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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May 16. 2024

둘레길 대신에 조문

우리가 걸으면서 나누는


목요일 아침에 마시는 커피가 달지도 않고 쓰지도 않다. 조금 뜨겁다 싶은 맛을 누리고 있다. 어디 아라비아반도에서 들었음직한 가락이 낯설게 그러나 싫지 않게 내 오른편에서 들려온다. 잠깐 사이 뜨거웠던 커피도 적당히 마시기 좋아졌다. 거기에도 저 가락이 깊이 스몄는지 그윽한 맛이다. 어떤 순간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 - 나와 커피, 음악 그리고 공간 -는 서로 잘 아는 사이가 된다. 곧 헤어질 것을 알고, 이렇게 헤어지면 영영 다시 볼 수 없는 줄 알고 있는 동작들로 손짓한다. 막역하고 친절하다.

역시 이란 태생의 작곡가란다. 그는 어떤 인연으로 티베트와 불교에 심취했을까. 이란, 티베트, 불교, 모두 내게는 낯선 조건들이다. 그런데도 이 음악이 편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의 깊이 때문일까, 발목깨를 흐르는 내 옅음 덕인가. 평온한 날에는 미추美醜를 따지지 않고 바람이 곱게 분다. 책상 앞에서도 손가락 사이와 눈썹과 눈 사이를 단풍맛, 감맛이 도는 바람이 있다. 어디로 부는, 어디로 가는 바람이 있다.

피곤한 나를 도와 차분하게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저번 날에 산이가 사 갖고 온 카네이션이 창가에서 꽃망울 터뜨리기 시작했다. 저 붉은색이 오늘 아침은 맑은 하늘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 그대로 하늘과 꽃, 하나 대 하나로 상대하는 것도 같고 어울리는 듯도 하고 무엇보다도 색이 조화롭다. 붉고 푸른 것이 각각 시선을 끌고 있다. 바이올린의 현이 쟁쟁 칼같이 울면서 활이 부지런히 나와 하늘과 카네이션 사이를 물결친다. 이 급하고 선하고 휘어지는 순간에 어떤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쓰지 않아도 좋다고 방금 달리는 박자에 올라탔다. 거기 올라타서 서정적으로 흐르는 것들 속에 앉아 구름 사이로 덤벼드는 햇살도 한 줄, 이제는 다 마시고 비어 있는 커피 잔을 한 번, 또 무엇을 잡아볼까 더듬거린다.

어제, 그러니까 부처님이 오시고 스승의 날이기도 했던 5월 15일에 나는 그 전날 내가 썼던 '내일 이야기'처럼 하동에서 구례로 이어지는 경계를 즐겁고 피곤하게 걸어 다니지 못했다. 뜻한 대로 되지 못했다. 산길을 걸으면서 어느 순간 기분이 좋냐고 물으면 - 그렇게 물어본 사람은 없다- 그 순간이 삶인 듯싶을 때! 거기에서 번져오는 평온이 있다. 이렇게 다니는 것이 삶에 전혀 답이 못 되는 줄 알면서도 불편하거나 불안하지 않은 지점이 있다. 그 지점은 어딘가의 산모퉁이가 될 수도 있고 계곡이나 골짜기 바위 아래가 되기도 하며 땅기운이 내려앉고 사위가 식어가는 무렵이 되기도 하고 밥이 차려지는 때가 되기도 한다. 그런 곳에서 삶인 듯하고 삶을 바라본다. 내 삶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 어떤 이의 삶이 아니라 모두의 삶 같은 것이 그림자놀이처럼 펼쳐진다.

그것이 삶인 듯, 아이를 품에 안은 듯 여러 가지 모양을 하면서 걷고 있었을 것이다. 옛날의 옛날이야기도 한 가닥, 나중의 나중 이야기도 한 줄 꺼내가면서 어금니로 씹었다가 앞니로 잘랐다가 입안에서 맴맴 돌렸다가 바람을 넣어 풍선을 불 것 같이 걸음 하나에 세월 하나를 바꿔 먹으면서 걸어가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정작 날이 밝았고 내가 가고자 한 방향으로는 한 발짝도 떼지 못했다. 아예 다른 쪽으로 걸어야 했다.

