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부사를 좋아하신다 / 나희덕

시의,

by 강물처럼

하느님은 부사를 좋아하신다 / 나희덕


'쓰다'라는 동사의 맛이 항상 쓴 것은 아닙니다

'보다'라는 동사는 때로 조사나 부사가 되기도 합니다

'너무'라는 부사를 너무 좋아하지는 마세요

'빨리'라는 부사도 조심하세요

'항상'이라는 부사야말로 항상 주의해야 할 물건이지요

하느님이 부사를 좋아하시는 건 사실이지만요

양치기가 사제보다 더 숭고할 수 있는 건

바로 부사 때문이에요

양치기가 어떻게 양들을 불러 모았는지

그때 눈빛은 어땠는지

목소리는 얼마나 다정했는지

해질 무렵 어둠은 얼마나 천천히 걸어왔는지

양들이 한 마리도 빠짐없이 돌아왔는지

돌아오는 길에 데이지가 얼마나 많이 피어 있었는지

부사로 이루어진 그런 순간들 말이에요

부사는 희미한 그림자 같아서

부사 곁에서는 마음도 발소리를 낮춘답니다

'천천히'라는 부사는 얼마나 천천히 어두워지는지요

'처음'이나 '그저'라는 부사 뒤에서 망설이는 동사들을 보세요

동사들이 침묵하는 건 부사들 때문이에요

그러니 어떤 부사를 발음하기 전에는 오래오래 생각하세요

그런데 하느님, 부사를 좋아하시는 당신은 정작

내 속에서 길을 잃으셨군요



여자 아이들에게 형용사를 가르칠 때에는 형용사 같은 남자를 만나라고 이른다.

명사 하나만 바라보는 형용사는 위대하고 고귀한 영혼을 가진 남자처럼 보인다고까지 힘을 준다.

항상 너를 위해서 기도하고, 기도하지 못하는 밤에도 '하느님'께서 함께 하기를 비는 형용사는,

삶의 전쟁터에 나가서도 용감하고 숭고하고 정의롭고 게다가 낭만적일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 보고 싶은 사람, 꽃 같은 사람, 그리운 사람, 고운 사람, 멋진 사람, 예쁜 사람, 좋은 사람...

하느님은 부사를 좋아하시지만, 형용사를 좋아하는 것이 어떠냐고 나는 그대에게 선을 놓는다.

다만,

부사는 바쁘고 열심히며 희생적이다.

모두를 돕고도 제 값도 없이 싹 지워져도 불평 한 마디 없다.

견줄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 사람, 그 마음에 꽃 같은 사람, 늘 그리운 사람, 하염없이 고운 사람...

하느님이나 되어야 부사처럼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수많은 동사를 뒤치다꺼리하고 허튼 형용사라도 예쁘게 달래고 키우는 그 마음에 하룻밤이나 평안이 깃든 적 있었을까.

사람들이 쏟아놓는 막말에도 욕설에도 때로는 요설 妖說까지 점잖고 애틋하게 그리고 다행스럽게 안아주는 그대,

하느님 커피 한 잔 하시지요.

부사 두 스푼에 형용사 한 스푼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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