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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품은 漢字 1

內外

by 강물처럼


"100만 원 내외로 2박 3일 다녀올 수 있어!"

"정말?"

알아듣는 데 문제가 없다. 내외內外라는 말이 쓰였지만 소통에 별문제가 없다. 표준 국어 대사전에 나오는 설명 그대로 옮기면 (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여) 약간 덜하거나 넘는 상태다. 흔히 논술 시험은 원고지 몇 자 내외로 서술하시오라며 출제된다. 바로 그 내외다. 남짓이나 안팎, 정도 같은 말로 바꿔 쓸 수 있다. 날이 밝으면 아이들에게 한번 물어봐야겠다. 혹시 ' 남짓'이란 말 아느냐고? 하긴 나조차도 ' 남짓'이란 말을 언제 써봤던가 싶다. 남짓은 한자로 나타내면 여餘다. 순여旬餘와 장여丈餘 같은 말에 흔적이 남아있다. 순여는 열흘 남짓한 기간이며 장여는 한 길이 넘는 길이를 말한다. 흔히 한 길 사람 속도 모른다고 그러는데 사실 한 길은 열 척이나 된다. 한 척은 한 자, 33.3cm니까 한 길 즉 한 장은 3.33m나 된다. 가끔 공상에 빠져 내 시간을 자로 재어보는 일이 있다. 몇 자나 될까, 키 높이가 궁금한 것처럼 시간의 길이를 눈으로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시간을 거리로 바꿔 놓으면 어쩐지 지금보다 더 잘 걸어갈 것만 같다.

순旬과 장丈, 점점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쓸쓸함이 감돈다. 그만큼이나 적적한 분위기가 내외에 있고 내외를 한 글자로 더 고적하게 부르는 것이 여餘다. 이 글자는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친구인데 밥食과 내가 余 하나로 붙어 있다. 그 사이에서 '남다'가 생겨났다. 남으니까 넉넉하고, 그래서 오래가고 또 오래가다 보니까 후예나 후손으로까지 그 뜻이 번져간다. 자기를 나타내는 한자어도 여럿이지만 그중에서도 여余는 운치가 있다. 운치韻致는 소리가 공간을 채우는 순간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어떤 소리는 사람의 말이 헤아리기 어려운 지점에서 속삭이며 다가와 사람과 주변과 공기에 변화를 준다. 좋고 나쁜 것이 없이 달빛처럼 존재의 존재를 밝게 비추고 바람처럼 흔든다. 그 소리가 다 나누고도 남은 것이 여운餘韻이다. 채 가시지 않은 기운을 타고 그리움이 흐른다. 사람이 앉았던 자리를 눈으로도 손으로도 자꾸 만진다. 만남도 헤어짐도 모두 남은 것들이 만든 물결 같은 것, 새가 날아간 나뭇가지는 새의 무게를 기억하고 그것이 기도가 된다. 남은 자리를 견디는 것이 바로 여운이다. 내가 있고 밥도 있다. 그러고도, 나를 가리키며 여餘는 묻는다. 너는 여운인가.

일요일에도 아버지는 일찍 일어나/ 검푸른 추위 속에서 옷을 입고/ 한 주 내내 모진 날씨에 일하느라 쑤시고/ 갈라진 손으로 불을 피웠다/ 아무도 고맙다고 말하지 않는데도/ - 로버트 헤이든, 그 겨울의 일요일들 中.

내 남은 것으로 한 번쯤 모닥불을 피우고 긴 밤을 홀로 마주하는 꿈을 꾼다. 멀리 돌아다닐 줄은 알았으면서 정작 마당에 불을 밝히고 내 하늘을 올려다본 일이 없다는 것이 쓸쓸하다. 내 머리 위에 떠있는 별은 이름이라도 있을까. 나는 오래전에 그리고 지금까지 '내외하는' 한 사람을 그 밤 내내 그릴 것이다. 항아리에 물을 떠다 놓고 돌 위에 그릴 것이다. 불, 물, 밤공기, 새벽 별, 그리고 말 없는 소리들이 미사곡이 될 것이다. 내 등에 업혔던 아버지는 아무 힘이 없었다. 아무 힘이 없는 사람이 더 많이 무겁다. 그날 밤, 아버지는 하나의 무게가 되어 내게 남았고 아버지는 다시 못 올 길을 떠나셨다. 아버지라는 말을 어디에선가 보면 돌아섰고 그 페이지는 건너뛰었으며 혹시라도 미안하거나 뭉클해지는 영상을 보면 숨을 참는 것이 도움이 됐다. 어떤 영상에서는 딸이 울면서 소리친다. '먹어야 살지, 아빠!'

