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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un 07. 2024

지리산 둘레길 18코스, 오미 -난동 1

우리가 걸으면서 나눈


2020년 봄에 걷기 시작한 지리산 둘레길이다. 일 년에 두 번, 기회가 허락되면 한두 번 더 찾아와서 아이들과 함께 걸었던 길이다. 맛있는 떡을 아껴 먹듯이 두고두고 걸었던 것 같다. 그 길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이제 실감한다. 맑은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디쯤에서 들었던지 그 물은 늘 청량하다. 발 여덟 개가 계곡물에 나란히 잠겨 찰방거리던 날은 꾀꼬리가 멀리서 울어 애지 않았을까. 뛰 띠띠 째째째째 그러면서 울던 새들은 벌써 어미 새가 다 되었겠다. 가만히 가만히 움직이던 세상을 거닐었던 듯싶다. 꿈속이었던 듯하다. 어제는 18번째 코스, 남은 길 하나를 아내와 걸었다. 둘이서 걷는 길이 마치 결혼식장 같았다. 걸을 때는 몰랐는데 하나하나 어제 걸었던 길을 돌이켜 보니 꼭 그 느낌이다. 하루 종일 행진을 했던 거 같다. 길 양쪽으로 펼쳐진 강물과 들판이 더 어울릴 수 없는 하객이었다. 잘 익은 보리밭도 머리를 가누기 시작한 무논의 벼, 나무에 달린 채 술이 되어가는 매실도 한껏 분위기를 도왔다. 우리는 그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걸었다. 오래 걸었다.

출발 전에 오미에서 난동까지 지도를 보면서 고도와 거리를 살핀다.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린다. 본 적 없는 집들과 마을을 그 풍경화에 그려 넣는다. 애정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들을 챙기게 한다. 삶에는 애정이 있어야 한다, 욕심 말고 애정. 그래야 순하다. 물로 그리는 그림은 농담濃淡이 재미있고 그것이 생명이다. 세상에 물맛을 따라올 맛이 없듯이 사람에게는 물빛이 아른거려야 한다. 애정은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흐르는 물이지 않던가. 물이 흐르는 길이었다. 평범하면서 특별한 길이었다. '배우는 특별한 일을 하는 평범한 사람'이라던 배우 유해진이 생각나기도 했던 길이었으며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고 독일 속담을 연신 말씀해 주시던 요셉피나 수녀님도 그 길에 계셨다. '내 말에 속지 말라'던 성철 스님도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텅 빈 충만을 가르쳐 주셨던 법정 스님도 모두 거기 계셨다. 결혼 행진이 몇 킬로미터나 되는지 내내 오붓했으며 내내 아기자기했다. 벚꽃이 피면 정말 예쁘겠다는 말이 '오늘'로 들렸다. 오늘 정말 예쁘다고 들렸다.

마을 소개를 봐가면서 이런저런 이름들도 대충 봐둔다. 구례 센터에서 한 번 쉬고, 광의 면사무소에서 한 번, 그렇게 난동 마을로 향하면 되겠다. 버스는 어떻게 되는지, 도중에 들러봤으면 싶은 데는 없는지 블로그도 한 번 둘러본다. 좋았다는 말보다 특히 힘들었다는 말이 있으면 - 예를 들어, 길을 잃거나 헤맸다는 - 눈을 감고 잘 새긴가. 그러고도 길을 놓치고 종종 곤란해지지만 더 어려워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잘 챙긴다. 무엇인가를 챙길 때 꼭 그 지점이 중요하지 않더라는 것, 항상 조짐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길에서도 깨달았다. 벅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갔다가 돌아와야 하는 길도 있지만 벅수 날개가 가리키는 방향을 잘못 읽어서 없는 길, 아닌 길로 들어서는 일은 가능한 만들지 않기로 한다. 벅수를 의지하되 믿을 것은 자신이다. 사람들이 실수한 이야기는 곱게 접어서 주머니에 챙겨 넣고 같이 걷는다. 그런 것들을 배운다. 알고도 안 배운 것들, 모르고서 못 배운 것들을 길에서 배운다. 여행이란 말은 그래서 좋다. 우리의 여행은 기본적이어서 좋다. 두 발과 심장으로 가는 자동차, 매연도 없고 들를 데는 다 들러보고 가는, 생각보다 멀리 가는 차.

4월에 아팠던 것을 생각한다. 길에서 나는 아팠을 때가 잘 생각난다. 몸이 아프면 걷고 싶어도 걷지 못하는 것을 생생하게 떠올린다. 허리를 굽히지 못하고 세수를 하는 일은 난감하기도 하고 처량하기도 하고 때로는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길을 걷고 있으면 더 잘 살고 싶어지고 오래 다니고 싶어 진다. 산이는 며칠 전에 감기를 앓았고 우리가 걷는 길은 구례읍을 바깥으로 빙 둘러 가는 길이라 멀고 심심하다. 나는 아직 이력서를 쓰는 듯하다. 내 이력서에는 그 문장을 넣고 싶다. 멀고 심심한 길을 다닙니다. 어디에 가면 나를 쓸까, 어디에서 나는 쓸모가 있을까. 길에서 상상하면 자유롭다는 것이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산이와 강이는 늦게까지 잠을 자고 천천히 하루를 지내라고 그랬다. 심심한 길은 엄마하고 둘이서 다녀올 거니까 너희는 재미있게 보내라고 메모를 남겼다. 금요일에도 우리는 일을 해야 하니까 목요일을 집에서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다. 우리도 아이들을 조금씩 놓아주기 시작했다. 그래도 남은 4개 코스는 다 같이 끝마치고 마지막 날에는 만세라도 부르면서 박수를 쳤으면 좋겠다. 우리 정말 잘 걸었다고 우리끼리 축하하고 싶다. 어제 아침 출발하면서 이것저것이 걱정스러웠는데 저녁에 본 얼굴들이 다들 흡족한 표정이었다. 너희도 자유로웠구나, 그게 좋았구나.

