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나비 / 김기림

시의,

by 강물처럼


바다와 나비 /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 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 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여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 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 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이 시를 같이 외웠던 여인은 어느 길을 따라 아침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그 길에 장미화가 피었는지 길게 남천이라도 심어놓고 빈 마음을 쓰다듬으며 다녀 갈 것이고

그런 날에는 바다에서라도 떠온 물에 얼굴을 묻고 눈을 껌뻑거리다, 물속에서 하늘도 보았을 것이다.

그 하늘에는 날마다 아침이 쉬 오지 않고서 그림이 얼룩져 얼룩진 달이랑 함께 그려져 있고

공주였다가 공주처럼 웃어 보였다가 허물어져버린 미륵사지탑이 긴 그림자로 사모하는 날, 네 머물거라.

아무도 그에게서 수심 愁心 가득한 얼굴을 보고 싶지 않던 옛날부터 오래오래 그날에도.

날개로 나비 허리로 허튼수작으로 음악 같은 것으로 내려갔다가 내려갔다가 돌아오는 돌아가는 시린 날, 봄날이 가고 더 세월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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