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패, 나의 두려움
『경기에 진 선수에게는 위로를 건네지만 경기에 이기길 바랄 때는 ´응원´을 한다.
항상 이길 수 없기에 상비약처럼 준비해둬야 할 것이 ´위로´라고 한다면, 이길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함께 밥을 먹는 일은 ´응원´이다.
가위와 칼이 다르듯 위로와 응원, 둘 다 필요하다.』
2019년 5월 9일, 그날 내가 했던 말은 응원보다 위로였다.
'응원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의 말이 고속열차의 출발과 함께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치 벚꽃잎이 날리는 장면처럼 조용하기만 했다. 겨울을 지나온 것들이 옅은 바람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몇 번의 봄을 지나고 있었다.
그와 나는 동갑이었고 암환자였으며 서로를 좋아했었다.
우리는 지금도 동갑이며 서로를 좋아하지만 더 이상 그는 환자가 아니다.
'인연'만큼 힘이 센 말도 드물 것이다.
모든 경험치와 합리와 이성도 인연 앞에서는 맥없어 보인다.
운명이 좌표에 찍힌 점들이라면 그 점들을 잇는 선 같은 실, 인연.
모든 존재를 세상에 머물게 하는 인 因이 끌어안은 연 緣이라는 단 한 글자.
실 絲로 짠 여자 옷 彖을 옛사람들은 어쩌다가 인연이라고 불렀을까.
'옷깃만 스쳐도'라는 말이 허투루 뱉는 소리가 아니었구나.
그와 함께 지었던 옷을, 아직 다 만들어지지 않은 옷을 그에게 한번 대어보고 싶다.
색은 어울리는지 모양은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마음에 드는지 물어보고 싶다.
암환자들은 어색하게 첫인사를 나눈다.
가장 묻고 싶은 말을 누가 얼마만큼 뒤로 미루는지 그 한 가지로 대충 어떤 사람일지 감이 잡힌다.
"어디가 아픈데요, 무슨 암인데요?"
우리는 왜 그런 것을 궁금해할까.
자기의 처지가 어디쯤에 놓여있는지 우리는 늘 '자기'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다.
불안한 천성은 생명이 품고 있는 몇 안 되는 보호색 같은 것.
생명은 어느 순간에든 살아있고자 애쓴다.
그때 나는 마흔여섯이었고 나보다 나이가 적게 먹은 사람들을 암병원에서 마주치면 생각과 말과 행동이 멈췄다.
숨소리도 작게 줄였다.
정말 미안한 말인데 나이 드신 분들을 보면서 나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었다.
삶과 죽음이 덧셈과 뺄셈으로만 계산되었다.
모든 환자에게 '1971년' 내 나이를 가져다 대었다.
그러면 하나의 답이 나왔다. '살 만큼 살았는지 어떤지.'
나는 아직 살 만큼 다 살지 못한 사람이니까, 그 말이 가슴속 어디에선가 솟았던 것이다.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내가 아니라 세상을 더 산 당신이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보다 열 살도 더 어린 친구들이 떠나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내가 말하지 못한, '살아도 네가 살아야지.'라는 말이 대신 남았다.
『바다를 보러 가는 것과 바다에 들어가 보는 것.
누군가를 위해 밥을 짓는 일과 그 밥을 같이 먹는 일.
따로이면서 하나인 듯한 젓가락과 숟가락이 하는 일.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에게 묻는 인사.
아픈 사람이 건강한 사람 챙기는 것 같이 라일락 향기가 데이지 있는 곳까지 날아갑니다.
서로 헤아리고 있습니다.』
아침에 쓴 기도를 그의 아내에게도 보냈다.
49재를 지내고 돌아오는 사람 마음은 텅 빈 마당을 지키는 감나무 같을 것이다.
그가 세상에 있었을 때 종종 뵈었던 인연으로 안부를 물었다.
그것도 다 묻지 못하고 예전에 찍어뒀던 그의 사진을 전송했다.
그가 모르는 뒤에서 한 장, 한 장 찍어둔 사진들을 들여다본다.
우리는 암이 다 낫고 나면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해보니까 힘들긴 해도 못 이길 것은 아닙니다.'
그 말 한마디 재미나게 하고 싶었다.
나는 살아남았는가.
그는 떠났는가.
슬픔은 나와 상대를 함께 감싸는 보호색이다.
인연이 입에 물고 와서 떨어뜨려주는 씨앗이다.
그 슬픔에 상처 받지 않고 마음을 주고받을 것이다.
그 안에서 웃음이 보기 좋았던 그와 우리가 어울렸던 사람들을 기억해야겠다.
떠나간 사람들을 위해 다만 덜 부끄러워야겠다.
내 인생을 실패나 성공으로 나누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삶과 죽음을 놓고 초조해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을 잘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