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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ul 16. 2024

언어의 정원

ショウショウお待ち下さい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리지 않을까.

그러면 널 붙잡을 수 있을 텐데.

무엇으로 좌절했던가. 그것은 아직 따뜻한가.

그때가 내 인생 전부에서 어느 지점이었는지 짚어볼 수 있을까.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본 것보다 영화를 읽었다.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흔한 일인데, 이 영화는 책으로 남는다.

그것도 프랑스식 연인이나 셰익스피어식 로미오와 줄리엣 같지 않고

책 냄새 짙은 고서점에서 찾아낸 만엽집에 나오는 한 줄 남은 연애.

다 사라지고 내가 사라지면 한 달쯤 혼자 거닐다가 사라지기로 하는

그날 거기 앉아서 지켜봤던 낮달과 저녁달, 그리고 자전거가 지나가는 풍경.

신주쿠 교엔을 내 발로 걸어서 찾아갔었다.

도쿄에 살다 보면 문득문득 녹색이 그리워진다.

녹차도 자주 마시고 집집마다 꽃이며 나무도 가꾸는데 아무래도 남의 나라였다.

위로가 좋기는 하지만 편하지는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살고 싶었는가 보다.

200엔.

지금도 200엔일까.

30년이 되면 거기에 가보기로 한다.

내가 이코이 바쇼라는 말을 처음 배웠던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쉼터라는 말은 짧다, 거기에는 숨이 쉬어진다는 느낌이 없어서 그 말을 대신하지 못한다.

신주쿠 교엔에 가면 숨이 쉬어졌다. 200엔으로 숨을 쉴 수 있어서 무한정 고마웠다.

그야말로 실컷 미도리, 녹음 綠陰을 주입시켰다. 혈관에 푸른 피가 돌았다. 나는 그녀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

거기 앉아서 이름이 흩어지는 것을 기다렸던가.

나도 맥주를 사고 초콜릿을 사 들고 비가 내리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도쿄를 떠올릴 때마다 비가 올 듯한 하늘이 머리 위에 걸린다.

그 방은 허물어지고 없어졌을 것이다. 4 조반짜리 다다미방에서 나는 숨어 지냈다.

허름한 이층짜리, 복도를 따라 방이 4개 있었던 고바야시 할아버지 소유의 별채.

비 그리고 풀.

비가 내리면 일이 잘됐다.

야키니꾸 가게가 붐볐다. 빗물에 젖은 손님들이 아는 척을 해왔다. 그들의 우산을 가방을 주문을 받았다.

나는 비 먹은 풀처럼 찬란했다. 계속 일을 하고 싶었다. 불빛 아래에서 나마비루 잇뽕 - 생맥주 한 병- 을 부르고 싶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신주쿠에서 내렸다. 거기는 풀밭이다.

도시의 소음이 등 뒤로 날아오르면 귀여운 구석이 있다. 삐뽀삐뽀 경광등 소리도 한가로워진다. 여름에도 거기에 있었다.

누군가 영화를 만들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나는 이러다가 가을, 겨울쯤에는 어떻게 될까 싶었다.

소년은 구두를 만드는 꿈을 꾼다.

다시 태어나면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그 순간 구두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두가 부러운 것이 아니라, 저 발이다. 저 자세다. 내 평생 가져본 적 없는 무지개 같은 표현이다. 구두를 한 번만 만들고 싶어졌다. 날개옷처럼 만들고 싶어졌다. 아마 나도 거기 앉았을 것이다. 일본식 정원이 내 단골이었으니까. 벚꽃이 피었던가, 벚나무 잎에 물이 들었던가. 이파리마다 사연을 담아도 좋겠다. 거기 한 글자씩만 다 써놓아도 긴 고백이 되겠구나. 아, 나무여. 나무 같았던 여자여.

15살의 다카오와 27살의 유키노.

구두 그리고 고전 문학, 비가 오는 날 그리고 교엔.

유키노가 했던 말이 그대로 잘 들렸다.

고고로노요리도고로오우시낫테시맛타.

心のよりどころを失ってしまった。

나도 그랬다.

나도 만엽 萬葉에 그려볼 것이다.

1년 동안 거기에서 살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다 들었다. 새소리, 빗소리, 천둥소리, 바람소리, 휘파람 소리, 진공까지. 그래도 사랑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보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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