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자리 / 구상

시의,

by 강물처럼



동백이 필 것입니다.


남해에 있는 작은 섬들마다 붉은 꽃망울이 터지느라 소란스럽다는 소식을 기다립니다.


어른들은 모두 일 나가고 동네에 남은 꼬맹이들이 뒤섞여 떠드는 것처럼 꽃은 필 것입니다.


가지런하지 못한 이를 드러내며 웃던 어릴 적 우리 동네 아이들은 꽃이었을까.


꽃 피우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에 무심한 것이 어떤 것인지 알 것도 같습니다.


늘 꽃이었거나 꽃이 진 자리만 보고 살았습니다.


사나흘쯤 아니면 열흘쯤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옆을 지키고 있기만 했더라도...


아무도 없이 파도 소리만 듣고 바다에서 부는 바람으로 피었다가 지는 꽃이 그립습니다.


본 적 없이 그리워하는 것은 하늘이 내리는 벌입니다.





옛날에 좋아했던 이름 하나를 적어봅니다.


변한 것은 없는데 오랜만에 그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수염이 멋지고 막걸리가 무척 어울렸던 구상 시인을 기억하시는지요.


동백꽃은 소설처럼 피어서 절명시를 쓰듯 순식간에 떨어집니다.


꽃 핀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내 인생을 꽃 진 자리에서 목격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봄이 되면 섬으로, 저 혼자 아는 섬으로 물길을 달려가는,


파도같이 솟구치는 그 사람을 허공에 널어놓습니다.





꽃자리 / 구상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묶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도 맛본다.





앉은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꽃,


이름이 꽃이라니요.


살면서 내가 만났던 모든 인연이 그런 것이었다니,


예수님 말씀이나 구상 시인의 싯구나 여전히 좋은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인연, 그 꽃.


입니다.









https://youtu.be/rqkhMutckZw

작가의 이전글기도 6