덥지 않고 구름이 많아서 걷기에 편했다. 금가락지가 떨어진 명당, 금환락지 앞에 다시 섰다. 저쪽에는 운조루, 이쪽으로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곡전재穀田齋가 있다. 지리산이 펼쳐지고 앞으로 섬진강이 흐르는 곳이 다 명당 같은 구례에 도착했다. 몇 걸음 걷지 않고 마주한 곡전재는 대문 앞에서부터 정취가 있었다. 입구에 난이며 꽃이 손님을 맞이하는 것처럼 맑고 향기롭게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에 들어서면 걸음이며 숨소리 하나하나에 옛날이 달라붙을 것 같다. 잠시 선비가 되어보기로 한다. 일본식 정원을 둘러보며 연못이며 거기 사는 코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것과 또 달랐다. 여기는 연못인 듯 샘인 듯, 물이 수로를 따라 돈다. 곡전재에는 꽃이며 나무가 많았다. 집안에 대나무 숲까지 있었으니까. 5채 51칸으로 된 이 집에 볕이 드는 데는 어떡하든 꽃이 있었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너른 마당을 제외하고는 울타리 안에 눈길 가는 데에는 온갖 꽃들이 색색으로 조화로웠다. 한가로워서 거기 쓰여있는 글자들도 눈에 들었다. 동쪽 행랑채였던가 싶은 데는 거연당居然堂. 작은 연못이 거기 곁으로 있었다. 그렇게 머문다. 심심한 것도 저 정도면 운치가 된다. 광풍동춘光風動春도 있었고, 내가 걸음을 멈춘 곳은 화위귀당和爲貴堂, 그 옆에 작은 글씨도 힘닿는 데까지 올려다봤다. 누군가의 결혼을 축하했던 것 같다. 계해 정월이라고 썼다. 무엇보다도 '조화로운 것이 귀한 것'인 줄 당부하는 말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여기 들던 사람은 그 뜻을 잘 새겼을 것이다. 사람은 오며 가며, 나며 들며 그렇게 변해가지 않던가. 장독대도 사진 한 장 찍고 곡전재를 돌아 나왔다. 부자는 거드름 피우지 않아도 부자인 것이 드러난다. 부자의 마음 씀씀이가 달달해서 여기가 명당인 것을 새삼 또 알아봤다. 갑시다, 우리 나그네는 저기 구름이 흘러가는 데로 걸어갑시다.

마을을 벗어나 마을을 돌아본다. 그렇구나, 오미 마을 앞에 있는 산은 오봉산, 저 모양이 엎드려 절하는 신하를 닮았다는 거구나. 그 뒤로 지리산 자락은 알겠다. 그래 오던 길에 작은 시내도 있었다. 그리고 저기 둑길 건너에는 섬진강이 흐르고 우리는 섬진강 길을 걷는다. 이순신 백의종군로라는 표지도 곳곳에 보였다. 그 길이 이 길이고 이 길이 그 길이었다. 그때까지도 몰랐다. 우리가 걷는 길이 내가 늘 구례에 들어서면 가리키던 그 왼쪽에 나 있는 길이었다는 것을. 구례는 높은 데에서 보면 참박으로 만든 바가지처럼 둥그렇게 분지형이다. 포근하게 감춰져 있다고 할까, 숨어있다고 할까. 그 포근함 속에 깃들고 싶어 구례로 들어서면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이 길 왼편으로 흐르는 물과 그 물가를 따라 가로수가 줄지어 서 있는 산책길이다. 마음에 두면 언젠가 인연이 닿는다. 따로 조급할 것도 없는 그런 약속을 좋아한다. 지켜도 지키지 않아도 좋은 약속이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그러다 만나면 반가움이 더 커지니까, 미안함은 아예 처음부터 없이 시작하니까, 가볍고도 깊은 약속이 나는 좋다. 그게 비록 길이나 숲, 도시나 건물에 두고 하는 약속이더라도 말이다. 스코틀랜드 끄트머리, 아르헨티나의 끝, 또 어디 끝에 두고 약속했던가. 오로라를 보러 가겠다는 약속은 해마다 갱신한다. 두고 볼 일이다. 내 약속들, 약속의 땅에서 깊이 숨을 들이마시는 상상을 오늘도 여기서 열심히 갈고닦는다. 제법 날렵하고 노련한 나그네가 될 것만 같다. 아, 좋다.



* 코이 - 錦鯉, 비단잉어를 뜻하는 일본어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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