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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May 19. 2024

오늘은 나, 내일은 너

某也視善


쉬고 싶었던가 보다. 잠에서 깨는 순간 월요일인가, 월요일인가? 가느다랗게 이마를 스치는 한 줄기 물음이 일었다. 생각하기 전에 생각하는 순간을 아낀다. 할 수 있다면 그 순간을 포착하려고 연필을 들고 다닌다. 어쩌면 나는 연필인 줄도 모르겠다. 내 연필은 짧고 뭉툭하고 심지는 가늘고 옅다. 그 연필로 쓰는 문장은 다 보이지도 않아서 바람결에 펄럭이는 커튼 같을 때도 있고 뜬금없이 윈난성에서 봤던 바람을 소환시키기도 한다. 산 위에서 산 아래까지 끝없이 펼쳐진 다랭이논에 부는 바람은 내가 거기 하니족 사람은 아니었을까, 이마를 스치던 물음으로 남아있다. 낯선 곳에 가서 낯선 적이 없는 나는 어디 사는 누구인가.

금요일 작은 아버지 장례미사를 마친 뒤로 계속 내게 부는 바람을 그려야겠다. 5월인데, 그러고 보니 5월인데···· 언젠가 그런 편지가 있었다. 몰랐다고, 찔레꽃 피면 집집마다 향을 피웠다고. 그 냄새가 어린 자기한테는 5월이었다며 어머니가 서럽게 울어서, 아랫집 아주머니도 그 아랫집도 마을이 다 울어서, 자기도 묵묵했다고. 이제는 그것이 역사인 줄도 알고 모두 기억이 나서 여전히 아프다고.

내 이야기가 아닌 그 이야기를 가슴 아프게 들을 수 없었다. 슬픈 이야기였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며 금방 잊어버렸다.

그래, 월요일이었으면 마음이 바빠서 대충이었을 것을 이것도 인연이라고 여기고 자리에 앉아 연필을 꺼냈다. 오른손에 잡힌 연필이 나보다 더 사색적이다. 인간적인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텐데 - 무엇이 인간적인가, 오늘은 자꾸 이마가 간지럽다. - 연필은 담담한 것이 믿음이 간다. 무엇을 바라지 않는 모습이 어떤 얼굴 같다. 누군가 그랬다지, 세상 모든 것에는 표정이 있고 얼굴이 있다고. 그래서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자기 얼굴을 자기 앞에 세우나 보다.

도솔암이었던가, 순천 송광사였던가. 푸른 눈을 가진 스님이었던가, 수덕사에서 만난 비구니 스님이었던가. 어쩌면 석굴암 가는 길에 올랐던 토함산 중턱이었는지도 모른다. 걸으면 만났다. 한 마디씩 내가 얻은 말들은 모두 길에서 만나고 웃었던 얼굴들이 건넸던 마음이다. 마음 담은 얼굴, 바람도 거기 얼굴이 보인다. 맞다, 바람은 본래 마음 아니었던가.

그런 보시행이 있다고 그랬다. 보시布施, 베풀고 베푼다. 누구나 아는 말이 다가올 때 불을 켜는 사람이 있다. 모두가 고개 들어 끄덕일 때 방을 밝히듯이 자기 안을 환하게 하고 그 뜻을 온몸으로 받드는 사람이 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일치를 이루는 이상을 품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얼굴은 나무 같고 구름 같고 물 같았으며 하늘 같았다.

자기 몸이 아프거나 움직일 수 없어서 가만 누워만 있어야 하는 사람도 행하는 보시가 있다는 말은 죽비 같았다. 아마 그날이었을 것이다. 눈에 힘주지 말자고, 어깨에 표정에 말에 '뽕' 넣지 말자고 마음먹었던 날이 그날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안시顔施라고 그랬다. 내 평화로운 표정을 보고 평화가 생겨나고 내 따사로운 표정으로 따뜻함이 번진다는 것이다. 노랑 병아리를 보면 누구나 '노랑'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시냇물을 보고 꽤나 마음이 선선해지고 졸졸 흐르지 않았던가. 이제 세상의 얼굴을 보며 세상을 거니는 나이가 된 것이 다행스럽다.

장례미사 중에 신부님께서 작은 아버지의 생애를 간략하게 소개했다. 이력을 소개하는 방식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내세울 만한 것이 없어서 그런지 신부님의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듣기에 편했고 그렇지 않아도 슬퍼하는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됐던 듯싶다.

"5년 전 폐암 진단을 받고 리오 형제와 수산나 자매가 둘이서 약속을 했답니다. 둘 중에 한 사람이 먼저 죽으면 뒤에 남은 사람이 3년간 매일, 미사 올려주기로."

작은 아버지는 내가 알기로도 아프기 전까지 당신이 아는 사람들의 이름을 달력에 적어놓고 기도하며 그 사람들을 위해 미사 봉헌을 하셨다.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작은 아버지는 성당에 다니시기 시작했으니까 - 언뜻 세어 보니 30년 되신 듯 - 우리 친척 일가 편에서 보면 좀 늦은 출발이셨다. 아마 그것이 작은 아버지가 할 수 있는 '보시'였을 것이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조금은 의아했던 것이 내가 아는 작은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흔히들 강 씨 고집이라고들 하는데 작은 아버지야말로 내게는 그 인상이었으니까. 완고했으며 강인했다. 세상에 두려움이라고는 없는 인상이셨다.

신부님께서 소개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몰랐을 작은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만이 아는 '이력'을 몇 가지 더 들으면서 눈물이 살살 돌았다. 사람은 저렇게 다들 따스한 정이 있기 마련이구나···· 싶었다. 사느라고 돌아보지 못했을 뿐이지, 마음은 다 꽃밭이 좋은 줄 아는구나.

예수님 말씀이었으면 좋겠다. '나를 울지 말고 너의 죄를 울라.' 언제가 미사에 참석해서 듣다가 적어놓은 말이다. 장례식에 가면 숙연해지고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식장에 들어서면서 고인과 나눈 것들과 나누지 못한 것들을 곰곰이 떠올린다. 아버지를 무덤에 모시는 날에도 내 울음은 '잘못했다'는 것이 전부였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든 모르든 그 말밖에 내 속에서 나올 것이 없었다. 그렇게 내 잘못을 돌아본다. 어쩌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지금까지 그 세월 아니었을까 싶다. 누군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라, 나를 아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일은 그만큼 내가 외로워지는 일이다. 내가 알던 사람은 - 한용운의 시에서 말한 것처럼-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만, 나를 아는 사람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이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인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당신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만 내가 당신의 죽음을 사랑하는 까닭이 된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의, 작은 아버지의 죽음을 언제까지나 기억하고 사랑할 것이다.

관을 두르고 있는 자주색 비로드 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Hodie mihi, Cras tibi, 호디에 미기, 크라스 티비. 오늘은 나, 내일은 너. 유럽에 있는 공동묘지를 둘러본 사람들은 이 말에 걸음을 멈추곤 한다. 말은 곳곳에 많이 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말을 받아 적는 연필과 종이, 그리고 거기로 걸어보는 순간, 그때 부는 바람이다. 그것으로 견딜 줄 안다면 삶이 얼마나 풍성해질까. 얼마나 눈물겨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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