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버나움 Capernaum

영화의,

by 강물처럼

1%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어떠할까.

반대로 희망이 전혀 없다면 또 어떡하겠는가.

2천 년 전 예수님이 포기하신 땅이 갈릴리 호숫가 마을 '가버나움'이다.

'소돔 땅이 마지막 심판 날에는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 마태 11, 23'

하늘 높은 데에서 레바논의 어느 빈민촌을 내려다보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아직 기회는 있다.

그만 눈을 돌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면 당신의 오늘은 그저 평온하게 지날 수 있다.

희망이 없는 곳을 들여다보는 일은 비용이 요구되기도 한다.

정해져 있지 않은 액수가 불편할 때에는 언제든 밝은 데로 나오기 바란다.

당신 자신을 영화 속 누구와 맞바꾸는 일을 만들지 않기를 또한 바란다.

마지막으로 실감 實感할 수 없기를.

하지만 무기력하게 당신은 영화와 동행하고 말 것을, 안다.

Helplessness.

영어 단어 Help는 뜻밖의 뜻을 가지고 있어서 재밌는 말이다.

도움이나 도움이 되는 것, 또는 돕다라는 동사, Help me의 헬프!

Help 이 단어는 '사랑받고 싶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 매력이 있다.

'사랑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성가 聖歌는 언제나 진리다.

There is no Help for it, 그것은 어쩔 수 없어요.

방법이 없을 때, 도움이 되거나 도움받을 수도 없을 때, HELP 가 다 떨어지고 말면 Helplessness, 무기력이다.

어쩔 수 없어지는 것, 희망이 보이기는커녕 냄새도 맡아지지 않고 망망 茫茫하기만 해서 잠만 자야 하는 것.

12살 정도 된 소년 '자인'은 출생기록도 없이 산다.

'산다'라는 말이 다른 구멍으로 나와버린 팔이나 다리 같이 허름하다.

제대로 옷을 입으려면 먼저 옷이 제대로 여야 한다.

옷은 입는 것이지만 자인에게는 옷이 없다. 자인은 옷 같은 것에 몸을 끼워 넣고 덜렁덜렁 살아갈 뿐이다.

그의 부모는 무기력하게 호소한다.

나도 부모 잘 만났으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거라며 법정에서 눈물 흘린다.

이해는 가지만 그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는 단 하나다.

무기력했으면서도 살려고 했던 것.

살려고 했다면 다른 길을 걸었어야 했다.

딸을 팔아버린 시점에서 그들의 무기력은 더 이상 사람이 도울 수 있는 그것에 머무르지 못한다.

어린 자인을 그들과 같은 무기력한 인생으로 끌고 들어가며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한탄한다.

서로 알게 된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책임이 생긴다는 말을 했던 지난날의 내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거룩한 성모상 앞에서는 두 손이 모아졌고, 슬픈 피에타상 앞에서도 두 손 모으고 '자비를' 되뇌었던 감각에 마비가 온다.

여동생 사하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칼을 들고 뛰쳐나가는 꼬마 아이 자인을 무엇으로 달랠 수 있을까.

나는 감독의 얼굴을 오랫동안 쳐다본다.

어떤 삶이 그녀를 가르치고 있는지 알고 싶어 졌다.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짓밟으면 분노라도 일어난다. 밟으면 꿈틀거리고 꿈틀거리다가 욕이라도 한 마디 하는 거다. 그러면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계급이나 신분의 차이는 욕이라도 해가면서 이겨내면 된다. 하지만 가난은 가난을 잘 알기 때문에 가난이 가난을 위협해서는 안된다.

힘없는 사람이 더 힘없는 사람을 옭아매면 맨 나중에는 젖먹이 '요나스'가 팔려가야만 한다.

밑바닥이 밑바닥을 훑어버리면 상처가 깊다. 비극은 그 순간에 탄생한다.

어른이 무기력하면 아이들이 죄를 짓는다.

세상이 지옥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옥에 산다고 다 악마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죄를 짓지만 자식은 바르게 살게 하는 것이 슬프지만 맞다.

무기력한 것은 죄 중에 가장 아픈 죄다. 그러니 그러지 말아야 한다.

'부모를 고소하겠습니다.'

어린 자인이 법정에 세운 것이 과연 그의 무기력한 부모였을까.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지옥 같은 길거리를 오늘도 헤매고 다닐 텐데 당신의 무기력이야말로 참담하다는 고발장이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숫가 어느 마을이 아니라 내 마음 거기 아니냐고 똑똑히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자인, 네 눈빛을 나는 어떻게 담아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많이 미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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