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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ul 14. 2024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2021.0716

더워서 잠을 깨지는 않았는지.

​살갗에 닿는 새벽 공기의 신선함을 당분간은 포기해야 할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잠이라도 잘 자고 일어나야 혼란스러운 이 판국을 이겨낼 수 있을 거 같은데 막막한 기분은 어쩔 수 없다.

그게 무엇이 됐든 ´본격적´이란 말이 따라붙으면 새롭게 다시 판을 짜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름이 커졌다. 힘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해마다 찾아오는 여름이지만 바로 작년에 있었던 일도 다 잊고 사는 것 같다. 속에 숨겨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몸뚱이 하나로 덤벼드는 것이 순둥이 같기도 하고 고집스럽고 뜨겁다.

미련이나 후회도 없어 보이고 세월을 살아낸 지혜 같은 것도 찾아볼 수가 없다. 살살 달래는 재미가 있다. 아서라, 과연 그럴까.

그와 싸우는 일은 없어야겠다. 덩치만 컸지 아이같이 쨍쨍 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여름이 호박을 키우고 고추를 빨갛게 물들인다. 벼 이삭도 실컷 그의 그늘 아래에서 혜택을 누리는 것을 안다. 어디 그뿐인가.

참깨 잎이 옥수수 밭을 배경으로 한창 자라고 있다. 수수 같은 것도 덩달아 자라고 오이며 가지는 따기 바쁘게 자라고 있다. 살아있는 것들이 실컷 땀을 흘리고 있다.

​백일홍 나무가 지금 가장 보기 좋은 것도 빠뜨리기 아깝다.

​올해 여름이 시작하면서 내가 받은 선물이 하나 있다. 벌써 다섯 번째 그 선물을 들고 길을 나서고 있다. 달랑달랑 흔들면서 걷는 것이 꼬마 같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어떻게 보일지 알 것도 같다.

​나를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나를 마주치는 사람들에게서 잠시 정적이 흐른다. 다들 표정을 심오하게 챙긴다. 한 번에 해석하기 어려운 표정이 얼굴마다 문을 열고서 나를 본다.

아무렇지 않은 듯하면서 꼭 그렇지는 않게, 불편할 것 같은데···· 위험할 것 같은데····  따라 해 볼까 말까···· 그렇고 그런 생각들, 표정들, 질문들이 훅 스친다.

표정에도 ´손맛´이 절대적이다. 손맛 좋은 사람들이 어떤 요리도 맛있게 내놓는 것처럼 손맛 좋은 이들은 그야말로 작품을 만든다. 손맛 좋은 사진작가, 손맛 좋은 의사, 손맛 좋은 선생님, 끝내주는 손맛을 가진 여행가 기타 등등.

보는 사람이 흐뭇해지고 감동의 순도가 높아지는 그런 맛이 좋다. 제일 좋은 맛은 자연스러움. 자연스러운 것을 잘 챙기는 자세가 ´아름다움´이다. 은행잎처럼 하나를 이루는 둘,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은 하나를 이룬다. 그 맛을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어제 산길을 걷다가 그 문장을 마주쳤다. 혹시 다시 못 들을까 봐 듣고 싶은 음악도 멈추고 걸음도 가느다랗게 떼었다.

​가뿐하려고 애썼다. 아니 살살거렸다. 땅을 살살 밟고 디디면서 지나왔다. 여름은 살살, 옳거니 그거다. 여름에는 살살.

​정채봉 선생의 동화에 나오는 구절이다.


​- 아름다움이란 뭔가요? 꽃잎이 크고 빛깔이 진하고 향기가 많이 나면 그러면 아름다운 건가요?

그런 것은 진짜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없어.

그럼 진짜 아름다움이란 어떤 건가요?

아름다움이란 꽃이 어떤 모양으로 피었는가가 아니야. 진짜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에게 좋은 뜻을 보여주고 그 뜻이 상대의 마음속에 더 좋은 뜻이 되어 다시 돌아올 때 생기는 빛남이야.

어떤지?

​아름다울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 아름다운 것이 보이는 것 같다는 느낌이 살살 전해오지 않는지.

그런 것이다.

​그냥 보여주고 싶었다. 다 잊어버리기 전에.

​내가 보니까 좋아서, 내가 해보니까 좋아서, 내가 맛보니까 좋아서.

아, 내가 받은 선물은 기막힌 것이다. 분명히 웃을 것이다. 웃지 않는다고 해도 믿지 않겠지만, 웃어도 좋다. 왜냐하면 이거 무척 괜찮은 선물이니까.


´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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