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7월에 맨발 걷기 5번째 이야기를 쓰고 2년 만이다. 그동안에도 맨발로 걷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늘 맨발로 걸었던 것도 아니어서 따로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까지는 아니었다. 맨발 걷기를 멈추게 된 이유가 다소 엉뚱하다. 지난 2년 동안 큰 변화가 있었다. 집에서 가까운 배산 공원이 맨발 걷기 성지가 됐으며 혼자서 맨발로 걸었던 청암산 둘레길에서도 맨발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동참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일종의 청개구리 근성이다. 걷다 보면 좋은 줄 알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다만 필요 이상으로 욕심만 내지 않는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 따라서 걷게 되었으면서 어느새 초심을 잃었다. 거드름이라도 피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정말이지, 겸손은 힘들다. 23년에는 비도 많이 내려서 신발을 벗는 것이 더 귀찮게 느껴졌던 거 같다.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변명하는 거, 그다지 좋은 버릇이 아니다. 맨발 걷기가 좋은 줄 알면서도 내내 그렇게 걷지 않았던 것은 역시 불편하기 때문이었고 느리고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발바닥이 꼭꼭 눌리는 그 통증이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었던 탓이다. 날이 추우면 추워서 길이 험하면 험해서 거리가 멀면 멀어서 신발을 신었다. 동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또 신발을 신었다. 그렇게 무심해졌고 편해졌다. 편한 것만큼 중독성이 강한 것도 없다. 더구나 안전하니까 더 모른 척하게 됐다. 자발적 슬럼프라고 부르면 될 듯싶다. 전진을 위한 웅크림이라고 해석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 시간을 지나서,
올해, 그러니까 벌써 몇 번째던가. 맨발로 걷고 있다. 지난주는 계단 공사가 끝난 함라산을 걷고 와서 3일을 고생했다. 왼쪽 발바닥 뒤쪽이 바닥을 디딜 때마다 아팠다. 속으로 멍이 든 것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며칠 지켜봤다가 더 아프면 병원에 갈 생각도 했었다. 운이 좋게 금요일 아침에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말끔해졌다. 쿵쿵 바닥을 찧고도 아무렇지 않았다. 첫날부터 얼굴에 은근한 열감이 느껴졌다. 밤에는 옆에서 나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깊이 잠이 들었던 날이다. 다음날 이른 시간에 깨어 물을 마시면서도 몸에 아직 더운 기가 가슴과 어깨 쪽에 흐르는 것 같아서 '조화롭다'라는 느낌이 무슨 감각처럼 돌올했다. 이런 느낌 흔하지 않은데, 그것이 솔직한 내 반응이었다. 맨발로 40분쯤 걸어 올라갔다가 신발을 신고 내려왔던 것뿐인데 그 당일 오후, 다음날 하루, 그 이튿날까지 뭔가 튼튼한 것이 가슴께를 지키고 서 있는 느낌이었다. 물을 마셔는 것도, 밥 먹는 것도 달랐다. 첫날 낮잠을 자고 나서는 그 뒤로 몸에 활력이 있었다. 단순히 '활기'라고 말하지만 홍삼이나 보양식을 잘 먹은 날과 비교해서 훨씬 더 순도 높은 영양가였다. 진짜 기운이 났다. 그 느낌이 신선하고 오랜만이었다. 반가웠고 이 좋은 것을 잊고 있었다는 자책이 들었다. 그래서 토요일 오전, 마침 여유가 생긴 틈을 타 청암산 산책을 다녀왔다. 당연히 신발을 벗고 걸었다. 반대쪽에서 걸어오는 사람들 중에 맨발인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속으로 인사를 건넸다. 좋은 것을 걷고 계시네요, 조심히 다니세요.
그동안 걸었던 걸음이 아깝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새내기처럼 다시 걷기로 한다. 다시 기록하기로 하고 좋았던 것과 그렇지 못한 것들을 세심히 살펴보기로 한다. 질경이를 맨발로 밟고 걸었던 감촉을 여기 놓아둔다.
- 2024. 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