봤다. 거기가 어디든 산세며 마을, 마을 앞을 흐르는 물, 마을 앞 보호수와 정자 같은 것들을 유심히 본다. 꼭 알 것만 같은 것이, 혹시 가본 적 있나 싶고 가본 적 없어도 가볼 것 같아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본다. 저 냇가가 눈에 든다. 마을 앞 우뚝 솟은 산 위에서 같은 자리를 사계절 찍은 영상을 보며 내가 걸었던 계절, 그때가 여름 가까웠던 날이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여기 기억나느냐고 물었다. 나는 알아보겠는데 아내는 가물거리는 듯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고 어떻게 걸었는지는 다 잊는다. 하지만 두 발로 걸었던 곳은 결국 알아보기 마련이다. 오래 헤어져 있어도 알아볼 사람은 알아보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 마을 앞 느티나무가 나오고 거기 어떤 어머니를 그리던 일곱 자식이 새겨놓은 돌비석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맞아.

우리가 정말 많이 걸었다며 식탁에 둘러앉았다. 강이는 맞은편에 앉고 자연스레 세 사람이 함께했다. 산이는 학원에 가서 늦는다. 내일 부처님 오신 날에 오빠가 피곤하다며 하루 쉰다고 그러는데 강이도 집에서 시간을 보내면 된다고 말을 꺼냈다. 엄마하고 아빠 둘이서 둘레길에 다녀올 거라며.

21코스 둘레길이 16, 17, 18 그리고 20, 21. 다섯 코스가 남았다. 2020년 5월에 걷기 시작해서 얼마 전 4년이 지났고 5년째 접어들었다. 그 사이 산이는 고등학교 2학년, 강이는 중학교 2학년이 되었고 우리도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 아이들은 어렸고 우리 부부는 둘 다 수술을 한 차례씩 받은 처지였다. 갑자기 든 생각도 아니고 무엇에 쫓기듯 시작한 일도 아니었다. 아이들이 그보다 훨씬 어렸을 적에도 그러니까 산이가 아기였을 때에도 유모차를 태우고 칠갑산에 다녀왔지 않던가. 유모차를 산모퉁이 어딘가에 놓아두고 업고서 계단을 올라 결국 정상에 다녀왔지 않던가. 틈만 나면, 그것이 우리가 일상을 견디던 방식이었다는 것을 어제 진뫼 마을 영상을 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힘든 길이 많았지만 재미있었잖아, 15년을 살아보니까 인생이 그렇더라고 말하는 강이에게 우선 고맙다고 했다. 같이 걸어줘서 고마웠고 고맙고 고마울 거야. 그러면서 강이가 우리처럼 쉰 살이 되면 - 미안한데 그때는 우리가 네 곁에 없겠구나. - 모두 그리워질 거라고 일러줬다. 기쁨이라든지 슬픔 이런 것들도 가만 보면 사람이 아직 어리다는 증거인 거 같아. 어른이 되면 비로소 그리움이란 정서가 날개를 넓게 펼치는 것 같아. 그 날개에, 공작새 알지? 공작새 깃털처럼 거기 무늬로 박히는 거 아닐까 싶어. 날개가 다 받아준다고 할까. 이런저런 무늬가 새겨진 날개가 화려하잖아. 그리고 더 튼튼하지. 눈물도 날개 안에서는 별처럼 빛나니까. 우리 정말 많이 걸었어. 내가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거 아니냐며 어린것이 눈을 반짝였다.

산이와 강이를 데리고 가면 좋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된다. 18코스는 따로난 길이고 거리도 19km나 되니까 이튿날 학교도 가야 하는 아이들한테 부담을 줄 필요가 없다. 아내와 나, 둘이서 미리 공부하는 셈 치고 걸어보는 것이다. 미리 연습 한 번 해보는 거라고 여기면서 걸어볼 생각이다. 아이들은 곧 자기들 세상을 찾아 떠날 것이다. 그때는 마음과 달리 시간이 없는 것을 아쉬워할 것이다. 그리고 서로 그리워할 것이다. 우리가 그리워할 그곳은 어디일까. 그 시절은 언제일까. 날개가 퍼득거릴 것이다. 날고 싶어서, 날아가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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