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받고 견뎌야 했던 그 1주일은 태양빛 아래 내리는 눈송이 같았다. 크지도 무겁지도 않게 땅으로 내리던 사뿐한 하나하나가 자꾸 쏟아지는 하늘이 창가에 빛났다. 진하다는 말이 가진 품위를 떠올렸다. 커피가 진하고 혈육 간의 정이 진하고, 그 밖에 진한 것들을 상상했다. 92년 겨울도 진하게 추웠다는 기억과 2000년 겨울은 다시 견디지 못할 것 같다는 말도 그 창가에서 했던 말이다. 내 진한 것들은 추위와 함께였구나.
가을 산길을 다니다 산국화가 보이면 추웠던 시절로 흘러들어가는 그를 본다. 거기에 찾아가 이 향기 하나 놓아주려고 애쓰는 그림자가 오래 서 있는 것을 가만히 지킨다. 그때에도 눈이 내릴 것이다. 가깝고도 먼 하늘에서 눈은 그렇게 다가온다. 진한 것들이 그리워지는 날이 있다.
지난 1주일은 무엇인가 결핍된 시간이었으며 공간이었다. 수술을 받은 것도 아닌데 문득 허전했고 문득 진한 것들이 떠올랐다. 눈도 내렸다.
하필 진공청소기 수리를 맡겨놓고 거기 널따란 홀에 있는 커다란 TV로 대통령이 나왔다. 귀에도 초점이 있어서 TV에서 나오는 말에 주파수를 맞추려 했지만 어딘가에서 벌써 흥을 잃어버린 내 감각은 눈으로 보이는 대통령마저 계속 놓치고 있었다.
당신은 억울하구나, 우리는 안타까운데····.
그게 없어서 진한 것을 모르고 살아온 사람으로 보였다. 묽고 묽고 묽었더라면 차라리 물이라도 되었을 것을 얼마나 아쉬울까. 마시지 못하는 물은 어디로 흐를 줄도 모르고 엉켜 붙는다. 고여서 금방 냄새가 날 것이다.
나라 전체가 민주주의를 진하게 체험하는 1주일이었다. 학교에서, 삶의 현장에서 배운 그것을 우리는 이따금 이렇게 경험하고 있다. 촛불을 들고 노래를 부르며 광장에 모여 큰소리로 외치는 이 페이지를 우리는 사랑한다. 진하게 써 내려가는 문장을 우리는 '우리'라고 부르며 자랑스러워한다.
우리는 예쁘게 냉정해져서 옳게 지금, 여기를 살피기로 한다. 관심도 있고 애정도 있어야 비로소 냉정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깃발 아래 모아두기로 하자. 우리는 우리에게 무관심하지 않으니까, 우리는 우리나라를 '우리'라고 느끼니까 당신의 욕망을 우리가 극복하겠다고 다짐하고 약속한다.
분하고 억울한가.
집단 지성으로, 우리를 지혜롭고 정의로운 곳으로 이끌고 나아가는 저 거대한 물살을 두려워하는 그대는 어느 나라의 시민인가.
오늘은 1주일이 되는 날이며 새로운 1주일이 되는 날이다. 수술했던 상처도 아물기 시작하는 그 시간이다. 회복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