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너를 사랑하고 있어

영화의,

by 강물처럼


2007년作 관객 6. 1만 명, 감독 新城毅彦 sinjoutakehiko。

오래간만에 망설인다.

이 망설임은 성실하지 못한 신자에게 고해성사 직전에 찾아오는 불규칙적인 호흡을 동반한다.

한국어 타이틀 '다만, 너를 사랑하고 있어.'

역시 망설인다는 증거가 처음부터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흥행 성적이 무엇보다 중요했다면 한국어 타이틀은 실수했다.

일본어로 읽힐 때와 한국어로 읽힐 때에 위화감이 든다.

결과론이지만 타이틀을 그대로 옮겨서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는데 이 영화는 후자의 경우에 해당됐다.

물론 내용에 충실한 타이틀인 것은 인정한다.

어렵게 선택을 했는지 아니면 고민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아쉬운 대목인 것만은 확실하다

타이틀이 아무리 좋았어도 사람들이 영화를 보지 않은 이유는 천 가지도 더 있었을 테니, 따로 운이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 제작 현장에서 돌아가는 속사정이야 담당자들의 몫이고 나는 철저하게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기만 하면 되는데, 관객 6.1만 명에 속이 상한다. 비위가 상한다. 괜히 2019년 개봉 영화 1300만을 찍고 있다는 '극한직업'에 반발심이 생긴다.

그럴 거 없다. 그러면 안 되고.


이 영화는 잘 만든 영화일까, 좋은 영화일까 생각해 봤다.

나는 감독이 부러웠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는 동안 부러움과 고마움, 부끄러움과 편안함이 춤을 췄다.

그리고 싶은 대로 그려도 작품이 되는 솜씨가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나에게도, 라는 부러움.


시주루, 세상의 상식과 생각에 갇힌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여자 주인공, 태어나면서부터 엄마로부터 받은 유전병을 갖고 사는 어른이 되면 안 되는 여자 대학생, 그녀의 입에서 아이시테루라는 말이 흘러나오길 내내 기다리게 했던 여자.


마코토, 한 손에 다른 한 사람 분의 행복을 갖고 사는, 자기도 자기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모르고 사는 남자 주인공, 사진- 그래 사진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둘 다, 세상에는 마코토 같은 남자가 많아야 시주루와 같은 환상적인 여자가 현실이 될 수 있다. 있을 것 같으면서도 좀처럼 없을 것 같은 5월의 첫 잎 닮은 남자.


이 두 사람에게 고마웠다.

둘이 사랑해줘서 고마웠다.

고마웠던 만큼 나는 스스로 부끄러웠다.

스물한 살에 캠퍼스를 걷고 있는 나를 찾아보았으나 생기가 없는 그가 보기 싫어서 내버려 두었다.

그동안 좋아졌으려나 싶어 프리지어를 사서 들고 서 있었건만 어디 가서 술이나 한 잔 하자는 말이 식상하게 들렸다.

멜랑콜리한 표정으로 술을 마시느니 차라리 시를 쓰는 게 낫겠다고 한 마디 던져주고 헤어졌다.

다시 그를 볼 자신이 없다.

마코토가 되지 못한 그는 시주루는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이다.

횡단보도 앞에서 사랑을 만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을 것이다.

유연함을 배웠어야 했는데 그에게는 그게 가장 부족한데 말이다.

생각도 마음도 몸도 그리고 연애도 땅에서 나는 것들인 줄 알았다면 새순이 나듯 연한 기질을 가졌어야 했다.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오는 것은 녹슨 쇠붙이가 아니라 여린 싹이다.

여렸지만 나는 싹이 되지 못하고 어딘가를 건너뛰었다.

어디를 건넜을까. 거기가 어디였을까. 왜 그랬을까.

부끄러움이 내내 길었다.

마코토가 뒤에서 시주루를 따라가는 모습을 보고도 부끄러웠고,

시주루를 아끼는 일상에서 또한 부끄러웠다.


憩いの場

이코이노 바, 내가 좋아하는 일본어다.

우리말로 하면 쉼터가 되는 말인데 역시 쉼터가 갖는 분위기와 이코이 할 때의 느낌의 차이는 바닐라 맛과 딸기 맛의 차이가 난다. 11월의 바람과 3월의 바람이 다른 바닷가 풍경 같다.

영화는 순조롭고 평화롭다.

극적 장치마저 큰 플롯 안에서 자극적이지 않고 필연적이다.

구태여 돈 주고 이 영화를 볼 필요도 없어진 판에 스포일러라고 혼날 일도 없으니까 이야기해 두자.

시주루는 예상했던 대로 죽는다.

한 때 그녀를 꿈꾸면서 함께 비상할 준비를 하기도 했던 관객과 마코토에게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뉴욕은 아마 겨울이 가장 화려한 곳일 것이다.

자동응답기에서 흘러나오는 시주루 아버지의 목소리로 확인하는 시주루의 부음은 사진처럼 묘했다.

사실이면서 사실이 아니고 현실이었지만 눈 앞에 만져지는 현실이 아닌, 현실.

미안하지만 안타깝기도 했지만 시주루의 죽음은 영화 안에서 편안했다.

마코토의 마당에 옮겨 심어진 나무, 시주루는 거기서 평소에 좋아했던 그 호수를 바라볼지도 모른다.

마코토가 살아갈 인생은 호수가 될 것이다.

넓고 고요하고 푸른 물이 사랑의 성지聖地를 이루는 매혹적이고 우울하기도 한 거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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