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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Aug 29. 2024

新 밥상머리 교육 44

Q는 이렇게


모처럼 듣는 조용필 노래가 좋다. 어디서나 어른들이 있는 데는 조용필 노래가 나왔었다. 이발소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면서도 들었고 어쩌다 완산칠봉에라도 놀러 가면 거기 매점에서도 한가롭게 조용필이 나왔다. 애절하다는 말도 구슬프다는 말도 모르면서 그 정서를 따라서 불렀다. 하늘 천 그러면 하늘 천, 따 지 그러면 따 지, 그러면서 내 인생도 저렇게 흘러갈 줄 모르고 배웠던 말들이다. 어디 골목마다에서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될 노래들, 소주 같은 인생에 기꺼이 안주가 되어주었던 노랫말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 같은 말들.

엊그제는 베토벤 월광을 아느냐고 물었고 그제는 로마의 휴일에 나왔다며 Moon River를, 어제는 마이클 잭슨의 You are not alone이었다. 산이는 '바운스'를 부르는 사람이냐고 묻는다. 목소리가 비슷하냐?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그런다. 어? 이게? 피아노를 칠 줄 알아서 그런 연결이 가능한 건가···· Q, 조용필 11집에 나오는 - 너는 나의 인생을 쥐고 있다 놓아 버렸다. 그대를 이제는 내가 보낸다. - 그 노래다.

'기도하는~'

꺄악 그러는 것이 보인다. 그 시절을 우리가 살았고 산이의 시절은 어떤 노래가 함께할까. 때로는 사람 없는 곳에서 노래가 나와 동행하고 있더라는 말은 감췄다. 술이 취하면 바람이 전하는 말을 불렀고 술이 깨면 바람의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날이 서늘해지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아침 식탁에 바람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호박을 얇게 채로 썰고 새우젓으로만 맛을 낸 국이 먹기 좋게 식었다. 임자도에 가면 아직도 제일 맛있는 새우젓을 맛볼 수 있을까. 나는 어디든 멀리 가기로 한다. 이왕 나선 것을 일부러 더 오래 돌기로 한다. 그게 내 여행이다. 꽃다발을 건네는 것처럼 모르는 곳, 처음 가본 곳에 도착한다. 너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미리 알고 정하신 하느님*을 위해서 꽃.

"대학을 잘 다니는 사람들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어떤 사람들이 대학을 잘 다닐까?"

저도 호박 국이 마음에 들었던지 연거푸 두 수저를 뜨고 무엇을 집을까 다음을 망설이는 아이다. 맛을 구분하는 감각이 좋은 편이다. 그렇게 좋아하던 단맛이 요즘은 안 먹힌다고 푸념이다. 저도 컸구나. 할머니 김치가 먹고 싶다고 그러고 때때로 그때 부안에서 먹었던 간장 게장이 먹고 싶다거나 지리산에서 먹었던 달래 간장, 정선 비빔장 같은 것들을 말해서 엄마를 긴장시키는 아들이다.

"이것은 만능키 같아."

너희는 치트키 Cheat key라고 하는 것처럼 다 통용되는 거 같다며 잠시 수저를 놓고 말을 이었다. 하루 중에서 산이를 보면서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 5분뿐이다.

"고등학교를 잘 다니는 사람, 대학을 잘 다니는 사람, 삶을 잘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것을 가지고 있어."

고통의 자물쇠에 갇혀 버리던 날 그날은 나도 술잔도 함께 울었다. 사랑 눈 감으면 모르리, 사랑 돌아서면 잊으리. 노래가 산이와 나를 얼싸안고 어서 가자고 재촉하는 듯이 빠르게 움직인다.

"그 너머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즐거워, 즐거우니까 지금을 잘 지내는 힘이 생기는 거야. 많은 대학들이 있는데 그중에 어디를 갈 것인지, 어디에 가고 싶은지 꿈꾸는 사람은 고등학교 생활이 지겹기만 하지는 않겠지. 대학 그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도 그렇고 인생도 그래, 여기가 전부인 사람은 여기가 다야. 여기까지만 보여. 다음이 없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절벽이거든. 감옥에서도 누군가는 절망하고 누군가는 희망하잖아. 누가 더 잘 살겠냐, 감옥에서도 더 감옥으로 굴을 파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또 전혀 다르게 사는 사람이 있는 거잖아."

"그래서 지금 따로 미래 따로 그런 것이 아니라, 유기적이란 거야. 현재가 미래고 미래가 바로 지금, 여기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지. 지금을 잘 사는 것이 미래를 잘 사는 유일한 방법이 된다는 말이 바로 그 뜻이야."

"어, 그러네. 맞네!"

하고 싶은 말을 많이 남겨두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남길 것은 남겨도 좋은데 말까지 그럴 것 없다고 생각한다. 시간 없었다는 말처럼 다음 말이 막히는 말도 없다. 5분, 그것으로 충분했다. 오늘 섭취해야 할 비타민은 빈혈에 도움이 될 것이다. 가을이 성큼, 웃는다.

사랑, 내 오늘은 울지만 다시는 울지 않겠다. 노래도 가을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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