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식기 전에

영화의,

by 강물처럼

1960년대에 쓴 김수영의 산문집은 부서질 듯해서 책장을 넘기는 데 정성을 들인다.

누군가를 거쳐 나에게 온 그 책을 신년 新年에 펼치기 시작했다.

이름값을 하는 것이 책이긴 해도 소중한 기운에 빠져 문장을 바라보는 나를 보는 것도 유쾌한 일이다.

김훈의 칼 같은 문장이 시퍼런 한기 寒氣를 타고 왼쪽 어깨 근처를 타고 내리던 날에도 그랬던 것 같은데,

날도 날도 그런 날이 없을 만큼 파랗고 파래서 소설가로 태어나기에 좋은 오늘, 하늘이었다.

1981년 9월 민음사에서 간행된 그 책은 4000원이었다.

길도 걷는 사람이 임자, 돈도 쓰는 사람이 임자, 글은 간직한 사람이 임자다.

언제부터 가지고 다닌 책인지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면서 쾌쾌한 공기가 페이지마다 앉아있는 것을 구경한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어떤 세월을 다 살았을 때에도 고스란히 거기 누워 침묵으로 지내왔을 글자들.

고마운 말, 사람, 비평 批評, 그리고 시 詩.

하나의 세계, 넓디넓은 평원에 꽂혀 바람을 맞는 깃발에 쓰여있는 정신을 담는다.

'새로움은 자유다, 자유는 새로움이다.

- 도대체가 시라는 것은 그것이 새로운 자유를 행사하는 진정한 시인 경우에는 어디엔가 힘이 맺혀있는 것이다. - P. 197.

나는 저 말 '도대체가'라는 말을 두고서도 아득한 생각이 들었다.

글을 볼 줄 모르는 나는 어디 가서도 꽁무니나 따라다녀야겠다.

매무시를 고치고 나보다 젊은 시인에게 열심히 줄을 댈 생각이다.

손가락에 침을 바르지 않고 공손히 그의 유언 같은 문장들을 싸고 있는 페이지를 넘긴다.

커피가 식기 전에.

세월이 쌓인 페이지 위로 비치는 햇살이 온기를 잃기 전에 말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특별한 자리는 단 하나.

게다가 아주 성가신 규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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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과거로 돌아가도 이 찻집을 방문한 사람만 만날 수 있다.

둘. 과거로 돌아가서 어떠한 노력을 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셋. 과거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커피를 잔에 따른 후 그 커피가 식기 전까지다.


여기까지의 문장은 영화 '커피가 식기 전에'가 시작하면서 화면으로 소개된다.

먼저 말해놓고 말을 시작하는 것이 편할 것 같아서 나도 그러기로 한다.

무엇이든 같이 그러는 것은 일단 덜 두렵다.

혼자 왔다가 혼자 가기로 되어있는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유쾌하면서 반항적인 방식이 그거 아닌가 싶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함께라는 말이 '우리'가 된다는 사실에 무감각하기로 했는지 모른다.

우리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는 과거가 존재하지만 우리라고 부른다고 해서 미래가 공유되는 것은 아니다.

맨 처음 등장하는 에피소드의 젊은 연인들은 미래를 연습한다.

"그럼 앞으로의 일은? 미래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그건 손님에게 달렸겠죠."

첫 손님부터 시선을 끄는 찻집 분위기였다.

'우리'라는 말을 신호로 연인들은 연인이 되어간다.

각자 들어온 문은 달라도 하나의 문을 지나 비로소 펼쳐지는 세상에서 만끽하는 것이 '우리'라는 세상 아니었던가.

그러니까 삶은 연애하듯이 흘러가 보는 것이 또한 맞는 것이다.

치즈하고 아이스크림이 만나면 그 맛이 얼마나 황홀하고 커피와 시간은 또 얼마나 어울리는 앙상블인가 말이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플랫폼'이란 말의 위세가 보통이 아니다.

나에게 플랫폼은 익산역 하나였었는데, 눈발이 날리던 1999년 겨울 4번 플랫폼에서 서울행 새마을호를 기다리던 나는 찻집 '푸니쿨리 푸니쿨라'에서는 만날 수 없겠구나.

들어보면 한 번쯤 들었던 적 있는 이탈리아의 맑고 화창한 기운이 전해오는 노래, 푸니쿨리 푸니쿨라가 영화의 무대다.

플랫폼이 되어 인연에 대한 에피소드를 풀어간다.

누구는 과거로, 누구는 과거 대신에 미래에 가서 꼭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기로 한다.

만남은 눈물을 매개로 피어나는 사람들의 꽃 같은 것 아닌가 싶었다.

사랑하든 그렇지 않든, 아니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애정이 바닥에 깔린다.

동경 나카노에 있는 야끼니꾸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주방 보조로 손이 닳았던 미얀마 출신의 '소나인'이 다른 직원 몰래 밑에 깔아주던 스테이크 같은 것 말이다.


인지증을 앓기 시작했던 아내가, 끝까지 아내로 남아있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게 된 남편 아저씨.

그 아저씨를 다른 데에서 봤었는데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아, 결정적일 때에는 왜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것인지, 아저씨 이름을 적지 못해 아쉽다.

기억을 잃은 아내를 보듬고 그녀의 남편으로 마당에 나와 햇살을 쬐며 살아갈 아저씨도 찻집 단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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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과거의 어떤 한순간 앞으로 달려간다.

누구나 그런 순간이 있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재촉한다.

기다리라고도 하고 떠올리라고도 한다.

어디로 갈래?

지금까지의 길은 앞으로 가는 길이었지만 찻집에서 마주하는 길은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꼭 가고 싶은 길로 가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야 한다고.


나머지 두 개의 에피소드는 커피가 식기 전에 풀어놓기에는 바쁘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따뜻한 커피를 즐기고 싶다.


20년 전 1월 26일, 그러니까 내일 오후 7시 15분에는 동경에 있는 신오쿠보역에서 사고가 난다.

플렛폼에서 선로로 술취한 승객이 떨어지고 두 사람이 동시에 뛰어든다.

이수현, 당시 나이 27살, 그는 마주오던 야마노테선 열차를 피하지 못하고 만다.

나는 그때 거기를 불과 2시간 전에 지나쳤었다.

부재중 전화가 몇 통이나 들어왔던 날,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무슨 일이냐고 메시지를 보냈던 날.

뉴스에 한국인 유학생이라고 해서 깜짝 놀라 전화했다는 일본 선생님.

아, 나의 지난날들이 그대로 남아 있구나.


나는 새로움을 다시 담아보고자 한다.

쉰이라면 좋은 나이다.

마흔도 좋고 서른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미처 거기까지 몰랐다.

열심히 즐길 것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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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좋잖아~?


다 식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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