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4일 월요일 시작해서 오늘 10일 일요일을 맞았다.
첫 주를 보낸 셈이다.
다분히 빠르게 지나는 것처럼 느껴졌던 1주일이 새해 첫 주에는 비교적 느슨했던 것 같다.
첫 기분이란 것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한파로 꽁꽁 얼어붙은 날씨가 한몫했다.
수요일부터 기온이 떨어지면서 영하 16을 기록하던 금요일 아침은 눈으로 온도를 확인하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눈이 한차례 많이 내렸고 다음에는 바람이 불더니 온 세상에 동장군이 진격해 온 것이다.
그의 솜씨는 여전했다.
전술도 전법도 오래전 강원도 전방에서 보았던 그대로였다.
압도하는 힘을 위력 威力이라고 하지만 매섭고 차가운 이 냉정한 기상에는 큰 힘, 위력 偉力의 기품이 넘쳤다.
짓밟고 못살게 구는 일은 조무래기들이나 하는 짓거리인 양 말없이 사뭇 근엄한 표정으로 하늘과 땅을 덮었다.
다만 제가 하는 일에 까닭이 있을진저, 천지와 신명은 당분간 지켜보기를 청하는 말없는 당부가 공기 중에 표표 飄飄했다.
추상 秋霜 같은 눈썹 하나를 뽑아 겨울을 잊고 살던 모든 것들에게 얼음장 같은 죽비를 내리치는 장군은 엄중하다.
아직 우리는 그의 입김 한가운데에 있으며 꼼짝하지 않고 엎드려 있을 뿐이다.
떠들고 술에 취했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 숨었는지 도대체 조용한 세상이다.
추워지면서 몸을 웅크렸다.
모자도 머리에 쓰고 감기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고 대비했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거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 1930년, 정지용 / 유리창
아버지 정지용이 앞에 서서 바라봤던 그 유리창이 버스가 다니는 도로로 비친다.
쨍, 깨질 것만 같은 그 위로 무거운 화물차 바퀴가 지나가는 새벽을 바라보는 일은 새빨갛다.
추위에 달아서 얼어붙어 가는 양쪽 길어깨는 쌕쌕거리며 힘들어하고 있다.
나도 얼어버리기로 할까,
나라도 핏기 있어 보이기로 할까.
시간도 제 몸을 한껏 자세를 낮추고 아니야, 도사리는 것이 아니고 그 뻣뻣한 기질을 죽여야 돼.
겨울에는 나체처럼 겸손해야 해.
그러지 않으면 꽁꽁 얼어버린 시체가 되어 눈 속에 폭 파묻히는 것이지.
아빠가 살짝 무서운 이야기 하듯이 그림을 하나 그려놨다.
사람들이 언젠가부터 겨울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이 나는 무서웠다.
겨울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기 시작했다.
빛을 만들어 어둠을 지배하고 그 옛날에 바벨탑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은 그보다 훨씬 높은 건물을 척척 지어낸다.
바다 위로 다리를 놓으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폭풍우나 파도를 걱정하지 않는다.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상상을 한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아빠는 여전히 밤길이 무섭고 바람도 태양도 하늘도 모두 무서운 것이어서 조심하고 달래고 부탁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무서운 일이다.
우리는 문제를 풀면서 두려움도 풀어헤쳐버렸다.
주저하지 않고 걷는 시간은 빠르고 그 시간이 사람을 쫓고 사람은 다시 튀어나간다.
총알이 되어도 좋다고 소원하는 것이 사람이 됐다.
시간은 사람을 따라다니는 종속 접속사 that 같은 것이 되고 말았다.
무엇을 두려워하랴.
나는 그것을 두려워한다.
모처럼 영하 17도, 아니다.
산이와 강이는 처음 경험하는 추위다.
고드름이 다 달렸다고 신기해 하기에 창문을 열고 손을 뻗어 하나를 땄다.
크다.
저것이 그대로 추락한다면 사람들은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으로 더 놀라게 할 수 있겠는가.
돈밖에 없다.
희로애락애오욕이란 공식을 한 번에 풀어버리는 울트라 슈퍼 파워는 자본이다.
희노우구애증욕 喜怒憂懼愛憎欲은 한물 간 퇴역 배우가 됐다.
돈만 있으면 되는데 무슨 할 말이 있고 그걸 다 듣고 앉았느냐.
어쩌다가 아빠가 겨울, 새해 첫 주를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떠들고 말았다냐.
하여튼 지금은 춥다.
우리는 어제 '환생을 찾아서'라는 티베트와 네팔이 나오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다.
너희에게 수많은 질문들이 생겨날 텐데 아빠는 그것들에 대한 답이 없다는 것을 미리 일러준다.
아빠가 아는 것은 없다.
그래서 많이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천천히 걷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많이 자라서 세상이 많이 무섭다고 생각될 때, 그때에도 아빠하고 같이 걷자고 여기에 적어둔다.
많이 추운 겨울이 아빠는 이상하게 고맙다.
덜 무섭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