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그 길 위에서 / 곽재구
산을 만나면 산을 사랑하고
강을 만나면 강을 사랑하지.
꽃이 많이 핀 아침을 만나면
꽃향기 속에서 너에게 편지를 쓰지.
언덕 위에선 노란 씀바귀꽃 하모니카를 불고
실눈썹을 한 낮달 하나
강물 속 오래된 길을 걷지.
별을 만나면 별을 깊게 사랑하고
슬픔을 만나면 슬픔을 깊게 사랑하지.
그러다가 하늘의 큰 나루터에 이르면
작은 나룻배의 주인이 된
내 어린 날의 바람을 만나기도 하지.
끝부분은 가히 극적 劇的이다.
'주인이 된'이라고 써놓고 나면 클리셰처럼 과거의 회상이 펼쳐진다.
그 회상은 '주인이 되지 못했던' 일들을 아련하게 또는 구슬프게 연결시킬수록 '주인이 된' 지금을 부각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내 어린 날의 바람'이 역상승한다.
지금과 옛날이 조금의 차이도 없이 팽팽하게 선을 잇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 긴장감이 도는 것도 아니고 조율하듯 심심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연주가 이어지는 것을 누구는 듣겠지만 모두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미리 일러주는 공연장 같다. 그러니까 이 소리까지 들리느냐고 묻는 물음 같은 연출이다.
나는 그래서 시인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작은 나룻배의 주인이 된 '나는' 내 어린 날의 바람을 '태우기로 하지'
겨우 이 정도에서 나는 시를 썼다고 좋아했을 것이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내 어린 날' 그것으로도 마땅하지 않아서 다시 더 찾아 나서서 그날의 '바람'을 모셔온 것이다.
이런 것이 나에게는 지극하게 보이고 정성이라는 단어로 승화된다.
그래, 어렸을 때 배운 바로 그 '승화'를 나는 실현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어떻게 단단한 덩어리가 풀어헤쳐지지 않고 하늘로 날아가 버리는가, 그것도 보이지 않게 보이지 않는 곳으로.
계단을 오르는 일과 시를 쓰는 일은 닮았어도 닮으면 안 되는 것이 아들과 아버지의 그것과 꼭 같아서 헛웃음이 난다.
산을 만나면 산을, 강을 만나면 강을 사랑하는 일.
그것은 나이 많은 내가, 아니다.
서툴게 익어간 시절이 덜 영근 초여름 같은 너에게 일러주는 덕담 정도로.
슬픔을 깊게 사랑하는 일은 오래 두고 끓여 먹는 항아리 속 된장처럼 구수하게 그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