무풍지대를 건너는 배처럼 조용히 노를 젓는다. 사막을 지나는 낙타처럼 해가 지는 것을 매일 바라본다. 아버지보다 더 나이 든 내가 되니까 아버지가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버지한테 친근하게 군 적이 없다. 아버지~, 그래 본 적이 없다. 무엇이 그토록 엷으면서 두꺼웠던가. 두꺼웠어야 할 것은 엷었고 엷었어야 할 것은 두꺼웠다. 어떤 음악이면 아버지가 들을 수 있을까. 이십 대 내내 아버지 주머니에서 나왔던 담배를 간직했었다. 담배를 잘 피우지 않던 아버지가 어쩌다 한 번씩 가게 밖을 내다보시며 피우셨던 그 초록색 포장의 긴 담배, 라일락을 보면서 쉰 살은 어떤 나이일까 상상하곤 했었다. 힘들 때도 아버지는 생각나지 않았고 행복하다고 느낄 때도 아버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심한 내외를 했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죄송하다는 말로 대신 채웠다. 누가 나한테 늘 죄송하다고 그러면 나는 그가 질색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더 말하기 싫으니까, 더 말할 것이 없으니까 서둘러 끝을 맺는 것이다. 그저 잘못했다고 그러는 것이다. 좋은 것은 하나도 말하지 못하고·····

내외하다 - 남녀 사이에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고 피하다.

아버지와 나는 남녀 사이도 아니었는데 피했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나 혼자서 그랬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자리에 누웠는데 문득 그 말이 생각났다. 이런 것도 내외했다고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렵지만 싫지는 않은 것을 그렇게 불러주면 고마울 것 같았다. 편한 것은 아니더라도 싫지는 않았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겉은 썰렁하게 굴어도 속마음은 내내 거기 있었으면 하는 사이, 영 싫은 것은 아니라고 솜씨 좋게 말할 수 없을 때를 '내외한다'라고 바꿔 말하면 좋을 거 같았다. 내외는 안과 밖이다. 안주인과 바깥양반이라는 말도 오랜만이다. 안팎, 나는 비로소 내 안과 밖을 두루 바라볼 줄 아는 나이가 됐다. 아내와 남편만 안팎이 아니라 나 하나를 두고도 안팎이 서로 맞대고 있다. 나는 나하고 어떤 사이인가. 그 둘은 내외하고 있는가.

크게 둥글게 빙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면서 놀던 시절이 있었다. 잔디밭을 좋아하던 시절, 여학생 한 명이 수줍은 얼굴을 하고 사람들 뒤로 달린다. 누군가는 괜히 설레기 시작한다.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지만 마음은 저 달음박질하는 소리를 쫓고 이쪽으로 달려오는 저 손, 거기 들려 있는 손수건에 빠져있다. 손수건 한 장이 뭐라고. 혹시라도 그것을 내 등 뒤에 떨어뜨릴까 싶어 온몸의 신경이 뒤를 살핀다. 어쩌면 그렇게 빨리 알 수 있을까. 후다닥 일어서서 같이 달린다. 내외하던 마음이 풀밭 위를 질주한다. 표정이 한껏 푸르렀던 날, 바람도 싱그러웠다. 나에게 내외한다는 말은 그런 서정抒情이다.

아버지가 앉아 있으면 거기 수건을 떨구고 힘껏 달릴 것이다. 동그라미를 한 바퀴 다 돌아서 아버지가 앉았던 자리에 폴딱 앉을 것이다. 거기 앉아서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를 것이다. 아버지가 달리는 것을 한 번은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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