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믿음이 간다
날짜가 맞지 않았다. 길을 동행하는 사람들은 그 길을 가는 동안 서로의 운명이 같은 시간에 머무는 것이다. 같은 곳을 다녔다고 해도 시간이 달라서는 15세기 조선과 21세기 한국만큼 차이가 날 수도 있다. 또한 같은 시간대에 머물렀어도 나는 여기 그대는 저기였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알지 못할 뿐이다. 인류애 같은 말로 그대를 내 기도 안에 뭉뚱그릴 수는 있어도 그대를 사랑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선 아내는 12월 31일에도 근무를 해야 했고 1월 2일에도 사무실에 있어야 했다. 어쩌면 나는 그 틈을 이용했는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다'는 말 뒤에 슬쩍 몸을 숨겼다. 지리산 둘레길을 다녀온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 주변 사람들에게도 다 알렸는데, 걸어서 얼마나 행복한가! 외쳤는데 아내도 달리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조심하라는 말과 혼자서 다니지 말라는 말은 같은 말인데 그 말마저 나눠서 몇 번이나 반복했다. 군산 공항에 나를 내려주고 돌아가는 아내를 오랫동안 바라봤다. 헤어짐은 아무리 거듭해도 쓸쓸한 뒷맛을 남긴다. 장난감처럼 잠깐 못 보고 지내는 것마저도 남은 사람과 떠난 사람이 만들어 내는 무늬는 스모키가 불렀던 노래를 닮았다. 이제는 옆집에 살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부르는 그 노래, Living next door to Alice 말이다. 알다시피 그 노래는 마지막 가사가 이렇게 끝난다.
No, I'll never get used to not living next doork to Alice. 아니, 난 엘리스가 옆집에 살지 않는 것에 결코 익숙해지지 못할 거야.
아내는 올레길도 걷고 싶어 한다. 작년 한 해는 많은 성과가 있었다. 설악산 공룡능선을 완주하는 것을 보고 나도 놀랐다. 걷지 않던 사람이 걷기 시작했고,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 나서는 부쩍 자신이 생긴 모습이다. 그 자신감으로 지리산이며 설악산을 다닌다. 즐거움을 알게 됐다는 말이 가장 듣기 좋았다. 그리고 그 말이 가장 믿음이 간다.
2026년 1월 1일 제주 하늘은 흐렸다. 언제든지 비나 눈이 내릴 기세였다. 점점 바람이 세어지고 있었다. 날씨가 좋았다면 새해 일출을 보러 새벽부터 움직였을 것이다. 1년에 한 번 마음이 몸을 닦달하지 않고도 꼭두새벽에 벌떡 일어나 산에 오르는 날 아닌가. 서두르지 않고 숙소 근처 식당에서 아침도 챙겨 먹고 택시를 불러 영실 주차장으로 향했다. 낯선 곳에 오면 잠을 설치는 편인데 그새 제주도가 편해졌는지 간밤에 푹 자고 일어났다. 생각보다 몸이 가벼웠다. 산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
혼자 가는 제주행이 정해지자마자 한라산을 검색했다. 한라산과 겨울, 두 단어는 어쩐지 어울린다. 한라산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그러면 따로 할 말도 없지만 한라산을 꼭 한 번 봐야 한다면 주저 없이 겨울을 꼽을 것이다. 한라산은 은세계, 그것이 내가 동경하는 한라산의 모습이다. 지금이 그 기회다. 늘 멀리서만 바라보던 산이다. 언젠가 오를 거라던 그때가 비로소 찾아온 것이다. 12월 31일에 나는 꿈을 꿨는지 모른다. 세상 곳곳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내 꿈속에서도 울렸을 것이다. 그 꿈을 꾸고 싶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영실(靈室) 해발 1280m라고 정갈하게 새겨진 입석에 손을 얹었다. 돌에도 검버섯이 피었다. 한 획 한 획을 눈으로 따라가며 나도 반듯하게 써봤다. 많이 늦었습니다. 처음 인사드립니다. 드디어 한라산에 오른다는 벅찬 기분이 저절로 차분해졌다. 신령스러운 것이 틀림없구나. 그 집에 들어섰다. 백석의 아름다운 시가 입가에서 맴돌았다. 아직 꿈인 듯, 여기를 오르는 내내 나는 읊조린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눈앞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꿈이다.
오후 4시부터는 눈 예보가 있다며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이 일대는 금방 눈이 쌓여서 차들이 못 다닌다고 했을 때 나는 그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싶었다. 나를 배신하고 싶었다. 계단이 한참 이어지는 영실 코스를 멈추지 않고 올랐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산에 오면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병원에 아픈 사람들이 붐비고 카지노에는 도박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추운데 거기까지 왜 가냐고 말리던 반장님한테 벌써 일출을 보고 내려가는 사람들의 행렬을 찍어 보내주고 싶었다. 사람들이 오르고 내리며 서로 스쳤다. 양쪽 모두 표정이 좋다. 흡족한 얼굴들이 떠들면서 내려가는 것을 설레는 얼굴로 바라봤다. 어느새 한라산의 만물상(萬物相) 오백 나한을 지나 정면에 병풍바위가 늘어서 있다. 아래쪽으로는 툭 터진 제주가 보인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17시간 만에 쉬어보는 숨이다. 힘들면 뒤를 돌아보면 된다. 이러려고 ··· 여기에 왔다. 하늘로 걷는 길이었다. 백록담의 서쪽이 보이기 시작했다. 앞을 보면서 걷는 것도 더 이상 힘들지 않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주는 형상이 펼쳐지는 곳이다. 양쪽에 빼곡한 조릿대를 보면서 철쭉이 피는 계절을 상상했다.
