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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May 08. 2024

지리산 둘레길 19코스 -3

우리가 걸으면서 나누는


"둘레길 걷고 계시나요?"

맨 앞에 여인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눈빛은 맑고 음성은 더 맑았다. 순간 망설였다. 부대원들이 일제히 돌아보며 경계 태세를 취하려는 것을 표정으로 말렸다. 가만, 지금은 아니야. 워워, 아니야.

긴장을 늦추지 않되 긴장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상대는 셋, 우리는 넷이다. 그러는 사이 나머지 두 사람도 가까워졌다. 여차하면 백병전이라도 벌어질 수 있을 만큼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심장이 요동쳤다. 어금니를 물었다. 그래도 우리는 한 명이 남는다. 내가 허리를 마음껏 쓰지 못하는 것을 상대는 알지 못한다. 먼저 공격하는 쪽이 유리하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도 위험해진다. 섣부른 판단은 모두를 위험에 빠뜨린다.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산밖에 없다. 저들은 어디 소속의 대원들인가. 현실판 아마조네스?

이런 순간을 수없이 반복하며 이미지 훈련을 해왔다. 반달곰이 덤비는 장면도 목줄도 없이 따라오는 동네 개들도 우리는 이겨내지 않았던가. 해방으로 가는 길이 쉽지는 않구나.

"네, 토지면 오미에서 광의면 방'광'으로 가고 있습니다."

혹시 웃을까 봐 똑똑하게 스타카토로 말해줬다. 방'광'으로 갑니다. 상대는 담담하게 대답을 듣고 있는데 또 뒤에서 킥킥거린다. 우리 부대원들은 이 상황이 두렵지도 않은 것 같다. 역시 훈련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이번에는 안경을 쓰고 머리에 두건까지 두른 여인이 물었다. 혹시 오는 길에 벅수 보셨냐고? 그래, 벅수! 저 화살표를 벅수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표지판이라고 그러는 사람, 우리 막내 부대원은 작은 십자가라고도 부른다.

"저 위에까지 갔는데 길이 없어요. 아무리 찾아도 길이 없어서 다시 내려오는 거예요."

누가 내 발자국을 따라올지 모르니까 눈밭에서라도 함부로 걷지 말라던 초대 우리 부대장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둘레길을 다니면서 몇 번이나 길을 잃었다. 그때마다 어떻게 다음을 이었는지 때때로 우리는 순례자가 된 듯한 착각도 들었다. 시선을 바꾸고 세 사람을 다시 바라봤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 그 엄마의 나이 든 엄마, 평화로운 사람들이었다. 모녀 3대가 길을 걷고 있다고 그랬다. 잠깐이었지만 우리는 함께 길을 찾았고 19코스가 다 끝나갈 때까지 서로를 지나가면서 손을 흔들었다. 경기도에서 왔다면서, 둘레길 걷기 시작한 지 5년 됐고 2개 코스가 남았다는 멋지고 용기 있는 팀이었다. 저 모습이 우리에게도, 우리의 모습이 저기에도 깃들어 있는 거울 같았다. 평화는 서로를 비추는구나.

그렇게 산길을 걸었다. 절정을 향해 생명력을 뽐내는 초록 세상이었다. 아름드리나무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의 기세하며 바위 뒤편에 핀 이끼들도 5월에 내린 비에 흠뻑 취해서 제 세상이다. 풀이며 잎들이 어찌나 싱싱한지 길마저도 생기로웠다. 우리 부대원들도 제 궤도에 오른 탱크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저 앞에 가는 막내 부대원이 아직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 그러니까 우리가 처음 둘레길을 걸었던 해에 높다랗게 솟아 있던 하늘문 아래 고갯길에서 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아는가. 그 이름도 잊히지 않는 등구재 아래에서 겨우 내뱉던 말. 어쩌면 그 말 한마디가 우리 모두를 걷게 했는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여기까지, 그리고 마지막까지.

"어버이날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걷는 거야."

