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는 아직 정확하게 엄마 생일이 언제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지난 8월 12일은 음력 7월 9일 아이들 엄마 생일이었다. 비단 산이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음력이 아이들 사이에서는 존재감이 거의 없다. 무의미하고 불편할 뿐 하등 역할을 맡지 못하고 더그아웃에 남아서 경기에 나간 선수들만 물끄러미 치켜보는 후보 선수 같은 인상이다. 내가라도 나서서 말을 꺼내서 망정이지, 눈 뜨고 지나치기 딱 좋은 코스다.
산이는 마침 집에 방문했던 '김 과장님'에게 용돈으로 받은 것을 그대로 엄마한테 건네면서 '립스틱'을 사라고 권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또 산이 용돈 보내는 날이다. 매주 월요일 6만 원이 산이 용돈이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취직도 어렵고 월급을 받더라도 집이며 자동차, 다른 것들을 규모 있게 설계하며 살아가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그런다. 대표적인 것이 아파트 가격인데 천정부지로 올라서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대충, 그냥 사는 풍토가 만연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이 변하니까 생태에 적응하던 조건이 바뀌고 바뀐 조건에 적응하려는 어떤 '포기'가 등장하는 듯하다. 지금은 '포기'가 적응의 한 형태로 자리를 차지하는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만성적인 포기는 사회 자체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 곳곳에서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이 말이야말로 21세기를 관통하는 슬로건이 될 것 같아서 아슬아슬하다.
강이는 타이밍을 놓쳤다. 그러니까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나름대로 '선물'을 마련했을 텐데 그럴 수 있는 준비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고 오빠처럼 돈만 턱 내놓는 것도 자기 스타일이 아니다. 그러다가 날짜가 하루 이틀 지났고 급기야는 지리산 둘레길을 다녀오고야 말았다. 아내가 미리 선수 치며 이렇게 말한 것이 그나마 분위기가 추락하는 것을 막은 듯하다.
"둘레길 같이 걸어주는 것으로 생일 선물 대신할게."
정말이지, 우리는 매번 가장 고생한 사람, 가장 힘들었던 사람으로 주저 없이 강이를 뽑는다. 걸을 때마다 아내가 강이를 챙기지만 그렇더라도 대단하다. 이번에도 그 뜨거운 햇살 아래를 씩씩하게 다 걸어줬다. 이만한 선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잘 걸었다. 기억에 남는 선물이 무엇이 있던가? 살면서 그런 선물 받았던 적이 몇 번 있었던가 떠올려 본다. 아내와 나는 가끔 끄덕이며 이야기할 때가 있다. 이런 것들, 산이와 강이가 같이 해주는 것들이야말로 선물이라며 공감한다. "글쎄, 그 조그만 것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싶어요." 그러면서 말이다.
우리가 처음 지리산 둘레길 3코스를 걷던 날, 그 지루하고도 겁나게 생긴 '등구재'를 터벅터벅 걸어 올라가면서 4학년 짜리 꼬마가 그랬다. 하늘이 무척 파랬을 것이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어버이날 선물이야."
사람이 살아가는 데 소중한 것들이 참 많다. 돈도 있어야지, 집도 있어야지, 건강해야지····· 그뿐이 아니다. 배움도 있어야 하고 종교도 있고 철학도 있어야 한다. 물론 마음은 또 뺄 수 없는 것이다. 역시 그중에 제일은 사랑인 것도 어쩔 수 없다. 아이들에게 선물을 받으면서 내가 느끼는 것은 그래서 고맙고 소중하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하는 산이와 강이에게 올여름을 보내면서 한 번 더 고맙다는 말,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