께냐 / 김인자

시의,

by 강물처럼

께냐 / 김인자

마추픽추를 돌아 쿠스코 난장에서 께냐 하나를 샀다

안데스 음악을 좋아하는 그를 위한 선물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살아서 함께 부르는 노래가 많을수록

죽은 후에도 잊히지 않는다는 걸 아는 듯

사랑하는 사람의 정강이뼈로 만들었다는

잉카의 전설을 익히 아는 그가 밤마다 께냐를 불었다.

곁에 있으면 그리움이 될 수 없다는 말은 거짓말,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도 새빨간 거짓말

저릿저릿 흘러가는 강물도 말라

웃어도 저리 애끓는 가락이 되었구나

바람 속 먼지처럼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구멍마다 흘러나와 어깨를 토닥여주는 노랫말

괜찮아 다 괜찮아 영혼을 위무하는 피리 소리

한 생을 달려간다 해도 다시 못 볼 그 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야 탄생하는 악기

오늘, 살아서 불어주는 그대의 께냐


진짜 슬픔이 어느 때 그대를 울릴지 나는 안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단지 슬플 뿐이다. 슬픔이 아직 맺히지 않았다.

슬픔은 미안하지만 네가 알고 내가 아는 속에서는 찾아오지 않는다.

너도 잊고 나도 잊고서 살아가고 있을 때, 무심히 문을 열고 들어온다.

손잡이도 없는 문을 슬픔은 아무렇지도 않게 밀고 들어온다.

네 방이 가지런하면 가지런할수록 슬픔은 편안하게 자리 잡고 앉아서 너를 기다릴 것이다.

내가 너를 잠시 잊었던 듯,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신발을 보고 슬픔은 희미하게 웃을 것이다.

잘 살고 있었구나 그러면서 옷걸이에 슬픔은 겉옷을 걸쳐놓고 그대를 바라볼 것이다.

그렇게 머물 것이다.

같이 한 곳에서 서로 방해하지 않고 걸리적거리지도 않으면서 먹고 잘 것이다.

아무 날, 아무 때도 아닌 그저 하늘은 낮고 바람마저 차분해서 거리에라도 나가봐야 하는 그런 날이 있을 것이다.

슬픔은 그런 날에 다시 제 옷가지를 챙겨 입고 일어선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편안한 표정으로 집안을 둘러보고 이것저것을 만져보면서 돌아보고 웃음도 보일 것이다.

떠나버리고 허전한 휘발유 냄새만 뒤에 남기는 시골 버스처럼 슬픔은 뒷모습으로 남는다.

그대에게서 울음이 새어 난다.

그동안 오밀조밀하게 만들어졌던 눈물이 이제야 마른 가슴을 적시려고 솟는다.

텅 빈 방 안에서 텅 빈 그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 마르고 온전히 비워져야 울 수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혼자서 울어야 한다.

사람들하고는 상관없이 그대의 울음소리로 온방을 채워야 한다.

들썩거리며 황소처럼 울어라.

바람 빠진 풍선처럼 홀쭉하고 힘없는 그대는 더 이상 사는 일에 자신이 없다고 운다.

그렇게 서른 밤을 다 울고 나서야 떠난 것과 남은 것이 그대와 슬픔처럼, 그대의 슬픔처럼 아롱진다.

그것으로 사는 것이다.

꽃으로 피는 것들이 환한 슬픔을 품고 있다는 사실에 그대도 모르는 힘이 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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