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꼭 오늘이 되면 빠지지 않고 하던 농담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일부러 창밖을 쳐다보면서 불현듯 생각난 듯이 혼잣말처럼 내뱉습니다.
그러면 아이들 반응이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앵?
저건 또 무슨 뚱딴지??
기다린 적 없이 기다렸던 크리스마스가 하루 만에 지나가버린 다음 날은 그렇게라도 농담을 하면서 보냈습니다.
그런 장난 좋아하는 편입니다.
금방 또 올 것처럼 믿음을 주는 그런 거.
기다림의 자세를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스물셋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문득 서정주의 슬픈 시들이 떠오릅니다.
귀신의 곡소리처럼 흐르는 그의 시는 영원한 애증의 대상일 겁니다.
´샛길´로 걸어가 보려 합니다.
처음부터 미당이 떠올랐던 것은 아닌데 이것도 인연일 것 같아서 가보기로 합니다.
영 입맛에 맞지 않으시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그 길에 한번 나서보겠습니다.
신부 / 서정주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 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어쩌면 ´내가´기다리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나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그가´되기도 하는 것이 뜻밖입니다.
인생의 비밀은 그런 데 감춰져 있는 듯합니다.
내가 누군가의 ´그가´되어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삶,
나는 잘 기다려본 적 있었던지 어제 지나간 크리스마스를 다시 기다리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