우리도 그렇게 5년 걸었다. 그 힘이 어디에서 났을까. 오늘만큼은 진지해지고 싶지 않았는데 걷다 보면 사람이 저도 모르게 자꾸 고마운 생각이 든다. 세상이 고마워지면 왜 반성이 될까. 스물한 개의 코스를 다 걷도 나면 모두 그리울 길들이다. 사실 허리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어느 길을 갈까, 가도 될까, 망설이며 나섰다. 날씨도 좋지 않은데 가만있는 것이 백 번 낫겠다는 생각을 우리도 했다. 하지만 돈키호테처럼 나섰다. 때로는 그가 내 스승이 된다. 뻑뻑해서 돌아가지 않는 기계에 기름을 칠하는 것처럼 우리도 작전을 짰다. 특공대가 되어 추격하고 정찰하고 임무를 완수했다. 산을 일구어 매실을 키우는 농가를 지나면서 응원했다. 지난번 원부춘에서 가탄 15코스를 걸을 때는 녹차밭이었는데 이렇게 지리산 하나를 둘러싸고 다양하고 많은 것들이 길러진다. 아픈 허리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힘든 코스를 뒤로 미루고 훌쩍 19코스를 골랐던 것이다. 모든 선택에는 내가 있었다는 것을 시간이 훗날 가르쳐 준다. 냉정하게도 보이는 그 가르침이 나는 이제 편해졌다. 탓할 것이 없다는 것을 배운다. 아이들이 따라와 주는 것이 우리가 가진 복이다. 내가 가진 것을 소홀히 하는 사람에게 과연 무엇이 더 필요할까. 길은 오늘도 나를 도왔다.

노고단에서 화엄사 계곡을 따라 물이 불어있었다. 집중 호우로 마산천을 지나갈 수 없었다. 부대원을 이끌고 우회했다. 돌아가면 멋진 것이 있더라는 내 경험칙이 또 한 번 적중했다. 돌담이며 집들이 다정한 마을, 황전 마을을 그냥 지나쳤을 것을 생각하니 정말이지, 인생은 새옹지마다. 부대 전체가 쉼을 가졌다. 걸으면서 쉬는 표정들은 언제 봐도 흐뭇하다. 돌담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낮은 담장 너머로 잘 가꾼 뜰을 바라보았다. 뜰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알뜰살뜰, 사는 것이 그래 보였다. 마을 골목길을 유람하고 둘레길 이정표를 발견했다. 물소리 좋은 곳에서 챙겨 온 빵이며 떡을 먹었다. 허리가 아픈 것을 이야기했다. 치즈크림을 발라먹는 옥수수빵은 허리 아픈 것도 잊게 해줬다. 고마워서 사진으로 남겼다. 고마운 것들은 잊지 않기로. 또 걷는다.

처음으로 산이가 내 배낭을 짊어졌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아이가 팔씨름도 세졌다. 황전마을 간식을 먹던 데, 나는 그렇게 기억할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 산이가 자주 배낭을 멜 것이다. 남자가 맨 배낭은 오랜 세월 그와 함께할 것이다. 아직 저 부대원은 잘 모를 테지만 그도 언젠가는 부대를 이끌고 먼 길을 가야 할 것이다. 그의 첫날이 우연처럼 온 것을 나 혼자 알아챘다. 산이가 그 길 끝까지 내 짐을 들어줬다.

바빠서 여유가 없다면 여기 이 길이라도 한 번 걷기를 권한다. 힘들이지 않고 넉넉하게 걸을 수 있으며 내 몸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길이 다 와 가는 아쉬움이 들 무렵에 수한 마을이 나왔다. 본래 물이 차다 해서 물한리였던 것이 수한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물은 지혜를 상징한다. 정화수 한 사발 떠놓고 소원을 비는 어머니, 할머니가 연상되는 오래된 산골 마을이었다. 예스럽다. 감나무도 뻐꾹새 소리도 부대원들의 하품도 모두 가지런했다. 당산나무도 실컷 올려다보고 길이 끝나가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들녘으로 나왔다. 2시 55분, 방광 마을 표지석 앞에서 넷이서 사진을 찍었다.

치즈 대신 김치 대신 방'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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