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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농담 하나

지금이 묻는다

by 강물처럼


내가 본 아이는 명석했다. 그러나 표정은 없고 사람의 시선을 피했다. 그 정도가 심해서 마주 앉은 사람이 무안할 정도였다. 흔히 두 사람이 마주 앉은 테이블은 두 장면으로 떠오른다. 풍부한 성량으로 높고 낮은 음역을 날개처럼 펼치는 음성으로 오페라의 유령처럼 속삭이다가, 속삭이다가 어떤 노래도 따라 부를 것 같은 시선으로 맞은편을 바라보는 테이블이 있다면 침묵이 남긴 부스러기로 어지러운, 그만 일어서지 못하고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는 두 사람. 더 이상 빛이 나지 않는 서로의 눈동자를 확인하는 테이블이 있다.

어제 늦은 시간에 잠깐 괜찮냐고 연락이 왔다. 근 한 달을 만나지 못하고 있었던 터라 무턱대고 반가웠던 것이 현장을 목격하는 사람처럼 바로 진지해졌다. 아이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거 같네요····

성적이 좋아서 학교를 골라서 보냈는데 패착이었던 것인가.

모처럼 함라산에 올랐다. 다른 때 같으면 혼자만 재미 보느라 산에도 안 가고! 그러면서 뒷말을 끌어냈을 인사가 얼굴이 핼쑥해졌다며 간단하게 끝났다. 사실 나는 반대했던 사람이었다. 취업이 힘든 시기에 그렇게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삶을 평탄하게 살아가는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가능성은 어떡할 거냐고 물었었다. 아이가 지금은 몰라서 어떤 것도 선택하지 못하지만 나중에라도 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면 그때 어떤 말로 아이에게 지금을 설명해 줄 거냐고····.

신학기, 신학년이다. 누군가는 선택을 했고 누군가는 선택을 따랐다. 대부분의 경우는 정해진 자리로 옮긴다. 그렇게 정리가 된다. 일단락이 지어진다. 그리고 다음을 산다. 그런데 다음을 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새로 옮긴 자리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웅크린 채 떨고 있는 나무가 있다.

3월 공기는 이중적이다. 나한테는 그 느낌이다. 추위도 물러가고 꽃망울도 맺기 시작하는데, 나는 이상하게 3월에 아프다. 여자들이 아기를 낳은 무렵이 돌아오면 한 번씩 앓는 것처럼 나한테는 지금이 그때다. 나는 무엇을 낳았던 것일까.

아이를 데리고 와야겠어요. 이러다가 더 큰일이 되기 전에····. 함라산 정상은 높지 않지만 멀리 보인다. 동쪽으로 미륵산이 운무에 싸여 마치 섬 하나가 우뚝 솟은 듯했다. 그가 덧붙였다. 욕심낼 때가 아닌 거 같아요. 그것이 용기인 것을 안다. 뜨거운 것만 용기가 아니다. 아비의 눈이 나를 쳐다봤다. 그래요, 지금은 아빠가 아빠여야 할 거 같아요. 내 말도 간결하고 짧았다.

그가 좋아하는 쌈밥집에 들어섰다. 우리가 첫 손님이다. 열다섯 개의 테이블이 모두 하얗게 비어있었다. 제일 구석에 늘 앉던 자리로 가서 거기에 앉는 그를 보며 웃었다. 이 넓은 데, 다 놔두고 여기를 앉네요. 어쩔 수 없다고 그가 웃었다. 이런 것을 성격이라고 할까요, 정해진 운명이라고 할까요? 그는 내가 무슨 백화점인 줄 안다. 오늘은 내가 그에게 내줄 것이 없어서 계속 미안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다음에 태어나도 수연이 엄마 만나겠네요! 수연이*도 만나고····"

고등어조림이 맛이 좋다며 그가 권한다. 나도 더 먹으라고 밥을 크게 한 수저 떠서 건넸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처럼 굴었다. 아니 부자여서 그럴 수 있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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