점을 보러 가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가 물었다. 너는 불안하지 않냐고. 불안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웃었다. 너는 뭘 믿고 그렇게 아무 데나 잘 다니냐며, 그러다가 객사라도 하면 어떡하냐는 친구에게 그랬다. 나는 객사했다는 말이 틀렸거나 맞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왜? 집 나가서 죽으면 다 객사 아니냐는 말에 꽃을 달아주고 싶었다. 거기야, 과연 집이 어디 있는지 거기가 중요하다며 물었다. 네가 사는 집은 몇 평이냐. 그 땅이 네 집이냐? 집이라고는 하지만 꼭 상자에 이것저것 넣고 다니는 것 같아. 누구나 들고 다니기 편한 상자를 원하잖아. 운명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 늘 거기 넣고 다니려고만 하잖아. 점쟁이들은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아는 것이지, 자꾸 범위를 좁혀 가면서 확률을 높이잖아, 대신 숨이 막힌다는 사실은 숨기고. 그런 사람한테는 객사라는 말이 얼마나 두렵냐. 그런데 반대로 범위를 넓혀가면 점이 선처럼 길어지고 면처럼 넓어져서 하늘도 되거든. 누가 하늘을 죽음이라고 부르냐, 평화라면 모를까. 새해에는 자신을 위해서라도 부디 점을 사람에게 묻지 말고 하늘에 찍고 거기서부터 획을 긋기를 바란다.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윗세 오름에 닿기 전에 바라본 한라산 정상 서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내가 서 있는 거기가 선작지왓이었다. '늘어서 있는(선) 작은 돌(작지)들의 밭(왓)'이라는 설명에 미소가 지어졌다. 지리산의 세석 평전을 선작지왓에 대어 본다. 하나는 두툼하고 거친 아버지의 손, 하나는 넓고 평평한 어머니의 손이다. 두 손이 깍지를 끼고 나를 위해 기도한다. 감사합니다. 여기 올 수 있어서, 이렇게 서 있어서.
동절기에는 남벽으로 가는 길이 오후 1시에 막힌다. 12시 30분에 그곳을 통과했다. 거기부터는 고요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오직 바람 소리만 귓가를 울렸다. 소리가 사라지고 걸음도 느려졌다. 끝이 보이는 것 같아서 잠시 멈췄다. 이 고요한 속에서 조난당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구상나무 몇 그루가 바람을 막아주는 곳이었다. 사방에 조릿대가 정신없이 머리를 흔들고 있는 것이 내가 두고 온 세상 같았다. 마치 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풍경이었다. 그렇게 남벽을 올려다봤다. 바위의 미세한 틈과 옹골찬 줄기를 세심히 살폈다. 저기를 올랐을지도 모르지, 젊음은 무작정이니까. 처음 본 백록담의 둥근 테두리가 어느 세월이었던가, 나지막이 노래가 흘렀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 ··· 당신의 쉴 곳 없네. 눈이 내렸으면 좋을 텐데, 눈이 내리면 여기 갇혀서 노래를 부를 텐데.
백록담 밑에 있는 남벽 분기점까지 이어지는 영실 코스는 비교적 수월하게 오를 수 있어서 초보자들에게 추천하는 코스라고 했다. 영실로 올라 윗세 오름을 지나 남벽에 갔다가 어리목으로 내려가는 길을 선택했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 응앙 울을 것이다
그 길은 좋았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풍경이 내내 이어졌다. 다른 것을 나누지는 못해도 좋은 풍경을 그대들에게 보낸다. 풍경을 찍은 사진에 뜬금없이 문장을 적었다. 아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웠다. 풍경 앞에서 거짓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
산이야, 사람이 정의로우면 용감해진다. 강이야, 지혜로운 사람이 정의롭다.
내가 나한테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어리목을 내려오는 길은 10년 만에 아이젠을 착용했다. 용케 이것을 사용하는구나. 너도 신발장에서 지내다가 정말이지, 얼마나 시원하겠냐. 눈이 쌓인 돌계단을 열심히 내려왔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발에 힘을 주고 저벅저벅, 그 시간에 산에 오르는 중국 사람들도 여럿 보았다. 서로 시선이 마주쳤다. 눈인사가 정겨웠다. 가만있을 내가 아니다. 짜요! 加油!
눈이 내리고 아직 오후 4시가 되려면 30분 더 있어야 한다. 해가 뜨는 것을 못 본 1월 1일이었지만 한라산을 올랐던 1월 1일이었다. 그것으로 됐다 싶은 새해 첫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