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는 학교에 갔고 강이와 둘이서 점심을 먹었다.
아침에 애들 엄마가 끓여놓은 소고기 뭇국이 있으니까 크게 신경 쓸 것도 없다.
나또가 눈에 보였다.
나또는 우리 청국장처럼 생긴 일본 전통 음식이다.
순전히 콩으로 만들어진 건강식품이다.
젊었을 때부터 나는 나또를 먹었으니까 그 이력이 꽤나 되는 편이다.
수술을 하고 나서는 더욱 나또를 가깝게 놓고 먹고 있다.
아무래도 소화시키는 일이 덜 부담스럽고 속이 편하다.
마침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처제가 준 계란도 있다.
저 계란은 내가 보증한다. 아니 내 속이 증언하는 알이다.
받아먹는 것은 입이지만 아픈 것은 뱃속이다.
조금만 이상해도 쏟아내는 뱃속을 탓하는 것도 지쳤다.
먹지 않았으면 탈 나지 않았을 일들을 그동안에 실컷 경험했다.
입이 그래서 원망스러웠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모른다.
입은 미세한 차이를 감각하지 못하든지 아니면 발언권도 없고 영향력도 거의 없는 뒷골목 왈패 인지도 모른다.
왈패 닮은 입하고는 다르게 내 소장과 대장은 수고롭고 희생적이며 고생이 많다. 애쓴다.
입과 소장 사이에는 반드시 위가 있어야 한다.
나는 위를 없애는 대신 얼마간 더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삶이 나를 삶아댔던 순간도 벌써 다섯 해에 접어들고 있다.
섬 시인 이생진의 시처럼, 며칠을 더 살기 위해 세월에 아부했다는 기분이다.
나도 바다 앞에서는 아부하지 않으려고 마음먹는다.
아, 점심을 먹다 말고 사설이 길었다.
나또는 그래서 우리 밥상의 친위군이라고나 할까.
나또와 고소한 맛이 나는 계란을 함께 따뜻한 밥에 얹는다.
강이하고 먹으니까 이번에는 참기름도 좀 넣는다.
내 밥그릇에는 가느다란 쪽파를 더 날렵하게 잘라서 맞춤처럼 보이게 한다.
왜 그럴 때 있지 않나?
먹으면서 바로 목구멍이 반기는 소리가 콧구멍을 채 돌아 나오기 전에 사람의 흥을 북돋는 여음구, '아으'
'다롱디리'는 생략해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물론 글을 쓰는 사람은 제 감정에 취해 평일 낮에도 춤을 추는 기질이 다분하니까 얼마간은 대충 깎아서 들을 줄도 알아야 한다.
참고로 우리 애들 엄마는 죽어도 나또는 안 먹는다.
내가 보기에는 안 먹는 것이 아니라 못 먹는다.
나는 그것이 촌스럽게 보이는데 오히려 어떻게 그런 것을 먹느냐며 우리 모녀를 의아해한다.
사실 강이는 나도 이해가 안 된다.
강이는 김치도 조금만 매우면 먹지 않고 카레니 짜장 같은 것도 싫다고 거부하는데 나또는 휙휙 저어가며 먹는다.
신기하지만 당연한 척하면서 아이가 잘 먹어주기를 은근히 바란다.
우리 연로하신 모친께서도 '죽으면 죽었지 나는 못 먹네.' 선언을 하셨다.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나또 거부는 완강하신 편이다.
굳이 권하지 않는 것이 내 신조다.
맛있는 것은 더욱 말을 아낀다.
나는 나또가 맛있다.
'아빠' 조그만 입이 나를 부른다.
"우리 반 친구들도 나또를 몰라, 사람들은 나또를 왜 안 먹지?"
밥이 지나고 있는 내 뱃속이 내 입을 흔들었다.
우리는 성당에 다니고 있잖아?
그런데 성당을 아는 사람들도 있고 또 모르는 사람들도 있어.
성당을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가 신기하기도 할 거야.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 일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마치 항해를 하는 것 같아.
그런데 배를 타고 계속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한 곳에 머무는 사람들도 있고 섬에 들러서 이곳저곳을 살피는 사람들도 있는 거잖아.
우리는 그것을 맞다든지 틀리다고 말하지 않지?
누군가는 우연히 어떤 것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고 누군가는 영영 모르고 세상을 살다가 떠나기도 하지.
물론 아쉬움이나 후회, 미련 같은 것들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지.
하지만 우리는 몸이 하나고 세상에는 길들이 아주 많잖아.
물에도 길이 있고 하늘에도 길이 있는데 어떻게 모두 알 수 있겠냐.
다만 우리는 지금 이것, 나또와 점심, 그리고 너와 내가 같이 있다는 사실에 집중해보는 거야.
내 말은 길고 강이는 애정으로 듣는다.
나또는 몸에 좋고 나는 감사함으로 먹는다.
우리는 유쾌해져서 다음 항해에 또 나서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