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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식는다

따뜻하게 한 잔 더 드세요

by 강물처럼


어제 남긴 '댓글'에서 빼야 할 단어는 없었던가, 어딘가를 잘못 건드린 것은 아닌가도 생각한다. 그 사이에 우리 집 대장이라고 어머니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던 아버지, 그 아버지를 애도하는 딸의 사연이 빛처럼 흐르고······ 나도 물을 끓이고 빛을 낸다. 여기 있다고 신호한다.


'허나 내가 오른 것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얼마든지 잔잔하다. 바다를 생각하라는 그의 음성이 이끄는 대로 나를 미끄러뜨린다. 이탈리아의 지중해가 김민기의 동해를 토닥거리며 아침이 불어온다. 바람처럼 아침이 밝다. 몇 줄 쓰지도 못하고 새날이다. 또 하나의 날이다. 그러면서도 같은 날인 것이 고맙다. 희망적인 것으로 주위를 감싼다. 가을 같았고 봄날 같았던 새벽이 지나 여름과 닿아있다. 오늘은 어쩌면 눈이 내릴지도 모른다. 음악은 못하는 것이 없으니까. 죽은 사람, 산 사람을 가리지도 않고 이어주니까, 어떤 소리는 사라지지 않는 빛이니까.


새들과 함께 하늘에는 시가 날고 소설은 바다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길 위의 풍경은 수필이 담아낸다. 시를 쓰는 사람은 하늘 가까이 귀를 기울이며 소설 쓰는 사람들은 바다를 동경한다. 길이 길을 낳는 곳에 산파産婆의 손을 가진 수필이 산다. 또 수필은 푯말로 서서 길을 가리킨다. 수필은 손을 걷어붙이고 무슨 일이든 거든다. 구정물에 담갔던 손으로도 쓰고 밥을 짓던 손으로도 쓴다. 시는 쓰지 못하고 소설은 엄두도 못 낸다면서 억척스럽게 사람을 돕는다. 백 개 넘게도 쓰고 십 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늘 길에서 마주친다. 수필은 아주머니, 할머니, 아니면 수녀님 아니면 공양간 보살일지도 모른다. 플래시가 아무리 편하고 좋아도 촛불 켜는 곳에는 촛불이 타오르고 있어야 한다. 희미한 경계를 건너 언제 물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물들이고 향기만 남긴 채 저만치 가는 뒷모습이 종교적이다. 신앙은 그렇게 저물녘과 동틀 녘을 닮아야 한다. 그저 바람결에 묻어오는 손길이기를 바란다. 음악은 그 손길이 하염없이 쓰다듬는 바위, 비가 부르고 바람이 연주하는 노래는 숨결이다. 사람의 언어가 그 숨결을 고르고 사람의 시선이 거기 머문다. 시간도 공간도 고양이도 종교도 모두 악보처럼 흐른다. 사랑이 대담하게, 한 획을 이룬다.


물이 끓었다. 거기 찬물을 섞는다. 뜨거운 물을 그대로 식히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것에 찬 것을 붓고 기다린다. 하나만 있던 세상에 다른 하나가 불쑥 생겨난 것이다. 한 공간에서 낯선 둘이 머뭇거리다가 물러섰다가 어느 순간 덤벼든다. 엉키고 설킨다. 힘을 겨루는 것 같고 그러면서도 힘껏 품에 안는다. 음이며 양이었던 찬물과 뜨거운 물로 제각각 있을 때보다 훨씬 부드럽고 단단한 물이 된다. 같은 물이지만 다른 물이다. 물은 온화하고도 단호하다. 연하기가 풀잎 같지만 그 속에 철을 동강 내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물은 다스려지지 않는다. 흔하면서도 귀한 것도 바로 물이다. 만물의 배경이 되어주는 물을 시간과 함께 마신다. 시간도 물도 내 안에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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