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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Aug 22. 2024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新 밥상머리 교육 42



"누구 닮아서 아침에 못 일어나는 거야?"

잘 찐 호박잎이 눈에 들어왔다. 오이냉국이 한동안 입맛을 돋우더니 호박잎이 등장했다. 두 가지 마음으로 호박잎에 쌈을 싸서 먹는다. 호박잎은 상추나 깻잎보다 밥을 정갈하고 예쁘게 싼다. 상추에 싸 먹을 때만큼 밥을 더 담지도 않는다. 알아서 적당히 그 위에 올려놓고 쌈을 바른다. 밖으로 새거나 흘리지 않게 조금만 얹어서 먹는 깻잎은 은근히 조심스럽다. 물론 고소한 향내야 깻잎을 따라올 것이 없지만 호박잎은 그 나름대로 볕이 머물던 맛이 난다. 무슨 맛으로 먹냐고 물으면 글쎄, 해줄 말이 있을까. 또 생각한다. 이만큼 정취가 묻어나는 먹거리도 드물겠다. 내가 이것을 먹는 마지막 세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옛날 사람들, 내가 본 적 있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같은 분들이 떠오른다. 흔한 것들, 우리 아이들은 입에도 대지 않는 호박잎이며 고추, 가지를 보면 툇마루에 상을 차리고 밥을 먹던 여름이 불쑥 곁으로 다가온다. 찬 하나에 먼바다로 배를 타고 나가는 내 귓가에 들리는 노래는 늘 먼저 그립다. 그게 누군지도 모르고 그리워하는 나는 영원히 실연당한 어떤 사람 같기도 해서 밥 먹을 때 음악을 튼다. 들키고 싶지 않은 것들은 그렇게 오래 간직한다. 그때는 어린 눈에도 사람들이 밥을 참 맛있게 먹었다. 외갓집 된장이며 고추장, 간장은 어떻게 먹어도 달았다. 배고픈 시절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맛있었을까. 달그락달그락 싹싹 다 긁어먹었다. 밥도 달고 찬도 달고 사람들 밥 먹는 것도 달았다.

주사위 크기로 들어간 두부를 하나 먼저 건져 먹었다. 후, 길게 한 번만 불고 입에 넣었다. 된장국에 들어간 호박은 이쪽 호박잎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을 것이다. 태어난 곳도 자란 곳도 다른 열매와 잎, 첼로 두 대의 활이 날렵하게 춤추는 입안이다. 선이 곱다. 천천히 삼키면서 여름이 가고 있다는 것을 문득 알아차린다. 고구마순으로 담근 김치도 오물오물 맛이 난다. 그제야 교복을 입고 나타난 아이들, 산이 님이시다.

급하게 토스트가 차려진다. 빵도 먹기 좋게 자르고 옥수수도 계란에 섞어서 얹고 집에서 만든 딸기잼을 발라서 후다닥 먹어치운다. 남은 두 조각을 해치우면 또 언제 볼지 모르는 아들이다. 어젯밤에도 다녀왔다는 인사만 겨우 주고받은 사이라서 어쩐지 조급증이 났다. 이제 한 번에 일어날 때도 되지 않았냐? 매번 아침에 늦어서 밥도 못 먹는데 엄마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그러고 싶었다. 그렇게 따질 뻔했다.

"길을 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뭘까?"

맞은편에 앉은 아이가 빵 조각을 손에 들고, '길을 잃지 않는 거?'라며 다시 물었다. 그래, 같은 말인데 '어디로 가는지' 그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을 꺼냈다. 지금 산이는 한창 공부에 바쁜 고등학교 2학년이다. 속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보이는 모습만큼은 바쁘고 정신없다. 아이가 등교하고 나면 아이 방에 들어가서 전원부터 다. 선풍기 콘센트를 뽑고 휴대폰 충전기를 제거하고 마시고 그대로 놓아둔 컵이며 접시, 비닐봉지 같은 것들을 치운다. 함부로 벗어놓은 옷가지는 그대로 둔다. 대신 젖은 수건은 가져다가 세탁기 위 빨래통에 넣는다. 이 방에 들어서면, 아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교과서며 교재들이 어질러져 있고 읽다만 책을 들여다보다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라치면 수북하게 먼지가 쌓인 다른 책들이 또 눈에 들어온다. 미루면 실컷 미뤄지고 마는 것들이 그 방에서 쑥쑥 자라는 것을 발견한다. 어디를 갈 것인가. 어디로 가기는 할 것인가 의심하다가 휴지통을 들고 나온다. 휴지를 다 비우고 싹싹 물로 씻는다. 거기 다시 쌓일 것들이 아이의 꿈이었던, 꿈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가 되어주기를 몰래 바란다.

"길을 잃지 않게 잘 찾아가려면 높은 데서 보는 게 제일 좋아."

그게 그냥 좋은 게 아니라, 정말 좋은 거라고 일러준다. 어디가 힘든 지점이고 어디가 비교적 쉽고 어디가 위험한지 알 수 있잖아. 그만큼 거기까지 알려주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너도 걸어봐서 알잖아. 마지막 토스트 조각을 먹고 아이도 서두른다. 나는 그렇게 길을 내려다본 적이 없다. 미안하지만 나는 헤매는 것의 힘을 안다. 그런데 산이에게는 덜 헤매라고 일러줬다. 솔직히 세상이 늘 두렵다. 두려워서 가끔은 나도 모른 척한다. 쉽게 가라고 가만히 있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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