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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Aug 23. 2024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

新 밥상머리 교육 43


연이틀 이렇게 밥 먹으면서 건넨 이야기를 쓰는 것은 처음이다. 지난 날짜를 들쳐보는 일은 재미있으면서 아련하고 미안하면서 고마운 마음이 들게 한다. 그것은 마치 몇 가지 감정을 한꺼번에 불러일으키는 어떤 사진과 같은 효과를 낸다. 아이들 일기를 차곡차곡 쌓아둔 데를 '곳간'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밥상머리'라는 목하로 이야기를 적었던 것이 2018년 7월 1일,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날 내게 불었던 바람을 설명할 수도 기억하지도 못하지만 희미하게 흥얼거리기라도 한다면 아마 이런 소리가 나지 않을까. Erev Shel Shoshanim, 우리 노래 '가시리'가 떠오르기도 하는 '에렙 쉘 쇼샤님' 이다. 먼 이국, 내가 알지도 못하는 나라들의 오래된 노래들은 바람같이 나를 통과한다. 그것은 때때로 바람직하게까지 느껴져서 벌판에 서서, 혹은 강가에서 세례를 받는 느낌을 준다. 네 차례, 나를 지나는 바람에게서 흙냄새를 맡는다. 바람은 늘 순서를 지키고 사람을 가르지 않고 시간에 늦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시인이 되고 어떤 사람은 발명가, 어떤 사람은 추락하고 어떤 사람은 날아오르는 일이 저 바람이 하는 일이라니, 아이들이 자라면 내 이야기를 과연 믿을까.

23년도에는 겨우 두 개 이야기를 적었던 것은 무슨 사연이었을까. 쓴 이야기와 쓰지 못한 이야기 사이에는 얼마나 깊은 바람의 계곡이 펼쳐져 있을까. 쓰지 못한 날들의 사연을 쓰다듬는 고요한 밤들이 내게 있을 것이다.

"요즘 너를 기쁘게 하는 것은 뭐냐?"

산이와 강이는 내 이런 비문화적이고 맥락 없는 질문에 익숙한 편이다. 그 아이들의 좋은 점은 나를 말하는 바위쯤으로 대할 줄 안다는 것이다.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고 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오르던 길을 마저 오른다. 거기 바위가 하나 있었던가? 소나무나 계곡물은 기억해도 바위는 금방 잊는다. 오늘은 콩나물이 알맞게 끓여졌고 무쳐졌다. 24년에 먹은 콩나물국 중에서 넘버 3 안에 드는 것 같다. 콩나물무침도 - 콩나물이 좋았던 것일까? - 씹히는 식감이 선명하면서 신선했다. 한때는 콩나물 팍팍 무쳤냐는 말만큼 사람을 웃기는 말이 없었는데···· 나는 그런 것들이 생각난다. 평화로울 때면 웃는 얼굴들이 떠오른다.

오늘도 여전히 서둘러야 하는 산이가 머뭇거렸다. 주저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더라. 꿈 속인지 현실인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들어서거나 나설 때 내 몸이 보내는 증상이 바로 주저라고 하더라. '爲之四顧 하며 爲之躊躇 하야 滿志 커든 善刀而藏之 하노이다. 사방을 돌아보며 머뭇거리다가 제정신이 돌아오면 칼을 닦아서 간직한다.' - 장자, <포절 해우(庖丁解牛)>

금방 떠오르는 것이 없는 물음인 것을 잘 안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라니, 나한테 묻더라도 그럴듯하게 말해 줄 것이 없다. 오늘 콩나물국이 맛있다는 말은 강이한테 써먹기로 하고 산이에게는 더 묻지 않았다. 이 책 재미있더라, 자리에서 일어나 어제 봤던 책을 건넸다. 밥 먹다 말고 격자무늬에 대각선을 그리고 네모 칸들 위쪽과 오른쪽에 숫자를 써가며 '이 책에 나오는 대로' 36×57을 풀었다. 고대 인도 베다 수학에서 다뤘던 '겔로시아 곱셈법'과 '선 긋기 계산법'을 보여줬다. 수학, 세계사를 만나다. 책 제목으로는 좋긴 한데 책이 다루는 내용들은 훨씬 알차고 흥미롭다. 100 페이지 정도 본 책을 아이에게 건넸다. 아무 데나 펼쳐 읽기에도 좋고 머리 복잡할 때 읽으면 재미도 있을 거야. 중학생 때 산이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전권을 읽은 전력(?)이 있다. 아마 나는 그 기억을 믿으면서 살아가지 않을까. 조금 아쉬워하면서 많이 기뻐하면서 그러면서.

산이는 먼저 출발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이 쾌감이 있을 것이다. 더워도 힘들어도 위험해도, 그런 것들이 사람을 즐겁게 한다.

똑같은 질문을 이번에는 강이에게 물었다. 오빠가 일어선 자리에 앉으면서 왜 사복 데이를 만들어서 사람 피곤하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푸념이다. 오늘은 교복이 아니라 자유롭게 편한 차림을 하고 학교에 가는 날이다. 오늘은 그러더라도 다음에는 또 그렇지 않을 것을 안다. 다음에 그러더라도 그다음에는 달라질 것을 안다. 그래서 다른 말 않고 콩나물국을 후루룩 마셨다.

"글쎄, 있는 것 같으면서 없는 것 같고, 없는 것 같으면서 또 있는 거 같고···· 잘 모르겠어."

그게 학교 다니는 아이들 모습인 것을 잘 안다. 아이들만 그런 것도 아니다. 회사에 나가서 일하고 돈을 버는 어른들도 같은 무리에 든다. 경로당에 찾아가 물어보면 어떤 특별한 대답이 있을까.

강이야, 기쁜 것은 감정이면서 감각이야. 우리가 배고프다고 느끼는 것은 감각이지? 그때 우리는 먹잖아. 무엇인가를 먹으면 더 이상 배고프지 않고 평범해지잖아. 그렇지? 기쁘다는 감정은 다른 감정들에 비해 더 적극적인 감정 같아. 그것은 채워지고 충족될 것을 요구하는 감정이야. 무슨 말이냐 하면, 문을 열고 있어야 바람이 들어오는 것처럼 우리가 한 발 가까이 다가가 있을 필요가 있는 상대라고 할까. 문을 닫고 있으면 왔는지도 모르고 지나가 버리고 마는 바람 같아. 바람도 여러 종류가 있지. 엊그제 분 태풍 말고 너, 봄바람 알지, 미풍이라고 하는 말 알지? 그런 바람이 집 밖에서 불고 있으면 보이지도 않고 느끼지도 못하고 그러잖아. 그것이 바로, 있는 것 같으면서 없는 것 같고 없으면서 있는 거 같은 상태 아닐까?

다시 콩나물국을 후루루 마시면서, 오늘 콩나물국이 썩 잘 됐거든. 그런데 너는 빵을 먹느라고 그것을 모르지? 나는 알잖아. 왜냐하면 문을 열어놨거든. 바람이 이쪽으로 불어오면 잘 맞으려고 활짝 열어놓은 거야. 왜 웃지?

"아빠, 눈이 커졌어"

그래,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눈이 커졌다는데 웃지, 더 무엇을 할 것이 있나. 아침은 그렇게 지나갔다. 지나가는 것들은 흔적을 남긴다. 나는 그 흔적들을 깨끗이 치운다. 설거지가 잘 되는 날은 뽀드득, 뽀드득 모든 공간에서 그 소리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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