이른 새벽에 내게 닿는 소식은 이슬 같다. 짧고 눈물처럼 맑고 투명한 것으로 맺혀 있다. 작은 아버지의 부음이 문을 두드렸다. 내 몸에 있으면서도 내가 모르고 사는 그 문을 탁탁 깨웠다. 거기가 문이었구나. 잠시 그대로 앉아서 두 줄짜리 부음을 읽고 또 읽고 읽었다. 절대 저 문장은 바뀌지 않을 것을 잘 아는 까닭에 간밤에 잠이 오지 않던 까닭을 비로소 받아들였다. 죽음은 길을 다 찾아와서 일부러 주변을 맴도는 듯하다. 어제 빈소에서 뵌 작은 어머니는 사람이 그렇게 허망하게 가더라며, 죽음이 그런 것만 같다면 무섭지도 않겠다며 잠자는 듯 돌아가셨다고 우리를 달랬다. 놀랐으면서도 그리고 슬프면서도 꼭 마주쳐야 할 그 인연이 사납게 눈을 치뜨고 덤벼들지 않았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평온하기를, 어디서나 평온하기를 우리는 빈다.

해인사 마당에도 끝없이 등이 달렸을 15일이었다. 사람들이 뜸한 산길에서도 더 떨어진 작은 절 마당에도 연등이 열 개쯤 걸렸던 해가 생각난다. 그 연등에 이름을 쓰고 건강하라고 빌었던 그 해는 세상 모든 소원이 건강하기를, 그거 하나 붉게 달고 둥둥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불자는 아니지만 지나가는 길에 소원을 비세요, 그렇게 다가오는 인사에 건강하세요, 그러면서 이름을 적는다. 내가 적는 이름은 신과 함께 머무는 이름들이다. 하늘에 있는 사람들이다. 건강이 산 사람들만의 꿈은 아닐 거라고 동화같이 이름을 적는다. 물론 성당에 - 특히나 적막한 성당에서는 - 그 이름들을 위해 미사를 올린다. 거기에서도 내 기도는 건강하라고 반복해서 외우다가 일어서는 것이다.

아내와 둘이서 바람 맞아도 좋다고 마음먹고 19km를 걸을 생각이었다. 오후 늦게는 돌풍이 불고 비도 내릴 거라는데 아이들을 집에 남겨놓고 가니 차라리 마음이 편한 것도 있었다. 14일 저녁, 내일 산이가 같이 가기로 했다는 말에 반가웠다. 친구들하고 영화 보기로 했던 약속도 토요일로 미뤘다면서 걷기로 했단다. 그렇다면 코스도 변경해야지, 허리 불편한 것도 잊고서 좋아했다. 강이도 잘 됐다는 얼굴로 오빠의 결정을 반겼다. 그러던 참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출발 전 날 썼던 '내일 이야기'는 완전히 빗나간 이야기가 된 셈이다. 사실도 되지 못했고 계획도 못 됐다. 그럴듯하게 쓴 상상이 된 '내일 이야기'를 다시 읽으면서 사람 사는 일에 다시 한번 연민이 든다. 무엇을 자랑하고 살까. 다 아는 것 같아도 하나도 알지 못하는 이 삶은 얼마나 신박하고 기특한 주제인가.

옷을 차려입고 아내와 나는 장례식장에 일찍 찾았다. 같이 있어주는 것이 전부인 그곳에서 서성거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허리가 아팠다. 하지만 좋았다. 산이는 사실 영화 약속이 미뤄진 것이 아니었단다. 우리와 함께 둘레길을 다 마치고 싶어서 저도 걷기로 했던 것이란다. 오후 늦게 산이와 강이도 작은할아버지 장례식장에 찾아왔다. 둘을 나란히 세우고 조문하는 것을 가르쳤다. 어디 가서 눈으로 보고 배울 것을 내가 직접 해보라며 하나씩 거들었다. 아이가 크면 술 마시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는데 술을 먹지 못하게 된 마당에 그 모습이 어쩐지 내 마음에 들었다. 모두가 무거운 장례식장에서 작은 웃음들이 번졌다. 영정 속의 작은 아버지도 흡족해하시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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