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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해서

꽃은 지면서 다음 봄에

by 강물처럼



"아빠, 오늘 좀 추울까?"


비가 그치자마자 매미가 울어댄다. 지난 며칠간 계속 비가 내렸다. 한창 기세 좋게 세상을 달구던 더위도 그 참에 한풀 꺾였다. 에어컨도 쉬어간다. 산이가 오늘 아침에도 날씨가 어떨 거 같냐고 물었다. 옷을 입어야겠는데 어떻게 입을까 묻는 것이다. 여름인데 그렇게 묻는 것은 좀 이상하잖아? 어제처럼 덥지 않겠냐고 물었어야지. 안 더울 거 같아, 일부러 끝에 힘을 주어 말했다. 산이의 말 끝은 흐렸다. 알았어. 반팔이 추울까 봐서······.


아이에게 정확한 말을 해준 것 같은데 먹던 밥이 밍밍했다. 열아홉 살, 저 아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한테 이런 식으로 듣고 자랐구나. 느닷없이 스치는 생각에 입안에서 밥알이 따로 놀았다.


어제도 그랬다. 잠자리에 들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앱이 꽤 도움이 된다. 하루 쉬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꾸준히 응원하며 나를 노크하는 그 부름이 싫지 않고 좋아서 앱을 켜고 문장을 따라 읽고는 한다. 거기도 사람 사는 세상 같아서 서로 파이팅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말하는 팔로워가 있다. 케이 상은 영어를 공부하는 일본 사람이다. 그의 영어는 수준급이다. 중국어를 공부해 보고 싶은데 이것저것이 어려워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말에 내가 댓글로 달아놓은 말이 하필 그 순간 떠올랐다. 그리고 화끈거렸다. 다시 앱을 켜고 내가 했던 말들을 확인했다.

'어렵지 않은 일이 세상에 있나. 어려우니까 그 나름대로 보람도 있는 것이지. 아무쪼록 즐기세요.'

이렇게 확인할 수 있어서 좋구나. 내가 어떤 식으로 말을 하고 사는지. '꼰대'가 보였다. 겨우 그 아래에 '농담'이라고 써놓고서야 잠에 들었다.


산이가 신발을 신고 막 현관문을 나설 때 더 망설이지 않고 서둘렀다. 사람마다 다르니까 '추울 수도 있겠다.' 내 말이 아니라, 아이의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잠깐 이것 좀 봐달라는 말을 어쩌면 이렇게 변함없이 잘 못 알아들었지? 작은 파문이 물 전체로 퍼진다. 파문은 그래서 멋스럽다. 아무리 작은 동작이어도 한 번은 온통 흔든다.


히가시 나카노 지하철역 출구 앞이었다. 벚꽃이 떨어지고 있고 자전거 보관소에 자전거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나에게 '온통' 잘해주기만 하던 동경 여자 미술대생이 역무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일본 여자들은 얼굴을 붉히면서 후다닥 뒷걸음치며 사라질 것을 저 한국 유학생은 따지고 있다. 세 발짝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내가 나섰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너도 그만'. 그 장면은 마치 딸아이를 타이르는 아빠였다. 토요일 오후 점심을 먹으려던 계획이 우울해졌다. 그날도, 그때, 그 이후도 나는 어떤 말을 못 알아듣는다. 가끔 드라마에서 똑같은 대사를 마주치면서도 여전히 알아듣지 못했다. '내 편을 들어줬어야지.' 그 말을 알아듣고 싶어졌다. 어디 그런 앱이 있다면 나한테 꼭 깔아주고 싶다.


한두 번도 아니고 수없이, 어쩌면 매일 그러고 살았을 것이다. 내게 남은 사람들의 말이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을 보면·····. 벚꽃은 지면서 다음 봄에 찾아올 것을 속삭이는데 한 번 떠난 사람들은 다시 피어나지 않는다. 히가시 나카노 역에 다시 내리더라도 사람은 없고 거기서 들었던 그 말이 따라올 것이다. 편을 들어준다는 말은 그 사람을 껴안는다는 말 아니었을까.


말이 없는 사람을 무뚝뚝하다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내가 했던 말이야말로 무뚝뚝함이었다. 사람의 말을 듣고 있으면 그 사람이 네모 반듯한 종이처럼 반으로 접히고 또 접히면서 비행기도 되고 배도 되고 학이 된다. 소원도 들어주는 그것을 매번 놓치고 말았구나. 나도 그렇게 움츠러들고 말을 못 했었는데 내가 그러고 있다. 아무것도 접지 못하게 무뚝뚝하게 대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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